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장날… 반갑고 그리운 옛것을 만나다
유성장날… 반갑고 그리운 옛것을 만나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⑤ 유성장 가을나들이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4.11.13 09: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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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며칠 전 오랜만에 동네 가로수 길을 함께 산책하던 친구의 말이다.
“올해에는 유난히 가을 나무가 눈에 들어 와. 이렇게 아름다운 걸 왜 여태 모르고 살았을까? 사람들이 단풍구경 하러 떠나는 마음도 이해하겠어.”

그대로 가을 나무가 되어버린 친구의 옆모습을 보며 시인 서정주의 ‘내 누이 같은 꽃’ 국화가 떠오른 건 왜일까? 봄이 꽃피는 것들에게 마음을 주게 한다면 가을은, 가을 잎의 아름다움은 존재 자체로 모두를 물들인다. 가을의 아름다움은 ‘모두’이다. 평범한 우리 인생 모두 햇살 아래 물들어가며 저물 때를 알고 기다리는 따스한 아름다움, 그것이 가을의 아름다움이었다.

좋은 날 이 가을을 좀 더 오롯이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일부러 뭔가를 찾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이 좋다. 그렇게 소박하게 이 가을을 느껴볼 마음과 얇은 지갑으로도 기분 좋게 나들이 삼을 수 있는 곳, 유성장으로 향했다.

장으로 들어서는 주변은 유성천이 흐른다. 도심을 흐르는 유성천은 산책하기도 좋고 장터풍경과 어우러져 편안한 휴식 공간을 선사하고 있다. 이 가을 유성장은 평범하게 빛나는 가을 나무와 닮아있었다.

100년이 넘은 역사
유성장이 처음 생겨난 건 1910년이다. 1916년 10월 5일 최초로 개장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10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장이었다. 장대동 일대에 ‘장옥’형태를 이루던 장은 6.25전쟁 때 불타 잠시 사라진 적도 있었지만 다시 복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근현대를 거치면서 난개발 속에 사라져간 것들을 우리는 기억조차 못하고 있다. 그런 사라짐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이어온 장의 역사를 생각하면 차라리 숙연하다. 이렇게 한 세기를 살아낸 힘의 근원은 이곳을 터전으로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현재 장은 끝자리가 4일, 9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예전엔 5일과 10일에 열리는 장이었는데 그날만 되면 장날 죽은 원혼들이 떠돌아다니는 탓인지 이상하게도 비가 자주 내렸다고 한다. 대를 이어 장을 지켜온 할머니들을 통해 전해 내려온 이야기이다.

1993년, 대전 엑스포가 열리면서 과학과 전통이 어우러진 새로운 굿판이 열리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장날을 4일, 9일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엑스포 행사에 가려 장세는 줄어들었다고 한다. 딱히 무엇이 사실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 않다. 두 이야기 모두가 역사이니까.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아이러니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엑스포 부지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새로운 활용방안을 찾고 있지만 유성장은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있는듯하니 말이다.

“예전에는 쑥과 냉이 유명”

유성대로 730번 길, 이 길은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이기 때문에 항상 차가 밀린다. 그러나 장이 서는 날이면 도로의 끝에 일렬 주차가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복잡하기는 마찬가지. 편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유성장을 즐기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전통 장이라는 특성을 생각할 때 주차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선가 문득 아는 이를 만나 막걸리라도 한 잔 할 수도 있으니까. 농협 장대동 지점을 끼고 있는 골목으로 장에 들어선다.

파랗고 빨간 천막으로 긴 터널이 이어지기 시작한 곳에서 먼저 만나는 것들은 산지에서 바로 실려 온 채소와 과일들이다. 장이 서는 장대동 일대가 대전으로 편입된 이후까지도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다고 한다. 논과 밭에서 나는 작물들이 주된 거래품목이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대도시로 성장한 지금 각종 채소류들은 공주, 논산, 연기, 금산 등 대전 인근 농촌에서 생산된 것이 올라오고 있다.

“예전에는 쑥하고 냉이가 유명했어. 여기 유성장에서 팔리던 것들 중에 말이여. 봄이면 쑥냄새가 가득했는디. 근데 지금은 다 하우스 하잖여.”
채소 좌판을 깔고 있던 한 할머니의 말씀이다. 대도시의 언저리에 앉아있는 지금의 유성장은 이렇게 도시와 농촌을 잇는 거래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람 냄새를 그대로 간직한 채.

조금 더 들어서면 고소한 기름냄새가 가득하다. 파란 천막 아래 간이 식탁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장보러 나온 사람들, 사람 구경하러 나온 어르신들, 엄마 손잡고 두리번거리던 아이까지 함께 모여 앉아 5천원이면 두 장을 주는 녹두전을 먹고 있다. 중간 중간에 막걸리 통도 자리 잡고 있다. 본격적으로 장을 둘러보기 전에 시장기부터 해결해야 했다.

