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태안=김갑수 기자] 충남 태안군이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옥파 이종일 선생의 생가와 약 10km 떨어진 원북면 방갈리 학암포해수욕장에 친일 행적이 뚜렷한 서정주 시인(1915~2000)의 시비 설치를 강행해 논란이 커질 조짐이다.
한일 간 경제 전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전국 대다수 지자체의 경우 이미 있던 서정주 시인의 시비를 철거하는 가운데 추진되는 것이어서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군은 서정주 시인의 ‘학(鶴)’을 새긴 시비를 세우기 위해 5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수면 점용·사용 협의 고시를 했다.
위치는 원북면 방갈리 515-170, 면적은 26.3㎡이며, 점용·사용 기간은 2019년 11월 5일부터 2034년 11월 4일까지다.
원북면사무소는 군의 우수해수욕장 지원사업으로 받은 2000만 원을 들여 시비를 세울 계획이다. 높이는 2m, 폭은 1m 정도이며 12월 쯤 세워질 예정이다.
군은 서정주 시인이 학암포를 찾아 “千年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鶴이 날은다”로 시작되는 ‘학’을 썼다는 점에서 착안, 이를 기념하고 새로운 명소(포토존)을 만들기 위해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서정주 시인의 친일 행적이 너무나 뚜렷하다는 것.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 다퉈 해당 시비를 철거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경기도 부천시는 지난 8월, 시내 곳곳에 설치돼 있던 친일문학인 서정주 시인 등의 시비를 모두 철거했다.
전남 광양시는 지난달부터 서정주 시인이 1989년 작사한 ‘시민의 노래’를 공식 행사에서 일시 사용 중지키로 하기도 했다.
서정주 시인은 일제강점기 ‘다츠시로 시즈오’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바꾼 대표적인 친일문학인으로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년),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 등 강제징병 등을 선동하는 시를 지어 일제에 부역했다.
그의 친일 행적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담겼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라와 있다.
이에 대해 원북면사무소 관계자는 “논란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학암포해수욕장을 다녀간 뒤 ‘학’을 썼고 워낙 인지도가 높은 작품인 만큼 지역을 홍보하는 효과가 크다는 판단”이라며 “친일을 했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배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정주 시인의 친일 행적과 그의 시를 별개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가세로 군수도 이와 유사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 원고를 스스로 조판·교정·인쇄해 국내·외에 배포한 옥파 이종일 선생의 생가지와 인접해 있고, 보편적인 국민 정서와도 맞지 않다는 점에서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역 사정에 밝은 복수의 인사는 “기존에 있던 것도 철거하는 마당에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의 시비를 세우다니 말이 안 된다”며 “‘친일 행적과 작품을 별개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전혀 없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런 거 알려지면, 사람들이 학암포 안 갑니다. 반일감정 심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