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을 풀어놓고 보태는 작가들의 ‘둥지ʼ
사연을 풀어놓고 보태는 작가들의 ‘둥지ʼ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⑦ 산호여인숙 서쪽 - 대동 작은집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4.12.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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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벽지장판을 파는 매장과 진미 치킨집 사이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대전시 대동 종합사회복지관 건물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모퉁이를 돌면 개나리 아파트, 진달래 아파트가 나오고 맞은편 담벼락에 그려진 색색깔의 예쁜 벽화를 구경하며 오르다 보면 어느새 살짝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온다. 분명 <대동 작은집> 은 대전도시철도 대동역 7번 출구에서 도보로 15분이라 했지만 ‘급격한 오르막길’ 을 통과해야 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데 한 남자아이가 휭~하니 빛의 속도로 내 앞을 앞질러 간다. 등에는 책가방을 매고 심지어 신발주머니를 힘차게 돌리며 저 경사언덕을 한달음에 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아, 매일 이 비탈길로 등하교를 한다는 건가? 한겨울 빙판이 지면 굉장히 위험하겠는데?’ 괜히 짠하고 걱정이 앞선다는 건…

나는 이제 패기도 모험심도 다 잃어버린, 지루하기 짝 없는 어른입니다, 라는 커밍아웃일지도. 볼 빨간 저 개구쟁이는 이미 튼튼한 푸대 자루나 눈썰매용 보드 같은 걸 준비해 놨을지 모른다. 꽤나 스릴 넘치는 눈썰매장이 될 이곳에서 씽씽 내달릴 기대로 가득 차 있을지도… 어쨌든 초딩도 쉬지 않은 언덕길이다.
초딩에게 질 수 없다는, 아무 의미도 없고 쓸데도 없는 경쟁심으로 멈췄던 발걸음을 재촉하니 <대동 작은집> 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뒤로 대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만큼 높은 곳이다.

지난 봄 문을 연 ‘대동 작은집’ 이 어떤 곳인지 알려면 먼저 산호 여인숙 얘기부터  해야 한다. 이미 산호 여인숙은 대전 원도심 문화, 대흥동 문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심이 되었다. 산호의 주인장은 30년이 훌쩍 넘은 낡고 허름한 여인숙 건물을 낭만과 운치 넘치는 여행자 숙소로 탈바꿈 시켰고 다양한 문화 실험의 장으로 멋지게 변신시켰다. 산호 여인숙은 이미 전국의 여행자들과 문화 예술인들 사이에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벌써 3년째를 맞는다는 산호가 내놓은 또 하나의 공간이 바로 대동 작은집. 대동 작은집의 분위기는 산호 여인숙과 맥을 같이 하지만 비슷한 듯 또 다르다. 산호 여인숙이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 개념이라면 이 곳 대동 작은집은 창작자를 위한 작업실 개념이다. 이것이 가장 확연한 차이점이다. 건물의 1층은 작가가 머물며 창작활동을 하는 일명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창작 공간’ 2층은 대동 주민들을 비롯, 누구에게나 개방된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도서관의 이름은 ‘똑똑 도서관’

대동 작은집의 창작실의 첫 번째 입주 작가는 ‘바닥’ 이라는 닉네임의 작가였다. 바닥은 지난 봄 바로 여기에 머물면서 글을 썼다. 그의 책은 조금 특별한데 단 세 쪽 으로도 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일명 ‘세쪽책’ 이다. 두 번째 입주 작가인 솔밧&페트릭 커플은 대동 작은집에서 '자연농(Final Straw)‘ 이라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한국, 일본, 미국의 자연농 농부들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먹을거리와 자연, 행복에 관한 생각을 담고 있다고. 

이들은 또한 다큐 작업을 하는 동시에 대동에서 만난 이웃들, 구석구석 동네의 재미난 풍경들, 소소한 일상을 ‘대동에서’ 라는 책으로 남기고 떠났다. 작가들 각기 개성과 색깔이 뚜렷하게 다르고 작업의 결과물도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일관되게 공통된 건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성과물을 위한 뻔한 작업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해진 기한 내에 무언가를 완성해야 한다는 조급증의 산물은 더더욱 아닌 듯 보였다. 아마도 이것이 대동 작은집의 입주 작가 선정 기준이 아닐까.

“무엇보다 여기서의 작업이 좋았던 건 단순히 공간을 사용한다는 의미를 넘어 내 작업이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에요. 든든하고 신났어요.“
지난 9월에 들어와 두 달 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세 번째 입주작가 이미선씨의 말이다. 만화작업을 하는 그녀는 이곳의 생활이 마냥 신났단다.

