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부조리 만연한데, 관련 공약은 왜 안보이나?
노동 부조리 만연한데, 관련 공약은 왜 안보이나?
노동법원 설치 필요성 일깨운 한 프리랜서 PD 죽음
  • 지유석 기자
  • 승인 2020.02.09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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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청주방송 14년차 프리랜서 고 이재학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 시청자가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 독자제공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4일 청주방송 14년차 프리랜서 고 이재학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 시청자가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 독자제공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청주방송(CJB)에서 일하던 한 프리랜서 PD의 죽음이 만연한 부조리를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4일 청주방송 14년차 프리랜서 고 이재학 PD는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디어오늘> 보도와 한국PD연합회 성명서 등에 따라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고 이 PD는 2018년 4월 기획제작국장에게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이 같은 요구에 사측은 고 이 PD를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다. 고 이 PD는 이에 맞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CJB 직원이 아니라는 사측의 주장을 받아 들였다. 

"원고(이 PD)는 오랫동안 AD로 일했고, 근무형태는 정규직과 달리 특정 시간 및 장소에 출퇴근할 의무가 없었고, 회사는 그의 근태를 관리하거나 징계 등으로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청주방송으로부터 지휘·감독을 받은 건 사실이나 부수적 업무 범위 내의 것으로 보일 뿐"이라는 게 사건을 맡은 청주지방법원 민사6단독 정선오 판사의 판단이었다. 

사측의 압박과 사측 간부의 허위증언은 고 이 PD를 절망에 몰아넣은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오늘>은 5일 고 이 PD가 "회사가 진술서를 낸 직원들에게 전방위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당사자들이 두려워한다"고 보도했다. 

한국PD연합회도 6일 성명을 통해 "이 PD가 가장 억울해 한 것은 동료 PD들이 법정에서 증언하지 못하도록 사측이 압력을 넣은 사실이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고 이 PD를 죽음으로 내몬 관행, 즉 프리랜서로 채용해 임금에 차등을 두면서 정규직 전환 보장도 없이 정직원과 다름 없는 업무지시를 내리다 권리를 주장하면 '하차' 시키는 관행은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노동자성을 주장했을 때, 이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사법부가 종종 노동 사건에 대해 인식 부족을 드러내는 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고 이 PD의 경우도 노동자성 입증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해선 "판사가 노동이 뭔지, 노동자가 뭔지 도통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이 PD가 언론에 남긴 말은 현재 사법부가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탄식 보다 제도 개선 고민해야

만약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했다면 먼저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뒤, 결과에 따라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 중노위 재심에 불복할 경우 서울행정법원에서 행정 소송으로 들어간다. 

그만큼 구제절차가 복잡하고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는 말이다. 매월 임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노동자로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고 이 PD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경우는 자신의 노동자성부터 입증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건 법원이다. 노사 갈등에서 사법부의 저울은 '회장님'에게로 기울기 일쑤다. 사측의 죄를 물으면서도 '지역경제 기여'를 들먹이며 형을 깎아준다. 반면 노동자의 경우는 가혹하다. 지난 달 초 단순 폭행에 가담한 노동자의 형을 올리면서도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 수감된 전 대표이사의 형이 깎인 사례가 있었다. 

물론 사법부가 다 이렇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분명 저울추가 사측에게 쏠리는 경향을 보이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판사가 노동이 뭔지, 노동자가 뭔지 도통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고 한 고 이 PD의 탄식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제 마냥 부조리만 탓하며 탄식할 수는 없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선 노동사건을 전담하는 노동법원을 설치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법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일단 우리 법원은 모든 사건을 심리하는 데다, 법관의 정기인사로 노동 분야 이해도를 높이기 어려운 구조다. 

또 앞서 언급했듯 현행 제도는 복잡하고 상당 시간이 소요돼 임금 노동자는 2중, 3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사측이 이 같은 상황을 악용해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전략도 구사한다.

지금 정치권은 총선 준비로 분주하다. 지지층을 노린 맞춤형 공약 개발에도 한창이다. 그러나 '노동'은 여야 모두의 관심 밖에 있어 보인다. 노동 관련 공약을 낸 정당은 현재로선 정의당이 유일하다. 

20대 국회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노동에도 과감한 개혁 행보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직장 내 채용 부조리로 고통 당하던 한 유망한 프로듀서가 사법부의 노동 인식 부족을 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노동법원은 이 같은 비극을 막는 한 제도적 수단일 것이다. 여야가 이 점을 고민해 주기 바란다. 특히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던 정부 여당이 앞장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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