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드러난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이 영화가 떠오른다
33년 만에 드러난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이 영화가 떠오른다
리뷰] 새롭게 관심 받는 봉준호 감독 2003년작 ‘살인의 추억’
  • 지유석 기자
  • 승인 2019.09.2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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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 ⓒ 사이더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 ⓒ 사이더스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8일 화성 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로 50대 이아무개를 특정했다. 용의자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난 건 1986년 첫 사건 발생 이후 33년만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사건의 잔혹성, 경찰 초동대응 미숙, 80년대 시대상황 등과 맞물리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일으켰다. 당시 언론도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 1991년을 끝으로 살인사건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고, 여론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잊혀 가는 듯 했다. 꺼져가던 관심은 한 편의 영화로 되살아났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작 <살인의 추억>이다. 

<살인의 추억>은 봉 감독에겐 남다른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2000년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로 주목을 끈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통해 탄탄한 실력을 뽐내며 유명세를 얻었다. 개봉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의 구성에 놀랐고, 영화가 실화라는 데 더 놀랐다"며 봉 감독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 알려진 대로, 봉 감독은 신작 <기생충>으로 올해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살인의 추억>은 봉 감독이 될 성 싶은 '떡잎'임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라고 본다. 

배우 송강호와 김상경의 연기대결은 또 다른 묘미다. 1986년 경기도 일원에서 젊은 여인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형사 박두만(송강호)은 일대에 사는 남성들을 무조건 붙잡아다 다그친다. 불같은 성격의 후배 형사 조용구(김뢰하)는 용의자의 진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장 발길질이다. 그러다 서울시경에서 서태윤(김상경) 형사가 자원해 온다. 

서태윤의 수사방식은 박두만과 조용구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사건 조서를 꼼꼼히 검토하고, 범인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 서태윤은 실종신고가 들어온 한 여성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해됐으리라 판단하고 수색에 나선다. 서태윤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송강호와 김상경은 각각 불같은 성격의 박두만과 냉정을 잃지 않는 서태윤 역을 맡아 불꽃 튀는 연기대결을 펼친다. 극과 극의 캐릭터가 대립하는 모습은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을 한껏 끌어 올린다.

영화가 그리는 80년대 풍속도도 빼놓을 수 없다. 봉 감독은 디테일한 묘사에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고, 그래서 '봉테일'이란 별명도 얻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 같은 별명이 그냥 나온 게 아님을 잘 보여준다. 라디오 방송국에 신청곡과 사연을 담은 엽서를 보내는 장면은 아련한 추억마저 자아내게 한다. 

중간 중간 박두만과 조용구가 시위진압 임무에 투입되고, 어린 학생들이 외국순방을 마친 '전두환 각하'를 영접하기 위해 동원되는 장면에서는 씁쓸함을 숨길 수 없다. 

‘봉테일’ 봉준호, 그냥 얻은 별명 아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송강호와 김상경은 불꽃튀는 연기대결을 펼친다. ⓒ 사이더스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송강호와 김상경은 불꽃튀는 연기대결을 펼친다. ⓒ 사이더스

봉 감독은 영화를 통해 범인을 잡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봉 감독 스스로 2013년 10월 개봉 10주년을 맞아 열렸던 관객과의 대화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인물은 범인이었기 때문에 범인을 만나는 상상을 굉장히 많이 했고, 내가 범인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봉 감독의 간절한 바람은 형사 서태윤을 통해 드러난다. 서태윤은 주먹구구식 수사로는 사건을 절대 해결할 수 없음을 잘 안다. 치밀한 분석과 추리로 용의자를 좁혀 나간다. 신 반장(송재호)도 서태윤에게 힘을 실어준다. 그럼에도 재차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은 좀처럼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는다. 

그러다 유력한 용의자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박현규(박해일)다. 서태윤은 박현규가 범인임을 확신한다. 

피해자들이 숨진 날 라디오 음악방송에선 어김없이 고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흘러나왔다.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한 날에도 이 곡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곡을 신청한 사람이 박현규였고, 그래서 서태윤은 그를 긴급체포한다. 

박현규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서태윤은 유력한 물증이 없어 일단 풀어준다. 하지만 박현규의 DNA를 채취해 피해자의 몸에 묻은 용의자 DNA와 일치하는지 조사해보기로 한다. 만약 검사결과가 일치로 나오면 그야말로 '게임 끝'이다. 

이 와중에 다시 한 번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피해자는 서태윤이 알고 지낸 여학생이었다. 냉정을 잃지 않던 서태윤도 그날만큼은 불같이 화를 낸다. 그리고 곧장 박현규를 찾아간다. 

마침 그때 박두만은 DNA 검사결과를 들고 온다. 결과 보고서는 뜻밖이었다. 박현규가 범인임을 확신하던 서태윤은 충격에 빠진다. 

이 장면은 다시 보아도 안타깝기만 하다. 경찰의 부실수사와 DNA 분석기법 부재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미궁에 빠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용의선상에 오른 이중 몇 명은 경찰의 강압수사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DNA 분석 등 과학수사 기법도 당시로선 생소했고, 수사 인력도 민주화시위 진압에 집중됐다. 

사건을 둘러싼 저간의 시대상황은 담당 수사관에게도 심리적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끝내 냉정을 잃고 박현규를 마구 폭행하는 서태윤의 행동은 이 같은 고통을 잘 표현한다. 

경찰이 33년 만에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를 특정한 건 DNA 분석에 힘입은 결과다. 용의자 이아무개는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DNA의 증거능력이 워낙 강력해 경찰도 “DNA로 진범 특정 가능하다”며 자신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상황을 역으로 생각하면 과학수사 기법이 당시에 활발했다면 범인을 금방 잡을 수 있었고, 추가 피해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선으로 당시를 보아선 안 될 것이다. 오늘의 시선으로 볼 때 당시 상황이 실로 어처구니없지만 말이다.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는 미 연방수사국(FBI)도 초창기엔 과학수사란 개념조차 없었고, 수사에 과학이 도입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걸 기억하자. 

영화가 미제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적이 종종 있었다. 이 영화 <살인의 추억>, 그리고 고 홍기선 감독의 2009년 작 <이태원 살인사건>이 그랬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경우 개봉 이후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이태원 B 햄버거점 살인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아졌다. 급기야 우리 수사당국은 미국으로 도주했던 유력한 용의자 아서 패터슨을 송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 <살인의 추억>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망각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계속 해왔지만 앞으로도 영화가 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이슈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영화만큼 대중의 뇌리에 강렬한 기억을 남기는 매체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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