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백두산 라이딩-①] 철조망 너머 북쪽은 그저 고요했다
[임영호의 백두산 라이딩-①] 철조망 너머 북쪽은 그저 고요했다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19.09.1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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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하는 동안 직접 보며 지나온 과거로부터 상념의 자락을 꺼내고 이것을 반추하면서 삶을 더 윤택하게 한다고 말한다. 여행은 어지러운 일상에 힘을 보충해준다.
나 역시 그렇다. 낙선할 때마다 백두산에 갔다. 백두산은 이번까지 네 차례다. 나는 자전거와 백두산 둘 다 좋아한다. 두발 자전거로 백두산에 올라간다니 흥미 당기는 일이다. 자전거도 타고 백두산도 보고, 좋아라하고 예약했다.
가기 전에 친구들이 물었다. 그 긴 거리를 진짜 타느냐고. 전 구간을 타는 것은 아니다. 중국 단동(丹東)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차로 붐빈다. 더군다나 자전거 길이 만들어 지지 않아 위험천만이다. 자전거 탈 수 있는 장소는 국경선인 압록강변이나 백두산 임도(林道) 중 일부분 선택하여 진행한다. 백두산 라이딩 기행을 2편으로 정리, 게재한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지난달 23일 저녁 6시 출항한 단동으로 가는 배는 12시간 이상을 시속 50㎞ 정도로 쉬지 않고 꼬박 항해하여 아침 8시쯤 단동 항에 우리 일행을 부려 놓았다. 배는 태안반도 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목적지로 가는 느낌이었다. 그 긴 시간을 짧은 거리에서 헤매다니…

일행 중 한 사람은 한밤중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가 숙소 벽에 달려있는 시계가 거꾸로 가는 것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귀신이 붙었나. 시차조정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보다 1시간 늦다.

하늘에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떠있었다. 여기는 벌써 천고마비 가을이다. 기온 26도. 타기 좋은 날씨다. 바람도 살랑살랑 분다. 중국 사람들은 준비성이 우리보다 좋은가. 하선 3시간 전부터 출구에서 바닥에 앉아 기다린다. 거의 보따리 장사 수준이다. 조선시대 청나라와 국경에서의 무역과 진배없다. 보자기로 싼 쿠쿠 밥통도 보인다.

단동보다 위인 북경으로 가는 관문 책문(柵門)에서 청나라와 조선 간에 무역거래가 있었다. 소위 사무역인 책문후시(柵門後市)다. 만상(灣商)과 송상(松商)을 중심으로 한 두 나라의 거래로 당시 10만 냥의 은(銀)이 청으로 유출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100억 정도의 가치가 아닐까?

첫째 날, 단동에서 통화시로 가다

단동은 신의주와 마주보는 도시다. 대전보다 크다. 250만의 인구가 산다. 일제가 발을 딛기 전에는 몇 가구 안 되는 마을이었으나 신의주를 개발하는 바람에 커졌다고 한다. 압록강 하구 신의주 대안(對岸)에 자리하여 신의주와는 철교로 연결된다. 우리 일행은 버스로 압록강 단교(斷橋)로 가서 이것저것 구경했다. 6·25 전란 시 미군기의 폭격으로 북한쪽 다리 부분은 무너져 없어졌다.

신의주 철교
신의주 철교

10년 전 왔을 때보다 거리가 활기차 보이고 주변에는 고층빌딩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철교입구에 ‘평화의 상’이란 조각상이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총칼로 무장한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평화와 튼튼한 국방력은 상호 함수 관계다. 평화주의는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나라를 책임지는 정치인이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절대적 평화주의자라면 정말 위험하다.

점심 이후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이제까지 요녕성(遼寧省)이라면 점심식사 장소는 길림성(吉林省)이다. 가는 도중에 이성계가 조선 건국의 결정적인 기회였던 회군(回軍)결정지인 위화도(威化島)를 보았다. 평화스런 삼각지형태의 낮은 섬이다.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땅이다.

충직한 최영(崔瑩)이 주도해서 대국 명(明)의 요동 정벌이 벌어진 시기는 하필이면 벼의 파종시기인 5월이었다. 당시는 농민이 곧 병사였다. 이성계는 현실론에 입각하여 반대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최영의 국내외 정치인식은 비현실적이었다. 그만큼 정치 지도자의 현실감이 한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자전거 타기는 위험요소가 많다. 점심 먹은 후 버스로 한참 이동 한 후 타기가 시작되었다. 화물차는 쌩쌩 달리고, 흰색으로 그은 인도 안쪽으로 자전거는 달린다. 과거에 보지 못했던 철망으로 된 국경선 옆으로 달린다.

위화도
위화도

강원도 고성에서 강릉으로 탈 때에도 바로 이런 철조망이었다. 거기는 빛바랜 철조망이나, 여기는 탈북방지를 위해 새 것이다. 중국국경으로 탈북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자꾸만 북쪽으로 고개가 가진다. 북쪽은 그저 고요하다.

8㎞ 쯤 가니 산 정상에 천리장성(千里長城)흔적이 나타났다. 626년 태종이 당나라 황제에 즉위 한 후 당나라와 고구려 관계는 악화되었다. 당시 당은 지금의 미국과 같은 존재다. 당나라와 겨루었다는 것은 고구려의 강대함이다.

천리장성은 당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서부전선의 방어벽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만리장성의 시작이다’는 표지는 중국인들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중 하나로 ‘고구려의 중국 변방사론(邊方史論)’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단재 신채호(申采浩)선생께서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고 민족사학 이름으로 찬란한 고대사와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고 복원하셨던 탁월한 선견지명이 가슴 저린다.

가이드가 멀리 절벽이 있는 요새 같은 산을 가리키며 주몽(朱蒙)이 세운 졸본성(卒本城)이라 했다. 백제와 신라 접경지역에서 지금까지 살아와서 그런지 고구려 역사는 현실감 있게 접해보지 못했다. 신라의 3국 통일이 아닌 고구려의 3국 통일이면 우리 국토는 어찌되었을까? 신라의 3국 통일 이후에 수도를 평양 쪽으로 옮겼으면 어찌 되었을까? 역사는 어제의 사회와 오늘의 사회와의 대화다.

맨 뒤에서 천천히 탔다. 시속 20㎞. 옥수수와 해바라기, 밤나무, 끝 무렵인 탐스러운 빨간 복숭아가 여기저기 보인다. 나중에 휴게소에서 그 복숭아를 먹어보니 딱딱하고 단맛이 좀 약했다. 오늘 50㎞ 정도의 라이딩은 좀 부족한 느낌이다. 호텔에 빨리 들어가서 내일 위해 충전을 해야겠다. 24일 하루는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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