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읽기] 지식인의 책임을 깨닫는 교육이 필요하다
[성광진의 교육읽기] 지식인의 책임을 깨닫는 교육이 필요하다
  •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 승인 2019.07.21 16:0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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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굿모닝충청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아흔일곱 나이의 한 여성이 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인 그녀의 상태는 언론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그런데 한 서울대 학생이 페이스북에 이 여성이 위중하다는 기사를 공유하며 "페미대장 잘 뒤져라~ 무덤에 묻혀서 머가리 속에서 구더기 나올 상상 하니깐 기분좋네" 라는 막말을 했다. 그 대학생은 2018학년도 수능 만점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가 막말을 퍼부은 여성은 세상을 떠났다. 바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지난 6월 10일 별세한 것이다.

고인은 196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결혼하여 정치적 동지로서 남편의 피랍 사태와 사형선고, 가택연금, 미국 망명 등 온갖 고초를 더불어 겪었다. 그러한 고난의 과정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로 이어졌지만 무엇보다 고인은 여성 인권 신장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고인은 1950년대부터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YWCA 등에서 활동하며 남녀차별법조항 철폐와 가족법 개정 운동 등을 펼쳤다. 지금의 여성부가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출범한 것은 우연이 아니며, 이런 바탕에서 가정폭력방지법과 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故 이희호 여사 대전 분향소 영정/자료사진
故 이희호 여사 대전 분향소 영정/자료사진

여성의 권리 신장에 선구자적 역할에 대해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를 페미니스트 대장이라 일컫는 것까지는 그렇다 해도 나머지 막말은 죽음을 앞둔 고령의 어른에게 쏟아낸 말치고는 너무 고약하다. 그런데 이러한 막말을 쏟아낸 사람이 수능을 만점 받은 서울대 재학생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소위 입시명문대의 재학생이고 우리의 학교 교육이 내놓은 작품이다. 수능 만점을 만들기 위해 본인이 노력이 컸겠지만, 거기에 퍼부은 학교와 교사의 노력도 그에 못지않다. 그렇기에 수능 만점을 배출한 고등학교는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터이지만 그의 막말로 그 학교나 그를 가르친 교사들의 수고는 헛일이 되고 만 것은 아니었을까? 전국 최고 입시성적보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이다.

반면에 우리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고인이 보여준 미덕은 후대에 뒤따를 만한 가치를 지닌다. 고인은 이화여자전문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다. 또 1950년대에는 미국에 유학하여 사회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고인은 최고의 학력을 갖춘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그녀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륜을 사회의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 부었고 왕성한 사회 활동은 남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명문대를 졸업하고 출세만 하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라는 사회통념이 자리 잡고 괴물 같은 지식인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오늘날 각종 부정과 비리로 국민의 지탄을 받는 정치인과 법조인들은 대부분 학력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났던 사람들이다. 성적지상주의적인 학교와 가정의 교육과 사회분위기가 최고의 지식인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막말 대학생이 설사 여권신장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죽음을 앞둔 이 사회의 어른이자 큰 선배에게 할 말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고인은 막말을 쏟아부은 대학생의 대선배이기도 하다. 부정하고 싶은 페미니즘이 있거나, 고인의 행적을 비판하고 싶다면 차분하게 자신의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지리산 구례 땅 월곡리에 은거하던 매천 황현은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절명시(絶命詩)‘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망한 나라를 앞에 두고 죽음을 택한다고 읊었다. 오늘날에도 지식인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지식에서 남보다 앞서가는 사람은 사회적 병폐를 타파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진일보하는데 자신을 버릴 줄 아는 헌신적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올곧게 걸어간 고 이희호 여사의 삶은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겸허하게 돌아보아야 필요가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을 통해 다시 한 번 고인의 삶을 반추해본다.

“내가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적인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도 여성을 비하하는 여러 행동들이 옳지 않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나 역시 가부장적인 전통 관념에 찌들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비하와 멸시의 관념으로부터 해방되고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여성을 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도움 때문이다. 아내 덕분에 나는 인류의 나머지 반쪽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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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07-23 10:32:28
글 쓰신분 기성 세대로 태어나서 누릴거 다 누리고 이제 좀 살만하니까 갑자기 여유가 생기면서 여성에 대한 기사도 정신이 발휘되는지 몰라도 젊은 남성은 당신들과 사정이 다릅니다.

ㅇㅇ 2019-07-23 10:30:09
그만큼 이 사람들 때문에 평등하게 자라오고 오히려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한테 강제 배려하는 삶을 살았는데 기름을 부운 이 사람에 대한 남자들의 분노가 안느껴지나요? 아직도 요즘 젊은 남녀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사태파악 안되시죠?

김성훈 2019-07-22 11:19:09
배움과 실천이 따로인 세상은 혼돈 그 자체 입니다.
그래도 가르침의 사명에 충실한 선생님들이 계서서 위안이 됩니다.

일체유심조 2019-07-21 22:48:41
잘 읽었습니다. 서열주의 경쟁교육으로 괴물로 만들어지는 아이들을 보고있자니 어른들의 책임이 크고 무섭네요. 인성교육은 부모에게만 맡길 일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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