•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3] 고을에 액운이 깃들면 밤새 울던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3] 고을에 액운이 깃들면 밤새 울던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
    • 장찬우 기자
    • 승인 2019.07.1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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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장찬우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충남엔 사연을 간직한 오래된 고목들이 많다. 흔히 노거수(老巨樹)라 부르는데, 느티나무가 그 중 많다.

    느티나무는 수령이 길고 잎이 무성하다.

    예로부터 ‘귀신을 쫒는다’는 믿음이 있어 예전 고을 관아와 마을 입구 또는 고갯마루, 학교 운동장, 절집 같은 곳에 많이 심었다.

    한자어로는 괴목(愧木), 규목(槻木), 궤목, 거라고도 한다.

    느티나무를 뜻하는 한자어 괴(槐)는 존귀함을 뜻한다.

    하여 왕이 있는 궁궐을 ‘괴신(槐辰)이라 하기도 했다.

    아울러 느티나무는 나뭇가지와 잎이 사방으로 자라서 수형이 둥글게 자란다.

    하여 정승목이라 불렸다.

    백성을 넓게 품어주는 정승같다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를 괴부(愧府)라 했고 외교에 관한 문서를 맡아온 승무원은 괴원(槐院), 3정승의 자리를 괴위(愧位), 3정승의 지위를 나타내는 말로 괴정(愧鼎)라 불렀다.

    느티나무는 정자나무의 상징이다.

    우리나라 마을에는 대개 큰 정자나무가 있는데 정자나무로써 뛰어난 기능을 발휘한 것이 느티나무다.

    짙은 녹음을 만들며, 병충해가 없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자나무 아래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마을 대소사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경험을 나누는 광장 역할을 했다.

    때로는 선생이 강학(講學)을 하는 민족의 애환이 집결된 곳이다.

    그래서 충남도 상징마크를 아름드리 나무로써 느티나무를 형상화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충남에는 이름난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수두룩하지만 그 중에 홍성읍 오관리 홍성군청 앞 느티나무를 제일로 친다.

    수령 661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인데, 군청 건물 앞마당에 나린히 서있다. 고려 공민왕 때(1358년)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600년 넘은 거목이 관청의 뜰 한가운데 서 있는 것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오랜 세월 모진 풍상을 다 이겨내고 목민관들이 백성을 제대로 살폈는지 지켜본 나무다.

    북쪽의 나무가 약간 큰데, 높이가 17m다.

    남쪽의 나무는 1966년 11월 1966년 11월 군청에 난 화재로 가지의 상당부분이 타벼렸다.

    높이는 11m다.

    두 나무 가지가 서로 얽혀있어 남북으로 40여 m, 동서 방향으로 18여 m 뻗어 큰 그늘을 이룬다.

    이 나무를 만나려면 홍주아문(洪州衙門)을 거쳐 들어가야 한다.

    홍주아문은 조선왕조 때 홍주목사가 행정을 하던 홍주목의 동헌인 안회당(安懷堂)의 외삼문(外三門)이다.

    고종 때인 1870년 당시 홍주목사로 부임해 온 한응필이 1870년 홍주성을 보수하면서 세웠으며 ‘홍주아문’이라는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알려졌으나 한국전쟁 전후에 사라졌다.

    이 나무들은 고을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밤새 울어, 목민관이 서둘러 대책을 세울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홍주에 부임하는 관리들은 제일 먼저 이 나무 아래에 제물을 차리고 고을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고 한다.

    제물을 받쳤던 그릇 받침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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