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트북을 열며] 정치라는 이름의 폭력
    [노트북을 열며] 정치라는 이름의 폭력
    • 지유석 기자
    • 승인 2019.12.02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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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달 29일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달 29일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에 앞서서 우리 민식이법 등에 대해 먼저 상정해 통과시켜줄 것"이라고 제안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 자유한국당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지난 주말 자유한국당을 규탄하는 비난 여론이 하늘을 찔렀다. 발단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199개 민생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민식이법’ 본회의 통과가 불투명해지면서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달 29일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에 앞서서 우리 민식이법 등에 대해 먼저 상정해 통과시켜줄 것"이라고 제안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더불어민주당에게 화살을 돌렸다. 나 원내대표는 "민식이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지 못하게 한 것은 바로 여당이다. 우리는 본회의 열어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식이법은 애당초 필리버스터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날 본회의가 열렸다면, 금요일 본회의가 열렸다면 민식이법은 통과됐다"며 "애당초 여당은 민식이법을 통과시킬 의지는 없고 민식이법을 정치 탄압의 칼로 쓰려고 한 의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은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해찬 대표는 2일 오전 국회 최고위원회에서 "199개의 법안을 필리버스터를 해서 국회를 마비시키는 일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상식 이하"라고 비판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민생을 볼모로 잡고, 20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국회를 전면 봉쇄하려고 기도한 반의회주의 정치 폭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회를 정상화하고 원상복구 시키는 일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 그 출발은 자유한국당이 199개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고 비쟁점 민생, 경제법안 처리의 길로 나서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밝히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어린이 생명안전법안 마저 ‘거래’되는 국회 

    어린이 생명안전을 강화하는 법안을 두고 벌어지는 여야 공방은 볼썽사납다. 이게 우리 국회 수준인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태호·유찬이법(어린이 탑승 차량 의무 신고)의 주인공인 태호아빠 김장회 씨도 29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진짜 너무하는 것 같다. 이게 대한민국 정치현실이냐?"고 되물었다. 

    이 지점에서 분명히 밝힌다. '여도 잘못했고, 야도 잘못했다'는 식의 양비론을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어린이 생명안전을 위한 법안은 정파적 이해와는 무관한 쟁점이고, 입법기관인 국회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안,·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법안 등 패스트트랙법안을 둘러싼 여야 대치는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 통과마저 불투명하게 만들었고, 결국 필리버스터에 발목 잡혔다. 

    정치는 거래와 타협이다. 그리고 타협은 때론 졸렬한 결과를 만들곤 한다. 하지만 거래와 타협도 어디까지나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건 정치의 기본이다. 

    문제는 어린이 생명안전 같이 정파적 이해와 무관한 의제마저 거리낌 없이 정치적 협상 카드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아이 잃은 부모가 "왜 우리 아이가 협상 카드가 되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오열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서 책임 소재는 분명히 해두자. 필리버스터로 국회 일정은 멈춰섰다. 민식이법, 그리고 유치원 3법 등 민생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지도 불투명해졌다. 이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한국당에 있다. 

    나 원내대표로선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론은 민식이법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느냐 안했느냐를 따지는 게 아니다. 패스트트랙 상정 저지라는 당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어린이 생명안전법안을 요구 조건으로 내건 행태에 분노하는 것이다. 

    또 하나, '민식이법'의 대표 발의자는 민주당 강훈식 의원이다. 그런데 한국당 이명수 의원(아산갑)도 비슷한 법안을 10월 15일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어린이 보호구역에 도로표지·도로반사경·과속방지시설·미끄럼방지시설·방호울타리·무인 교통단속용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설치 비용은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식이법'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여러모로 모양새가 이상하다. 자당 의원이 낸 법률안마저 발목잡히게 됐기 때문이다. 2016년 20대 국회 개원 첫날 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이 당론 1호 법안으로 낸 청년기본법이나, 포항지진특별법 등도 국회 문턱 앞에서 멈춰섰다. 

    지금 한국당은 여론의 질타에는 아랑곳없이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2일 한국당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최고위원회를 열고 유재수 前 부산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지난해 6월 13일 지방선거 당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불법개입 의혹, 그리고 우리들병원의 고액대출에 대한 친문인사의 관여 의혹 등을 집중 비판했다. 

    한국당이 '3대 친문 게이트'로 규정한 사건은 검찰 수사 중이고 의혹 당사자인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은 특검 등을 요구하며 적극 항변에 나섰다. 무엇보다 의혹 사건과 별개로 정당은 국회에서 수행해야 할 본연의 과제가 있다. 

    한국당은 국회 안에서 풀어야 할 문제는 필리버스터로 막고, 대정부 투쟁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자신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폭력은 전쟁터에서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온전함을 짓밟을 때 폭력은 자행된다. 따라서 정치에서 상대방을 악마화하거나 절박한 인간적 요구를 무시한 채 정치적으로 편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한국당이 민식이법을 두고 벌인 일은 "절박한 인간적 요구를 무시한 채 정치적으로 내린 편한 결정"에 완벽히 부합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를 빙자한 폭력 행위를 지켜보는 일은 무척 괴롭다. 정치를 빙자한 폭력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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