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5] 은행나무 부부이야기...홍성 금마면 은행정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5] 은행나무 부부이야기...홍성 금마면 은행정
    • 장찬우 기자
    • 승인 2019.07.23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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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장찬우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옛날 옛적 홍주골이라는 마을에 은행나무 부부가 살았어요.

    200년 넘게 변치 않는 사랑을 나누며 꼭 붙어 살았지만...

    어느 날 이들 부부에게 불행이 찾아 옵니다.

    은행나무 부부가 살던 홍주골 명문가 집안에 예쁜 처자가 살았는데, 아비를 알 수 없는 아이를 낳은 게 화근이 됐습니다.

    소문이 날까 두려웠던 가문의 어른들이 이 처자를 목 졸라 죽이고, 남편 은행나무에 매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꾸몄습니다.

    태어난 아이도 돌에 묶어 방죽에 던졌습니다.

    이후 홍주골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처자의 원귀가 마을에 남아 온갖 액운이 끊이질 않는다는 말이 퍼진겁니다.

    새로 부임한 홍주목사 김병억은 “이 처자의 원귀 때문에 민심이 소란하다”며 남편 은행나무에 톱을 댔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무가 베어지는 동안에 김 목사의 아내가 죽었습니다.

    처자의 원귀가 그리했는지, 부인 은행나무의 복수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이후 홍주골 처자들은 계를 모아 해마다 부인 은행나무를 찾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처자의 원혼을 달래고 200년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살아 온 남편을 잃은 괴목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홍주골에는 또 다른 불행이 찾아 옵니다.

    홍주골에서 태어난 최영 장군은 어려서부터 말을 타고 활을 쏘면서 무예를 연마하는데 열중했습니다.

    그가 무술 연마장으로 자주 찾은 곳은 집 근처에 있는 철마산(鐵馬山)과 백월산이었습니다.

    그가 타고 다니던 말은 용마(龍馬) 혹은 금마(金馬)라 불릴 만큼 날쌨다고 합니다.

    하루는 장군이 철마산에서 금마평야 건너편에 있는 백월산을 향해 활을 쏘면서 자신의 애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 화살보다 빨리 달린다면 너에게 큰 상을 주겠다. 그러나 만약 늦는다면 너의 목숨을 거두겠다.”

    말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장군은 말 위에서 활을 쏜 다음 있는 힘을 다해 쏜살같이 내달렸습니다.

    은행정이 있는 은행나무까지 힘차게 달려왔지만 화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군은 화살이 더 먼저 날아간 것으로 생각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금마의 목을 베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화살이 “쉬~익” 소리를 내며 은행나무에 꽂혔습니다.

    장군은 자신의 경솔함으로 말의 목을 벤 것을 후회하고 그 자리에 말의 무덤을 크게 만들어주고 후히 장사를 치러주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최영장군의 애마가 묻힌 무덤을 금마총이라 불렀습니다.

    이 지역의 명칭이 (홍성군)금마면이라 불리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입니다.

    어쨌든 이후 홀로 남아 화살을 맞은 부인 은행나무는 시대를 잘못 만난 장수들의 불운을 상징하는 나무가 됐습니다.

    언젠가부터 은행정이라 불리는 부인 은행나무는 이런 아픈 사연을 묵묵히 끌어 않은채 1000년의 세월을 향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금마국도변의 가로수였던 수백그루의 미루나무와 함께 살며 외로움을 달랬지만, 국도 확장공사로 인해서 친구가 되어주던 미루나무는 모두 베어졌습니다.

    미루나무를 베어낼 때에 은행나무까지 없애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살려냈다고 합니다.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에 잎이 무성하면 풍년이 든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 갑니다.

    "나라에 큰 일이 생길 때 마다 크게 울어 마을 사람들이 피신하도록 했다"며 그의 영험함을 칭송합니다.

    하지만 정작 은행정은 여전히 힘들어 보입니다.

    마치 반송처럼 나무 밑둥에서부터 10여개의 가지가 갈라져 자라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은행정은 현재 고물상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각종 고철 덩어리와 폐기물들이 나무 주변에 그대로 쌓여 있어 보호수라는 이름 자체가 무색해 보입니다.

    욕심 많은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의 남편을 베어내고 그 마저 고물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거목의 은행나무는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얽힌 진실이야 어찌됐든 이 은행나무는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함을 잃지 않고 살아 갈 것입니다.

    *홍성군 금마면 장성리에 있는 은행나무와 얽힌 설화를 재구성했습니다. 은행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약 25미터, 둘레가 7미터 정도 됩니다. 1982년 10월에 보호수로 지정(지정번호 8-61)됐습니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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