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눈] 처쟁치정(妻爭恥頂), 그리고 반성 단상
[시민기자 눈] 처쟁치정(妻爭恥頂), 그리고 반성 단상
  • 홍경석
  • 승인 2014.11.10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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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 수필가
[굿모닝충청 홍경석 수필가] 아내와의 사이에 불화의 먹구름이 형성된 것은 열흘 전부터였다. 당시 아들의 집들이가 있어 경기도 화성에 갔었는데 그러나 아내는 동행치 않았다. 물론 건강이 여전히 안 좋은 까닭에 그리된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더욱이 하나뿐인 아들이, 그것도 미혼의 직장인 아들이 벌써 내 집 장만을 했다는 건 분명 고무적인 어떤 사건이었다! 따라서 아내만 빠진 집들이에서 나는 서운함을 못내 떨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섭섭함’을 꾹 참고 있었으나 그예 폭발의 계기가 된 건 이후 지인과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날 그예 뇌관이 터지고 만 때문이었다. 문을 따주자마자 “허구한 날 술만 퍼 마시고 다니냐?”며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가 눈엣가시로 작용했다.
하여 그날 아내와 대판 싸웠다. 헌데 재수가 없으면 앞으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하필이면 그렇게 아내와 다투던 와중에 아들로부터 아내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던 것이다.

"아내와 다투는 것은 남편으로서 최상의 부끄러움
처쟁치정을 교훈삼아 다시는 가련한 아내와 다투지 않으련다!?"

그러다가 수화기 너머로 내가 만취하여 정제(精製)되지 않은 막말을 쏟아내는 것까지 들은 아들은 대경실색하여 이튿날 당장 집으로 뛰쳐 내려왔다. 그리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부터 그리도 다투시더니 그 행태가 여전하니 정말 실망입니다!”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만 싶었다.

사실 아내와의 부부싸움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아들의 말마따나 아들이 고교생이던 즈음 나는 펼쳤던 사업과 장사에서 연전연패했다. 그 바람에 큰 빚을 지게 되었고 빈곤까지 쓰나미로 들이닥쳤다.
대저 극심한 가난이 앞문으로 찾아오면 부부간의 사랑은 옆문으로 달아나는 법이랬던가? 하여간 이후 우리 부부는 한랭전선으로 접어들었고 급기야는 이혼의 위기에까지 봉착한 때도 없지 않았다.

설상가상 지독한 우울증까지 협공하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함구한 채 서로를 소가 닭 보듯 그렇게 흡사 유령인간 취급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때문에 당시 중차대한 수능을 앞두고 있던 아들의 눈에는 우리 부부의 그 같은 한심한 행태가 분명 트라우마(trauma) 비슷한 아픔으로 각인됐을 터였다.

아들이 불편한 1박을 마치고 올라간 뒤 나는 많은 자책과 아울러 새삼 못난 나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는 흡사 서리 맞은 뱀처럼 나 자신이 수그러든 때문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리곤 나름의 사자성어를 도출해냈고 이를 내가 늘 보는 위치에 써 붙였는데 그게 바로 처쟁치정(妻爭恥頂)이다. ‘처쟁치정’의 뒤에 붙은 ‘치정’이라고 하니까 왠지 그렇게 이상스런 느낌도 없지 않은데 왜냐면 치정(癡情)이라는 건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온갖 어지러운 정을 뜻하는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니고 처쟁(妻爭), 즉 아내와 다투는 것은 치정(恥頂), 그러니까 부끄러움의 최상부(最上部)라는 주장이다. 이는 또한 쉽게 말해서 ‘아내와 다투는 것은 (남편으로서) 최상의 부끄러움이다’는 뜻이다.

아울러 또 다른 치정(治定)은 마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그것처럼 가정 역시도 평소 잘 다스려야만 안정시킬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뜻까지를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못난 나를 만난 죄로 말미암아 애꿎은 아내는 지금도 고생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 모두 훌륭하게 길러낸 현대판 맹모(孟母) 다름 아닌 아내를 왜 나는 사시(斜視)로써 오해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부부싸움까지를 야기(惹起)하여 애꿎은 아들에게까지 마음에 멍을 들게 하였단 말이던가!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닿는다고 했다. 이는 제가 최고인 양 기고만장하게 흐르던 시냇물은 그러나 큰 강물을 만나야만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최고가 아니었음을 알고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한다는 의미렷다.
아내와 아들에게 깊이 사과(謝過)한다. 처쟁치정(妻爭恥頂)을 교훈 삼아 다시는 가련한 아내와 다투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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