기름진 전의 유혹을 뿌리치고 내가 들어선 곳은 ‘고향손칼국수’집이다. 낡은 간판은 글씨도 알아보기 어렵지만 작은 가게의 문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작지만 숙연하게 만드는 손칼국수집
대전은 워낙 칼국수가 유명한 곳이다. 그렇다 보니 유명한 칼국수집도 많고 웬만해서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그러나 유성장 안에 숨어있는 이 작은 집은 뭔가 숙연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10평도 안 되는 가게 구석에서는 늘 아주머니가 칼국수를 손으로 썰고 그 자리에서 끓는 물에 넣고 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한 그릇이 나오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6개의 식탁에 모르는 사람들 사이로 자연스레 끼어 앉으면 금방 쑥갓을 듬뿍 얹은 국수 그릇을 마주한다.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 부득 그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 이 집은 아직도 칼국수 한 그릇에 3천원이다. 다른 집 한 그릇 값이면 둘이 흡족하게 먹고 나온다. 그러나 단지 이것만이 이집의 장점은 아니다. 심심한 듯 깊은 멸치국물의 맛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을 듯 싶고 손으로 반죽해 칼로 썬 면발은 부드럽고 통통하면서도 각자 개성을 가지고 있다. 가늘고 굵고 뭉친 것들이 그대로 사람냄새이다. 가히 손꼽을 만한 맛에 감격스러운 가격이다.

이제 땀을 닦으며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익숙한 생선 가게들이 먼저 눈에 띄고 육고기의 특수부위를 파는 좌판이 눈을 사로잡는다. 소의 천엽, 생간 등을 바로 썰어 간단하게 포장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그 옆을 빨갛게 양념이 된 닭발과 막창들도 그득하다.

그곳에도 옹기종기 모여 저것들을 안주 삼아 술추렴을 하는 어르신들의 불콰한 얼굴이 보인다. 맞은편에도 먹거리 집이다. 보리밥이 3천원이다. 장을 돌다가 배고픈 사람, 물건을 팔다가 점심을 맞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계산해보니 만 원짜리 한 장이면 하루 세끼를 거뜬히 먹고도 남는 곳이 유성장이었다.

그 사이로 바닥에 자리 잡은 남자가 눈에 띈다. 제조사도 알 수 없는 강력 접착제를 파는 초로의 아저씨이다. 연신 뭔가를 중얼거리며 접착제로 신발을 수리하고 있다. 아마도 내용은 고쳐 쓰지 않고 조금 낡았다고 쉬이 버리는 요즘 젊은 사람들을 혼내는 내용이다.

이제 방향을 잃고 한참을 헤매기 시작한다. 골목골목 길은 복잡하고 사람은 많다. 어깨를 부딪치고 다른 이의 장바구니가 다리를 건들어도 불쾌하지 않다. 문득 새빨간 고추더미들을 만나다. 가을이 보여주는 가장 자극적인 색이다. 살 요량도 없으면서 괜시리 묻는다. 얼마냐고.

“키로에 7천원에 가져가. 올해 고추가 너무 잘되었어. 잘된 건 좋은디 값을 못 쳐.”
얇은 지갑으로도 풍성하게 담아올 것들이 가득하다. 먹거리가 그렇다. 시골에서는 지천으로 널린 것들이었다. 그러나 제때를 놓치면 그해에는 끝이었다. 여기 유성장에서는 인심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 마른 나물을 고르고 덤으로 생나물을 얹어 자리를 뜬다. 대형마트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새 도로변에 서있다. 좁은 인도에도 자신만의 푸성귀를 들고 나온 상인들로 빼곡하다. 어떤 아주머니는 김치 속을 만들고 배추를 절여와 도로변 앉은 자리에서 김치를 담든다. 쭉 찢어 나도 한입 먹고 싶다. 막다른 골목도 할머니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직접 키운 채소며 산과 들에서 캐온 푸성귀를 앞에 놓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져온 건 하나두 못 팔구 잔뜩 사 갔구만 가게 생겼응께.”
그러면서 뭔가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환하게 웃는 할머니들의 주름 잡힌 얼굴에도 가을 햇살이 가득하다. 가진 것 없어도 딱히 남지 않아도 웃으며 살 수 있는 여유와 사람 사는 지혜를 배운다. 이 골목 사이사이에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렀으면 싶다. 그러나 골목을 돌아 나오려니 조금 부끄럽다. 자기 물건 사라고 손짓하던 사람을 한 번 더 만나야 한다.    

가진것 없어도 웃으며 살 수 있는 지혜를 배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나는 종종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간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집들이나 물건들, 옛 먹을거리들이 정겹고 그리웠다. 그러나 내 일상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편하고 싸다는 이유로 재래 장보다 대형 매장을 선호했다. 모두 손질되어 있는 간편한 먹거리와 대형으로 포장되어 있는 공산품들에 묻혀 매장을 나서다보면 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항상 예산을 초과하는 지출도 한몫했다. 경험은 바보의 가장 좋은 학교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몇 장의 지폐로 사람을 사고 정을 거슬러 받는 곳, 유성장의 매력이다.

이제 다리도 아프고 어느새 불어난 짐에 팔도 저린다. 그러나 어릴 적 보았던 장날 풍경을 고스란히 만났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은 가을날이었다. 도덕경 한 구절이 떠올랐다. 도는 평범하고 거친 것 속에 보석을 숨겨둔다 했던가? 돌아오는 길 가을 나무들은 존재 그 자체로 어우러져 아름답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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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래서야 2014-11-14 15:16:29
장날, 옛것. 이게 다 표준어고 장 날, 옛 것이 비표준언데... 내용부터 읽어보심이

이래서야~ 2014-11-14 08:24:07
내용은 보지 않았지만...
신문사라면 띄어쓰기 정도는 해야지... 유성 장날...옛것...
좋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신경을 많이 써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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