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52] 마을이 지켜 온 나무, 나무가 지켜 온 마을...금산 마수리 느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52] 마을이 지켜 온 나무, 나무가 지켜 온 마을...금산 마수리 느티나무
  • 장찬우 기자
  • 승인 2020.02.21 16: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굿모닝충청 장찬우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충남 금산군 금성면 마수리.

마수마을은 금성산(錦城山·439m) 자락에 깃든 작은 마을이다.

지형이 말 머리를 닮았다 해서 마수리다.

금성면은 금성산을 제외하곤 산지가 많지 않다.

기신천이 너른 평야 중앙부를 지나 내륙 지역에선 보기 드문 곡창지대다.

마수리 마을은 산을 등지고 완만한 비탈과 평야가 만나는 곳이다.

풍수상 금성면에는 천마지풍혈(天馬之風穴; 말이 산자락을 박차고 승천하는 형세)과 선인망월혈(仙人望月穴; 신선이 달을 바라보는 형세), 옥녀단장혈(玉女丹粧穴; 선녀가 화장하는 형세) 등의 명혈이 숨겨져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금성산 주변을 헤매는 지관들이 많았다.

고관대작에 오르거나 거부가 됐다는 사람은 없지만 배곯는 사람은 없었다 하니 이만하면 명당이라 할만하다.

대개 마을 동구는 수구(水口)로도 불리는데, 수구는 산기슭을 따라 흐르는 물이 집결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마을의 기운이 모여드는 장소로서의 의미도 가진다.

따라서 수구막이를 위해 동구 밖에 숲을 가꾸고 보전하는 일은 한 마을의 대사였다고 전한다.

마수리 마을과 가까워지면 가장 먼저 외지인들을 맞는 것은 동구 밖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다.

여타 동구 숲들이 그러하듯 마수리 소나무 숲 또한 수구막이를 위해 조성된 비보림(裨補林)으로, 0.6㏊ 면적에 70~140여 년 수령의 소나무 40여 그루가 동구 밖을 감싸고 있다.

이 마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동구 밖엔 낙락장송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숲이 훼손된 이후 마을 또한 폐촌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백낙헌(白樂憲)이라는 사람이 150여 년 전에 사재를 털어 숲을 가꿨다고 전해진다.

숲이 다시 채워지기 시작하자 주민들도 뒤따라 숲 가꾸기에 동참했다.

몸으로 시달려 숲의 영험함을 깨달은 마을사람들은 숲과 마을의 운명을 동일시해 삭정이 하나만 함부로 가져가도 쌀 닷 말의 벌금을 물렸다고 한다.

고사목이 생겨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고, 베어낼 적에는 반드시 마을총회의 결의를 거쳤을 정도로 숲을 다루는 마을의 법도는 지엄했다.

그렇게 숲은 점차 제 모습을 되찾았고, 마을의 횡액도 물러갔다.

팔도의 초목이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속절없이 베어지고 쓰러질 적에도, 마수리 소나무 숲은 주민들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온전했던 것이다.

한국전쟁 중 경찰 별동대의 땔감용으로 숲이 사그라질 위기를 맞았을 때에도 주민들은 “나무를 건드리면 동네가 망한다”며 목숨을 걸고 숲을 지켰다고 한다.

물론 호(戶) 당 5000원씩 갹출한 뇌물의 힘도 컸다.

급격한 마을의 인구 감소로 숲의 영험함을 기억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마수리 소나무 숲의 신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고, 숲 안은 새잎의 숨결로 싱그럽다.

이젠 산림청과 금산군이 숲의 가치를 깨닫고 주민들을 대신해 숲을 가꾸고 있다.

‘상마수 소나무 숲 산림욕장’이라는 새 이름으로 탈바꿈한 마수리 마을의 동구 숲은 이제 지역구를 벗어나 전국구로 발을 내딛고 있다.

마을 초입에 200년 넘은 느티나무도 볼 걸리다.

오랜 세월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해 온 느티나무는 여전히 높이 솟아(수고 15m, 둘레 330㎝) 마을을 굽어 보고 있다.

소나무 숲과 느티나무가 지켜 온 마을은, 마을사람들은 이제 나무를 지키고 있다.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 온 나무에 대한 보답이리라.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