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읽기] 부모의 가르침
[성광진의 교육읽기] 부모의 가르침
  •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 승인 2019.12.0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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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굿모닝충청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부모는 자식의 첫 번째이자 으뜸가는 스승이다. 가정생활을 통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일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자를 통해 그 품성과 자질을 크든 작든 물려받게 마련이다. 만약 자식이 자신과 같은 소질을 타고나 그 소질대로 길을 걸어갈 때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할까?

자신을 넘어서는 더 큰 실력을 쌓아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떤 부모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눈에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성장할수록 안타까움이 더욱 크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아이에게 전수하길 원하고, 자신이 겪은 실수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러저러한 지도를 하게 마련이다. 과련 이러한 자세는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것일까?

아버지께 “정말 잘할 자신이 있다”고 다짐하고 야구를 시작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왼손타자를 하라”(이정후는 원래 오른손잡이다)고만 조언해 주셨잖아요. 다른 말씀은 전혀 안 해주셨고, 기술 같은 것도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죠. 감독님, 코치님 지도대로 하라고. 그리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만 하셨죠. 그래도 전 하나도 안 섭섭했어요. 아버지는 그냥 우리 아버지니까…. 나름 많이 참으셨던 것도 알아요. 하긴 제가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도 있는 것 같네요.

아버지는 제가 경기에서 못 하거나 잘 하거나 집에 돌아오면 항상 “잘했다”고 칭찬과 격려만 해주셨잖아요. 생각해보니 야구 시작하고 지금껏 아버지께 야구로 혼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거죠. 경험상 경기를 망치면 가장 속상한 게 선수 본인 자신이라는 것을. 승부 근성은 아버지보다 더 강하다고 늘 주변에 말씀하셨으니까 제 마음을 헤아리셨던 거겠죠. (이하 생략)
-‘야구 선수 이정후’가 어버이날을 맞아 아버지 이종범에게 띄우는 편지, 한겨레 기사 2017.05.04.-

21살의 국가대표 야구선수 이정후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격의 달인이다. 올해 개인 최다인 193안타를 비롯, 3년간 535안타를 쳤다. 지금 같은 능력이라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3천 안타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한국야구 역사에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불멸의 이름이다. KBO리그 통산 1706경기에서 타율 0.297, 1797안타, 194홈런, 510도루를 기록했다. 안타와 도루에 있어 당대 최고였을 뿐 아니라 유격수로도 최고의 자질을 뽐냈다. 이종범은 야구에서만큼은 다재다능하였고 지금까지도 그를 넘어서는 선수를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이종범이 야구선수 아들에게 타격에 대해 아무런 지도도 하지 않았단다. 아들인 이정후가 말하는 대로 기술 같은 것은 전혀 가르쳐 주기 않고 묵묵히 지켜보았다는 것은 아버지로서는 참기 힘든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기술과 능력이 최고였기 때문에 아들이 모자란 부분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고 그때마다 한마디라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익히거나, 또는 바꾸면 나아질 수 있는 점이 눈에 띄었을 것이고, 그때마다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얼마나 컷을 지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종범이 만약 아들의 타격 실력이 부족하다 싶어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하다 보면 오히려 타격 자세를 망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아들은 아들이 추구하는 방식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타격 기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변화하는 시대를 거슬러 가는 것일 수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스포츠도 환경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기술이 거듭나게 되는 것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어 아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길을 따라오는 아이를 묵묵히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따라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앞장서서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지도를 하게 마련이다. 또 이러한 지도를 아이에 대한  간섭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올바르게 이끌었다고 뿌듯하게 생각한다. 부모들은 자신이 이루어낸 성공이나 성과에 자부심을 가질수록 자식도 그 정도에까지 오르거나 자신을 넘어서길 바란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나 부유층일수록 자식의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영어유치원에 조기 영재교육, 조기 외국 유학, 특목고 진학 등 아이들에게 쏟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부모의 이러한 욕망에 아이들이 부담을 갖게 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나름 하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고 더 열심히 하라고 하니까, 의욕이 없어지고 반감만 나타나서 학교 다니기가 싫어져요.”

학교에서 학생을 상담할 때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에 대한 방관과 무관심도 옳지 않는 태도이지만 자신의 욕망을 아이를 통해 이루려고 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대부분의 사교육은 대체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음악, 미술, 스포츠는 물론이고 영어, 수학, 작문, 독서 등을 통해 아이들의 숨어 있는 재능을 찾아내고 능력을 키워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교육은 부모의 욕망이 투사된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보는 이종범 같은 부모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부모와 자식이 삶을 영위하는 가정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기본적이면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이다. 가장 중요한 교사로서 부모는 무엇보다 인격적인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

부모는 불안하고 힘든 아이들에게 안식을 주고 칭찬과 격려를 통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럴 때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이 편지의 끝 내용과 같은 것은 아닐까?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모두 부모님 덕분입니다. “아버지처럼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지만 사실 아버지의 야구 명성은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바람의 손자’가 아닌 ‘야구 선수 이정후’로 한 번 당당히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일희일비도 하지 않으려고요. 그게 아버지를 닮아 같은 길을 가려는 제 나름의 방식입니다. 어머니께는 문자로 가끔 말씀드린 것 같은데 아버지께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아버지…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야구 선수 이정후’가 어버이날을 맞아 아버지 이종범에게 띄우는 편지, 한겨레 기사 2017.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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