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학문은 잃어버린 마음(仁)을 찾아가는 것”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학문은 잃어버린 마음(仁)을 찾아가는 것”
    (39)맹자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19.12.08 1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식교육하면 생각나는 것이 맹자 어머니입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모단기(孟母斷機)를 익히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맹자(孟子)》 읽기는 엄두도 못 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읽었습니다. 초보자가 《맹자》를 처음 접할 때, 적어도 이 정도 조언을 하면 읽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맹자》를 감히 소개합니다. 《맹자》는 처음부터 세상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내용이 급진적이어서 유학을 탄압한 진(晉)나라는 물론이고 중국 역사에서 오랫동안 읽히지 않았습니다. 천년이 지나 송나라 주희(朱熹)에 이르러 『논어』, 『대학』, 『중용』과 함께 사서(四書)의 하나로 채택되어 경전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맹자는 나이 70여 세 되어 오랜 방랑을 접고, 제자인 만장(萬章), 공손추(公孫丑) 등과 함께 지금의 산동지방 남부 추(鄒) 나라로 돌아와 맹자 7편을 완성합니다. 나중에 조기(趙岐)라는 학자가 이를 상하로 나눠 14편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맹자가 지은 책은 7편 261장 34,685자입니다. 엄청난 분량입니다.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은 맹자가 천하를 주유하면서 군주들과 나눈 대화와 일화로 꾸며져 있고, 〈이루〉, 〈만장〉, 〈고자〉, 〈진심〉은 교육과 본성론 등 이론적인 내용입니다.

    맹자는 공자의 제자가 아닙니다.
    공자는 춘추시대 사람이라면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입니다. 춘추시대 군주는 귀족들로부터 견제 받는 제한 군주였다면, 전국시대 군주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군주였습니다. 천하를 통일하려는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한 음모와 하극상의 난세였습니다.

    맹자(기원전 385~304)가 태어날 때는 공자(기원전 551년~479년)가 죽은 지 이미 100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잇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입니다. 공자의 사상을 사숙(私塾)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맹자 철학은 인(仁)을 사회화한 의(義)입니다.
    공자의 인(仁)이 맹자에 의해서 의(義)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맹자는 군주를 백성의 혈로 부국강병을 내세워 백성을 군주의 이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맹자는 제1장에서 제일 먼저 꺼낸 말이 의(義)입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왕은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져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맹자는 정색하고, “왕께서 어찌 이(利)를 말씀하시냐”라며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답합니다. (梁惠王 上)

    맹자는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의 길이라고 합니다.(告子 上) 국가 간의 통일을 위하여 당장 부국강병을 목표로 하는 군주들에게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사회적 정의는 너무 거리가 먼 사상입니다. 맹자는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으면 곧 찾을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잃으면 찾을 줄 모른다고 하며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告子 上)

    맹자는 천하를 잃거나 얻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얻느냐 원성을 사느냐’하는 민심(民心)에 달려있다고 보고, 백성이 원하는 것은 얻게 해주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은 실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離婁 上) 정책의 향방은 오직 민심에 달려있습니다. 이는 군주의 도덕적 마음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인(仁),즉 남을 사랑하는 것의 사회화입니다.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합니다.
    아무리 남의 물건을 빼앗는 산적 두목이라도 어린아이가 우물로 기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달려가서 구합니다. 왜 구하냐고요? 그냥입니다. 마음이 움직여서 그런 것이지 몸값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선설의 요지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입니다.(公孫丑 上) 곤경에 빠졌을 때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맹자는 산을 빗대서 성선설을 말합니다. “우산(牛山)에 초목이 없으나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큰 나라의 마을이 가까이 있다 보니 남벌되어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본래 나무가 없었다고 생각한다.”(告子)

    맹자는 산적 두목에도 있는 그 마음을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 등 네 가지로 나눠 사단(四端)이라 칭하고, 사단으로부터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사덕(四德)을 끌어냅니다.(公孫丑上) 사단을 가지는 것은 마치 사지(四肢)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단(四端)이 없으면 짐승입니다. 다만 선(善)의 가능성은 본성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선한 행위 자체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한 행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질을 갈고닦아야 선한 본성이 나옵니다.

    인간의 본성도 사회적 입장에 따라 다릅니다. 성선(性善)이란 어떤 경우에나 변함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일(術)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화살이 사람을 상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하여 어찌 그가 사람이 상할까 봐 걱정하는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불인(不仁) 하겠느냐고 합니다. 직업의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公孫丑 上)

    성선설과 왕도정치(王道政治)는 밀접한 관계입니다.
    맹자는 성선설을 통해 자신이 제시하는 왕도정치가 타고난 본성에 부합하는 정치이며, 따라서 결코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맹자는 왕도를 실천할 자질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성선(性善)의 본질인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제선왕에게 있는지 확인합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사지로 끌려가는 소(牛)를 차마 볼 수 없어서 양(羊)으로 바꾸라고 한일이 있는지 묻습니다. 왕은 그런 적이 있다고 합니다.(梁惠王 上) 그 이유는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비록 만남의 관계에서 느꼈지만, 제선왕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덕을 가진 군주의 어진 마음을 보았습니다.

