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안철수 전 의원이 독자행보를 택했다.
안 전 의원은 29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는 오늘 비통한 마음으로 바른미래당을 떠난다"고 밝혔다.
안 전 의원의 탈당은 여러모로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손학규 대표와 당권을 두고 갈등하는 모양새를 연출한 점이 특히 그렇다.
저간의 상황으 재구성해보자. 설연휴 마지막날인 27일 손 대표와 안 전 의원은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안 전 의원은 비상대책위 구성을 제안하면서 위원장직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28일 기자회견에서 "많은 기자, 카메라를 불러놓고 저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일방적 통보, 언론에서 말하는 소위 ‘최후통첩’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개인 회사의 오너가 CEO를 해고 통보하는 듯 말이다"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손 대표로선 안 전 의원에게 배신감을 느낄 만 하다. 지난 해 11월 자유한국당이 보수대통합을 추진하면서 안 전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러자 바른미래당 당권파는 "왜 남의 당 사람까지 언급하며 수구야합의 패악을 희석하려 하는가?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수구세력이 미래를 위해 헌신 중인 안철수 전 대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안 전 의원이 손 대표를 찾아오자 손 대표는 꽃다발까지 준비하면서 융숭하게 맞이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안 전 대표가 당권을 내놓으란 식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스스로 안 전 의원의 태도에 "마음속으로 상당이 당황했다"고 고백했다.
정치인 안철수, ‘새로운’ 정치인이었나?
이 지점에서 '정치인 안철수'의 존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안 전 의원은 정치재개를 선언한 시점부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 같은 관심에 화답이라도 하듯 안 전 의원은 19일 귀국 후 손 대표와의 갈등과 바른미래당 탈당까지 화제를 몰고 다녔다.
안 전 의원의 이슈 집중도는 정치입문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정치인 안철수가 이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질을 갖춘 정치인인지는 의문이다.
갓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안 전 의원을 향한 여론의 기대치는 높았다. 특히 줄서기 정치, 금권 정치, 지역감정 등 기존 정치권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부동층은 안 전 의원에게 '새정치'의 희망을 걸었다.
이 같은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안 전 의원은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을 나와 다음 해인 2016년 2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이어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호남지역구를 석권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서 좀처럼 제3당 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 와중에 안 전 의원의 발걸음은 오른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논란이다.
2016년 7월 안 전 의원은 성능과 비용, 대중국 관계, 전자파 문제 등을 거론하며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당도 입장을 같이 했다. 민주당이 사드 문제에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음을 감안해 볼 때 무척 파격적인 행보였다.
하지만 안 전 의원은 조금씩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안 전 의원은 2016년 9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중국이 대북 제재를 거부한다면 자위적 조치로서 사드 배치에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보수 지지층을 의식한 입장변화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뿐만 아니다. 안 전 의원은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대표와 바른미래당을 창당하려 했다. 이 같은 행보는 호남지역 민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당장 바른정당 내 호남지역 의원들은 바른미래당 창당에 반발해 민주평화당으로 갈라섰다.
2017년 대선, 그리고 2018년 6.4 지방선거에서 안 전 의원은 연거푸 패배를 맛봤다. 무엇보다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대놓고 '내가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별칭 – 글쓴이) 아바타입니까?'라고 물은 건 안 전 의원으로선 뼈아픈 실수였다.
6.4 지방선거에선 서울시장 후보로 '급'을 낮췄음에도 김문수 한국당 후보에 밀려 3위에 그쳤다. 잇단 패배는 안 전 의원에겐 치명타나 다름없었다. 결국 안 전 의원은 퇴장을 선택했다.
그간 안 전 의원이 보여준 행보를 살펴보면 분명한 색깔을 내기보다 상황에 맞게 입장을 바꿔온 적이 더 많았다. 정계복귀 선언도 마찬가지다.
안 전 의원은 2일 “미래를 내다본 전면적인 국가혁신과 사회통합, 그리고 낡은 정치와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청산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는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적었다. 그런데 아무리 따져도 정계복귀 선언은 안 전 의원이 자주 쓰는 낱말의 재탕에 불과했다.
손 대표와의 갈등 과정은 더욱 어처구니 없다. 손 대표는 다소 격앙된 어조로 안 전 의원이 아무런 설명 없이 해고 통보 하듯 비대위원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했다고 밝혔다.
안 전 의원이 바른미래당 창당을 주도했고, 따라서 일정 지분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모호한 명분으로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뚜렷한 배경 설명 없이 대표 면전에서 당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건 도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안 전 의원의 정치입문도 따지고 보면 도의와는 다소 괴리가 있었다. 안 전 의원은 고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공석이된 노원병에 출마를 선언했는데, 이를 두고 너무 쉽게 정치에 입문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었다. 안 전 의원의 바른미래당 탈당도 당시와 궤적이 비슷하다.
안 전 의원은 '새정치'란 슬로건을 즐겨 입에 올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새정치는 더 이상 새롭지 않아 보인다.
언론의 관심도 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안 전 의원이 가지는 가치는 보수통합의 변수 정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