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정민지 기자]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선악의 감정들, 생활의 많은 부분이 '양가적'임을 재치 있게 풀어낸 정덕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가 출간됐다.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상실감, 자본주의의 일상화된 풍경, 점차 문명화돼 가는 사람들의 욕망의 의지를 위트 있게 써 나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뒷전으로 밀려 나가는 중년의 삶을 재치 있게 다루고 있다.
중년의 나이와 외모에서부터 풍기는 즉물적 이미지, 일상의 사소한 에피소드(예를 들어 멸치를 보며 소멸을 생각한다든가 음주를 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들) 등으로 시를 쓰는 그는 어떤 대단한 것에서 시를 찾지 않는다.
그리고 시가 그렇듯 깨달음과 삶의 태도 또한 엄숙주의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 그에게 시는 일상이며 일상은 시이다.
인간의 세상살이가 아주 익숙한 일상에서 고통과 슬픔이 솟아나고 그것 때문에 또한 기쁜 일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머 뒤에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매 순간 일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러한 자본주의적 삶을 폭로하는 방법론으로 위트와 재치가 쓰이기도 한다.
시인은 중심에 있는 풍경보단 주변에 머물러 있는 풍경, 조명 받는 화제보단 비켜나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정덕재 시인은 시인이 지녀야 할 시선의 덕목으로 “밝음보단 어둠, 그리고 어둠 속 그늘을 들여다보는 눈”이라 말한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보는 것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려는 그의 시들은 일상에 매몰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며 웃음 속에 페이소스를 숨겨놓았다.
시인은 간밤에 많은 이들이 악인이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밤에 악인이었던 이가 낮에 선인이 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정덕재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벽에 박힌 못과 책상 앞 의자는 옷걸이였다. 벽에 못을 박은 지 오래됐다. 시가 옷걸이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함부로 구겨지는 세탁소 옷걸이의 운명 혹은 슬픔일지라도, 매달린 삶은 늘 위태롭기에”라고 밝혔다.
도서출판 걷는사람 관계자는 “늘 경계의 외줄타기를 하는 많은 삶들이 ‘선인 속 악인’의 모습이 아닐까”라며 “어수선한 시대에 정덕재 시인의 시집을 펼쳐놓고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연말연시를 보내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라 추천했다.
한편 1966년 태어나 부여에서 자란 정덕재 시인은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청소년시집 ‘나는 고딩 아빠다’를 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