    맹자도 공자와 같이 도덕적 인격을 강조합니다. 천하제일의 마부 왕량(王良)에게 임금의 총신(寵臣) 해의 사냥 위해 마차를 몰게 합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한 마리도 못 잡아서 해로부터 천하의 형편없는 마부라고 질책을 받습니다. 왕량이 다시 몰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해가 열 마리를 맞히자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왕량에게 해를 위해 마차를 몰겠느냐 묻자 단호히 거절합니다. 법도대로 마차를 몰아 하나도 잡지 못하자 질책을 하고, 법도를 어겨서 열 마리 잡고서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권세가일지도 그를 위해 마차를 몰지 못하겠다고 합니다.(滕文公 下)
    맹자는 자신의 인격적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강인한 호연지기(浩然之氣)입니다. 외부의 지위와 세력 때문에 몸을 굽히지 않고 정의(義)와 정도(道)를 걷는 강한 정신력입니다. 맹자는 당시 으리으리한 집과 맛난 음식을 먹으며 부귀를 자랑하던 이들을 향해 과연 그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추구했는지 물었습니다.(離婁 下)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남의 이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입니다. 공자는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어린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이것은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도덕적이냐의 문제는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離婁 上)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고, 한 집안의 경우도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고,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후에 다른 나라가 공격한다고 말합니다. 태갑(太甲)에 ‘하늘의 재앙은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지은 재앙은 피해서 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離婁 上) 또, 인(仁)이라는 것을 활 쏘는 것에 비유합니다. 활을 쏘는 자는 자신을 바로잡은 후에야 발사합니다. 설사 발사해서 명중시키지 못해도, 자기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돌이켜 반성할 뿐입니다.(公孫丑 上) 과녁에 맞추었느냐 하는 문제는 나의 문제이지 상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맹자의 사상은 백성을 우선시하는 민본주의(民本主義)입니다. 《맹자》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는 부분은 민본사상(民本思想)입니다. 맹자의 핵심 사상 의(義)가 발전된 것입니다. 당시는 군주를 귀하게 여기고 백성을 천시했는데 맹자는 백성을 더  강조했습니다. 18세기 근세 사상가 루소(Rousseau)나 홉스(Hobbes)의 사상을 그 당시에 피력했습니다. 민위귀(民爲貴) 사직차지(社稷次之) 군위경(君爲輕).(盡心 下) 천하는 백성의 것입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고 군주가 가장 가볍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직은 조상신을 모시는 제단입니다.

    맹자가 꿈꾼 세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먹고 사는 일상의 일이 해결되어야 하고, 또 하나는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無恒産而有恒心者. 맹자는 일정한 소득이나 부 같은 항산(恒産)이 없으면 백성들의 도덕인 마음인 항심(恒心)을 가질 수 없다고 합니다.(滕文公 上) 경제적 여건이 충분치 않으면 예의를 갖출 수 없고, 나아가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어야 도덕적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선왕이 맹자에게 “신하가 자기 왕을 죽이는 게 옳습니까?” 물었습니다. 맹자의 답변은 단호합니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합니다. 잔적(殘賊)한 사람은  필부(匹夫)입니다. 한 사람의 필부인 주(紂)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어도 왕을 시해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梁惠王 下) 공자의 말씀처럼 임금답지 않은 사람은 임금이 아닌 것입니다. 흉폭한 왕을 폐위시킬 수 있다는 혁명론입니다. 지금은 상식 같은 이야기지만 조선 후기 때까지 맹자의 민본은 금기였습니다. 공자의 인도(人道)에서 맹자의 인정(仁政) 의(義)로 발전하면서 유가적 도덕철학은 정치철학으로 확대 전개되었습니다.

    맹자의 민본사상은 정치사상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민본사상은 백성과 함께 즐거워한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사상입니다. 양혜왕이 연못가에 서서 큰 기러기와 사슴들을 돌아보며 맹자에게 묻습니다. “현자도 또한 이것을 즐거워합니까?” 맹자는 대답합니다. “현자라야 즐길 수 있습니다. 폭군이라면 즐기지 못합니다.”(梁惠王 上) 현자는 백성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맹자는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위한 공동체를 갈망했습니다.
    《맹자》의 이야기가 무조건 옳을 수는 없습니다. 맹자를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맹자만큼 문장이 힘차고 논리정연하고 심오한 뜻을 지니고, 현재에도 타당하며 사람의 정기(正氣)를 곧게 하는 책은 없습니다. 어느 학자는 단 한 권의 고전을 택하려면 《孟子》를 천거한다고 합니다. 맹자는 공자나 순자와 비교하여 인간 내면의 심성(心性)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맹자의 가치 추구에서는 인격의 완성을 논리적 귀결점으로 보고, 나아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맹자의 철학은 코앞의 이익만 보는 우리들에게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회에 대한 희망적 전망을 제시합니다. 맹자는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한 용기 있는 사상가입니다. 저는 신영복의 『강의』, 『담론』으로 시작하여 황광욱님의 《맹자》와 박경환님의 《맹자》를 두루 읽었습니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