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의 세상읽기] “태안과 서정주 시인이 무슨 상관?”
[김선미의 세상읽기] “태안과 서정주 시인이 무슨 상관?”
관광 명소화에 필요한 것은 시비(詩碑) 아닌 살아 움직이는 콘텐츠
  • 김선미 편집위원
  • 승인 2019.11.1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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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편집위원
김선미 편집위원

[굿모닝충청 김선미 편집위원] “태안과 서정주 시인이 무슨 상관?” 태안군이 서정주 시비(詩碑) 건립을 둘러싸고 논란을 빚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을 때 맨 처음 든 생각이다.

서정주 시비 건립이 시인의 친일 행적과 군부독재 아래에서의 처신 등의 문제로 지역사회의 반발이 커지자 태안군은 일단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몇 가지 측면에서 시비 건립의 타당성을 묻게 된다.

태안군 서정주 시비 건립 철회한다지만 시비 건립 타당성을 묻다

첫 번째는 이 시점에서 왜 서정주 시인의 시비인가 하는 점이다. 태안지역이 서정주 시인과 무슨 연고가 있길래 구태여 물의를 빚어가면서까지 시비를 세우려 하는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통상 시비나 기념비 등은 해당 인물과 그 지역의 연고성이 입증될 때 세우기 마련이다. 일단 태안은 시인의 고향도 아니고 살아생전 시인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태안군과 학암포 주민들이 시인의 시비 건립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시 한 수가 인연이 됐다. 서정주 시인이 1950년대 중반 학암포를 찾아 ‘千年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鶴이 날은다’로 시작되는 「학」이란 시를 썼고, 이를 통해 학암포를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주와 학암포’의 조합은 여전히 생뚱맞아 보인다. 서정주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고 「학」은 시인의 널리 알려진 시이다. 하지만 학암포에서 시상을 얻었다고는 하나 27행이나 되는 긴 시에서 시의 배경이 학암포임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시구나 배경 설명은 없다. 일반인으로서는 부연 설명이 없으면 둘의 연관성을 알기 어렵다는 얘기다.

‘서정주와 학암포’의 생뚱맞은 조합, 학암포에서 시상 얻었다고?

두 번째는 서정주 시인의 피해갈 수 없는 부정적인 역사적 평가다. 그가 문학적 성과와는 별개로 친일 행적과 불의한 지배 권력과의 밀착 등으로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는 시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를 둘러싼 역사적 평가는 완료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더구나 전국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들은 최근 이 같은 점을 인식해 서정주를 비롯한 친일 행적 문인들의 시비나 흔적들을 잇달아 철거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 전남 광양시, 강원도 춘천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일 행적과 작품은 별개’라며 시대정신과 부정적 여론을 거슬러가며 굳이 모두의 자산인 공공장소에 논란이 진행 중인 시인의 시비를 세우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유명 시인의 시비를 세워 새로운 관광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일종의 스타 마케팅 전략인 셈인데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사비도 아닌 시민 세금을 투입하는 일이다.

친일·군부독재 부정적 역사적 평가 현재진행형, 세비 투입은 적절치 않아

세 번째는 태안군이 자랑하는 노을이 아름다운 해변의 해수욕장을 관광자원화 하는데 시비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태안군은 서정주의 「학」은 “학암포를 홍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소재”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유명 시인의 시비가 있다고 해서 과연 관광객이 구름같이 몰려들까.

이미 우리는 전국 곳곳에서 서정주와 「학」이라는 시보다 더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기념비나 더 유명한 시비, 문학비들이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촉매가 되기는커녕 한낱 돌덩이 취급을 받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 왔다.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한 구석에서 방치되고 있는 태안 국민수영장 앞에 설치된 복제품, 대형 광개토대왕비의 예를 잊지 말라는 태안신문의 고언은 두고두고 곱씹을 부분이다.

관광 자원원화에 시비가 왜 필요해? 홍보는커녕 추문으로 얼룩질라

관광 명소화하기 위해서는 돌에 새긴 시비가 아니라 보령 머드축제와 같은 살아 움직이는 독창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 노을을 바라보며 즐기는 록페스티벌을 하든, 빛의 축제를 하든 실질적으로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기를 권한다.

태안군이 철회를 결정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시비 제작은 이미 들어갔고 정작 해당 지역 상가 번영회를 비롯한 사회단체, 주민들에 대한 설득 작업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비 건립이 강행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무리수를 둔 시비 건립이 학암포 홍보는커녕 붉은 페인트로 칠해져 추문으로 얼룩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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