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일본 아베 정권의 무역보복 조치는 한국 시민의 공분을 샀다.
7월초 반도체 소재 등에 처음 수출 규제조치가 이뤄지자 한국 시민사회는 불매운동으로 맞섰다. 일본은 비아냥 섞인 어조로 오래 못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같은 비아냥이 무색하게 불매운동은 40일 넘게 이어지는 중이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엔 어린 학생부터 나이든 어른까지 참여하고 있다. 독립운동 지사의 후손도 불매운동에 나섰다. 주인공은 사업가 윤여각 씨다.
윤 씨는 7월 15일부터 서울역, 종로3가 지하철역, 강남역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독려하는 일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의류업체나 자동차 매장도 일인시위 무대다.
윤 씨는 10일 오후엔 서울 종로구 율곡로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 중이었다. 마침 이날은 아베 정권 규탄 4차 촛불문화제가 열린 날이기도 했다.
윤 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 대기업에 재직하다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사업체를 운영 중이다. 한국엔 업무 차 일시 귀국했다가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아베 정권의 무역보복 조치가 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윤 씨의 말이다.
"아베 정권은 동네 건달만도 못한 짓을 한다고 느꼈다. 잠을 자면서도 어떻게든 맞서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윤 씨의 할아버지는 충남 청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기중(1895~1936)님이다. 윤기중 님은 1919년 4월 충남 청양 시장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태형을 받았다. 정부는 윤기중 님의 공적을 기려 2004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자 몇몇 이들은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결기를 다졌다. 그러나 윤 씨는 이 같은 정서와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뒀다. 윤 씨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내가 하는 행동이 독립운동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뵙지 못했다. 다만 불의를 보면 행동이 앞서는 피를 물려받은 것 같다. 학교 다니던 시절 학생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으니까."
징용자 가족이 큰절, 가슴 뭉클했다
윤 씨는 일인시위를 할 때면 정장을 입는다. 아베를 이기기 위해선 품격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시위를 마친 뒤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소감을 올린다.
윤 씨는 책을 내도 좋을 만큼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가장 감동적인 사연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윤 씨는 이렇게 답했다.
"종로3가 지하철역에서 시위하고 있었을 때다. 8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내게 오더니 큰 절을 하시더라. 그래서 얼른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왜 큰 절을 했냐고 물으니 징용자 가족이라고 했다. 그 말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윤 씨는 당초 7월 말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일정을 미뤘다. 사업에 지장이 있지 않겠냐고 묻자 윤 씨는 미소를 지으며 “사업주니까 괜찮다”고 답했다. 윤 씨는 9월까지 시위를 이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