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영상] 두번째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저우 1932
    [동영상] 두번째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저우 1932
    윤봉길 의사 상해 폭탄의거 이후, 항저우의 두번째 임시정부청사 수석 해설사를 만났다.
    • 김영태 기자
    • 승인 2019.10.2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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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권성하 기자, 영상 김영태 기자]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3.1만세운동 100주년이다.

    굿모닝충청은 교육사랑학생재능봉사기자단과 함께 서울 탑골공원을 시작으로 천안독립기념관, 대전 신채호 생가지에 이어 중국 상해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매헌 윤봉길 거사의 길, 중국 상해 평화만세운동’을 펼쳤다.

    매월 윤봉길 의사의 애국혼을 잇는 월진회청소년기자단이기도 한 교육사랑학생기자단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상해 임시정부 활동지와 매헌의 폭타의거 현장인 홍커우공원(현 루쉰공원)을 돌아보며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숭고한 의지를 확인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삼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제 정부였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총지휘하는 중심역할을 수행했다.

    임시정부는 끝없는 갈등과 내분으로 수차례 해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27년간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다.

    독립투쟁의 불씨는 1931년 한인애국단 조직과 1932년 이봉창 의사의 동경의거, 윤봉길의 상해의거로 이어지며 일대 전환을 맞는다.

    물론 일제의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임시정부는 상해를 떠나 항주(1932), 진강(1935) 등으로 거듭 피난을 다녔다. 또 중일전쟁(1937) 이후 장사(1937), 광동(1938), 유주(1938), 중경(1940) 등 중국 각지를 전전하는 고난의 길을 이어갔다.

    교육사랑학생기자단이 찾은 항주는 윤봉길 의사의 상해 폭탄의거 이후 임시정부가 옮긴 곳이다. 1932년 5월에서 1935년 11월까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중심 거점이 됐다. 당시 국무원과 하원은 청사 주변 서호(湖)에서 열렸다.

    항주 임시정부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라고 기록된 헌법이 정한 대한민국 건국의 적통이다.

    3.1 운동 직후 상해 임시정부 외에도 한성, 만주, 연해주, 미국 등에 임시정부가 세워졌지만 1920년대 초반 대한민국 임시정부(상해)로 합쳐졌고, 항주 등으로 끊임없이 피난의 길을 이어갔지만 단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중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광복 후 대한민국은 헌법을 통해 상해임시정부를 계승한 정부임을 밝혔고,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글 권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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