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위해 학도병 독려…전두환에 "영원한 찬양"
일제 위해 학도병 독려…전두환에 "영원한 찬양"
'친일인명사전'에 나온 서정주의 엽기 행각…민족 반역자로 "권력의 양지만 쫓아"
  • 김갑수 기자
  • 승인 2019.11.10 17:1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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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2월 9일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송정오장송가’는 그해 11월 24일 한국인 출신 소년비행병으로 제일 먼저 가미카제 특공대로 전사한 인재웅을 추모하는 글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1944년 12월 9일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송정오장송가’는 그해 11월 24일 한국인 출신 소년비행병으로 제일 먼저 가미카제 특공대로 전사한 인재웅을 추모하는 글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영화 ‘암살’에서 민족의 반역자 염석진(이정재)의 죽기 전 마지막 대사다.

이와 거의 똑같은 말을 한 실존 인물이 한 명 있다. 학창시절 ‘생명파 시인’으로 달달 외워야 했던 미당 서정주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국화 옆에서’ 등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시를 남긴 서정주. 그러나 그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알고 나면 치를 떨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보면 그의 친일 행적은 물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군부독재자를 찬양한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서정주에 대한 이야기가 3쪽에 걸쳐 기술돼 있다. 그가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친일 행적이 뚜렷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1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서정주는 1929년 경성의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며, 1930년 11월에는 광주학생운동 기념 시위를 주도해 퇴학과 함께 구속됐다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됐다.

그의 생애 중 유일한 반일(反日)의 기록이다.

서정주는 시와 소설, 잡문, 평론 등을 통해 일제에 협력했다. 1942년 7월 13일부터 17일까지 <매일신보>에 평론 ‘시(詩)의 이야기-주로 국민시가(國民詩歌)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친일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1943년 11월 16일자 <매일신보>에는 ‘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라는 헌시를 발표했다.

“교복과 교모를 이냥 벗어버리고/ 모든 낡은 보람 이냥 벗어버리고/ 주어진 총칼을 손에 잡으라!/ 적의 과녁 위에 육탄을 던져라…”

일제의 침략전쟁과 학도지원병의 ‘영웅적 전투 행위’를 그려내면서 조선 학생들에게 출정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문학> 1944년 8월호를 통해서는 ‘사이판 섬에서 전원 전사한 영령을 맞이하며’란 글로 태평양전쟁 말기에 벌어진 일본 병사들의 옥쇄(玉碎)를 찬양하기도 했다.

1944년 12월 9일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송정오장송가’는 그해 11월 24일 한국인 출신 소년비행병으로 제일 먼저 가미카제 특공대로 전사한 인재웅을 추모하는 글이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신풍특별공격대원(…)/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스무 살 된 벗에게’(조광, 1943년 10월호)와 ‘징병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춘추, 1943년 10월호)에서는 일제의 징병에 젊은이와 어머니들이 적극 부응해야 한다고 선전했다.

그 내용도 노골적이다. “선배 지원병들은 우리들의 것이요 동시에 천황 폐하의 것인 그 붉은 피로써 우리들 앞에 모범을 보이어 우리들의 나갈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몸에 흐르는 피조차 일제의 수괴라 할 수 있는 ‘천황 폐하’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민족 행위가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서정주는 1972년 발간한 문학전집 3권에서 ‘친일파’라는 비판에 대해 “욱일승천지세(旭日昇天之勢)” 밑에서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로 체념하면서 살아간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서정주는 또 1992년 <신동아> 4월호에는 “일정 말기에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로 일본의 지배가 오래갈 걸로 알고 자손지계를 위해 일본에 순응해 살기로 작정했던 사실에 대한 책임도 나는 조끔치라도 문제가 되는 날까지는 꾸준히 지켜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약하면서도 친일 글의 제목과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그의 엽기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87년 1월 18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생일 축하장에서 자작시 ‘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로 시작된 송시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로 맺고 있다.

광주민주항쟁의 무고한 시민을 폭도로 몰아 학살한, 잔악무도한 군부독재자를 신격화하며, 마치 일제강점기 당시의 ‘천황’이라도 되는 냥 찬양하고 미화한 것이다.

서정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두환이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에 참관해 골인 장면을 보고 웃는 모습을 가리켜 “단군 이래 최대의 미소”라고 읊조렸고, 민주화운동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글을 발표해 지탄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굿모닝충청이 이 같은 행적을 문제 삼는 이유는 충남 태안군이 2000만 원을 들여 학암포에 세우려는 서정주의 시비(학) 건립이 얼마나 부적절한 행태인지를 알리기 위해서다. (자료사진: 태안군 제공)
굿모닝충청이 이 같은 행적을 문제 삼는 이유는 충남 태안군이 2000만 원을 들여 학암포에 세우려는 서정주의 시비(학) 건립이 얼마나 부적절한 행태인지를 알리기 위해서다. (자료사진: 태안군 제공)

박한용 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2008년 ‘피 묻은 국화 옆의 서정주와 개성 청년’(독립기념관)이란 글에서 “당시 서정주는 나이도 젊었고 문단의 비중도 크지 않았음을 고려하자면, 그의 친일 글은 상당한 양이었다”며 “그 형식 또한 시, 수필, 소설, 평론, 보고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웠으며, 내용 또한 친일도가 심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해방 후 서정주의 삶을 보자면 그의 친일 행적은 시인의 철부지 마음이나 살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해바라기가 해를 쫓듯 권력의 양지만을 찾아다니는 그는 ‘종천순일’의 도를 넘어버렸다”며 “서정주가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기에 바쁠 무렵 민족시인 윤동주는 ‘불령선인’으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 있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강조했다.

<굿모닝충청>이 이 같은 행적을 문제 삼는 이유는 충남 태안군이 2000만 원을 들여 학암포에 세우려는 서정주의 시비(학)가 얼마나 부적절한 행태인지를 알리기 위해서다.

“서정주의 친일 행적과 그의 작품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군의 입장 역시 친일 행적을 눈감아 주자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시만 잘 쓰면 친일 해도 괜찮다는 얘기냐?”라는, 상식 있는 국민의 물음이 태안군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태안 흙빛 문학회 최기인 시인은 페이스북에 ‘송정오장송가’와 함께 글을 올리고 “태안군에서 학암포에 서정주 시비를 세운단다. 이제 이종일 선생 생가에서 서정주 문학 백일장을 할 태안군인가보다”라며 “문학성만 바라보고 서정주를 높게 평가하게 된다면 그의 친일은 사라지고 그의 이름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시인은 “태안군청님이 굳이 서정주 시비를 건립하겠다면, 군민으로서 부탁하나니 서정주의 ‘송정오장송가’와 ‘전두환 탄생 축시’ 이 둘을 꼭 같이 그 시비에 남기길 부탁한다. 그도 문학이니…”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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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뚜루 2024-01-12 12:19:18
"단군 이래 최대의 미소"라니ㄷㄷㄷ
지금도 일부 기자들이 그의 뒤를 본받아 열일 하고 있군요...

최재원 2019-11-19 23:28:25
굳!

행복한삶 2019-11-10 19:18:09
반대 ! 아이들을 생각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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