“전에 있었던 솔밧과 페트릭은 동네 주민들과 여기서 음식도 해먹고 교류를 많이 하면서 지냈어요. 저는 좀 더 저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었고 특히 혼자 있는 거… 정말 해보고 싶어서 오롯이 혼자 지냈어요. 정말 좋았어요.“

이곳에서 어떤 작업을 했는지 궁금하다고 묻자 그녀의 밝은 표정이 더 환해진다.
목표했던 작업을 다 마쳤기 때문이란다. 작가에게 있어 이 순간보다 더 기쁜 때가 있을까? 그녀의 표정이 유난히 홀가분해 보였던 이유가 있었다.
“작업한 거 갖고 올게요. 잠깐 기다려 주세요.”

작업공간을 보여 달라고 하자 지저분해서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세수도 안한 민낯의 얼굴은 카메라에 찍혀도 된다면서 작업실은 안 된다니… 대체 작업실이 어떤 지경(?) 인지 더 호기심이 커졌지만 할 수 없는 일. 그녀가 1층 작업실로 내려간 사이 똑똑 도서관의 책들을 둘러 보았다.

월, 화를 제외하고 매일 오후 1시에서 8시까지 누구에게나 개방된 이 공간은 도서관이라기 보다 아담하고 예쁜 북카페를 연상시킨다. 운영을 위한 후원 입장료가 있는데 일반은 500원, 특별히 대동 주민에겐 100원이다. 그리고 똑똑 도서관에는 조금 특별한 책장이 있는데 이름하여 ‘100인의 책을 공유하는 책장ʼ 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책 하나로 위로받고, 길을 찾은 적이 한번쯤은 있습니다.
이러한 책 한권의 의미와 감동을 대동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100인의 책을 공유하는 책장 프로젝트” 를 진행합니다.
함께 하는 방법
1.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서 감동과 의미를 공유하고픈 책 한권을 선택한다.
2. 선택한 책 표지 다음 장에 책 추천의 글을 (길이 상관없이, 편지 쓰듯) 적는다.
3. 후원한다.
-직접 만나 전달받으려 합니다.
-연락 주시면 저희가 가지러 가거나 오가시는 길에 주시면 됩니다. (산호 여인숙으로)
4. 책과 함께 인증샷을 찍는다.
5. 지인에게 소개한다.
6. 기간 : 2014. 3. 1 ~ 책장 채워질 때 까지
7. 책 비치 장소 : 대동 작은집 2층 “똑똑 도서관”

산호 여인숙과 대동 작은집의 블로그에 올라있는 ‘100인의 책을 공유하는 책장 프로젝트’ 의 내용이다. 안 보는 책, 처치 곤란의 책을 갖고 오는게 아니라 자신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책을 기증한다는 것이 남다르다. 그래서 여기 꽂힌 책들 한권 한권엔 소중한 개개인의 사람이 있고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단순히 100권의 책이 아니라 100명의 새로운 친구를 소개 받는 기분이랄까. 책장 앞에 서니 어떤 책 한권도 쉽게 지나쳐지지 않는다. 

이미선 작가는 이곳에서 두 권의 만화를 완성했다. 한권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이고 다른 한권은 ‘에너지로드’ 에 작가로 참여하며 만든 내용이다. ‘에너지 로드’ 는 말 그대로 우리의 삶 속에 중요한 에너지가 발생하는 근원을 찾아가며 그 이동 경로에 있는 사람, 동물, 식물 등 자연에 대하여 각자의 시각으로 고민하고 창작한 결과물을 전시하는 과정으로 산호 여인숙의 이번 레지던스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저는 사회 문제와 갈등현장에 관심이 많아요. 다소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를 좀 더 쉽게 만화로 풀어보는 과정에 있습니다.“
대동 작은집에서 입주 작가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개월. 한 곳에 정착하기 보다는 떠도는 게 오히려 익숙하다는 그녀의 다음 행선지가 궁금했다. 

“제주 강정으로 갈 거에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보고 느끼고 만화로 만들어야죠. 여기 있으면서 편안하게 충전 많이 했으니까 다시 불편함의 현장으로 나가는   게 맞는 게 같아요.“

어딜 가나 먹을 복 있고 운 좋다고 친구가 지어준 별명이 복희라는 미선씨가 대동 작은집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그렇게 보태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이 원고가 나갈 즈음에는 이미 떠났을지도 모른다.
이름처럼 복과 행운이 깃들길 빌며 나서는 길, 문득 다음 입주 작가가 궁금해진다. 다음 주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사연을 보태고 풀어놓을 것인지, 이곳은 흥미진진함으로 가득한 <대동 작은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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