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의 복지이야기] 영화가 제기한 복지적 문제들, 공감과 울림이 아쉽다
[김세원의 복지이야기] 영화가 제기한 복지적 문제들, 공감과 울림이 아쉽다
과거의 그림이 오늘을 말하는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들’
영화 기생충은 불평등 문제제기, 해결은 현실의 몫
  • 김세원 대전과기대 사회복지과 교수
  • 승인 2020.03.3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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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대전과기대 사회복지과 교수

[굿모닝충청 김세원 대전과기대 사회복지과 교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이후 불평등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무성하다.

미국 아카데미는 사회문제의 하나인 인종차별과 관련한 영화를 수상작으로 선정해 왔는데, 진 해크먼이 주연한 미시시피 버닝(Mississippi Burning)은 1989년 촬영상을 받았다. 1964년 미시시피 주 네쇼바 카운티에서 흑인 인권운동을 벌이던 청년 3명이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쿠 클럭스 클랜(KKK)’ 단원 10명에게 구타당한 뒤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을 다룬 영화다.

실제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지나서 영화로 제작이 되었지만, ‘깨어 있는 사람’들에 의한 인종차별 고발은 비극이 발생한 직후부터 계속되어 왔다. 노먼 록웰은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는 1965년 ‘미시시피 살인’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남겼다.

그는 이보다 조금 먼저 인권운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하나 남겼는데, 바로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Problem We Live With: 1964)’라는 그림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4명의 남자 사이로 검은 피부의 소녀가 걷고 있는 장면이다.

소녀는 루비 브리지스라는 실존인물이다. 1960년 당시 6살이었다. 배경을 알게 되면 마음 편히 보기 어려운 그림으로, 브리지스는 “흑인은 백인보다 지능이 낫다”고 주장한 루이지애나 주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지능검사를 받아야 했다. 지능검사를 통해 백인과 차등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고 교육당국이 우겼기 때문이다. 검사를 통해 브리지스의 학습능력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명이 났고, 뉴 올리언즈의 한 백인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림은 브리지스의 첫 등교 날 벌어진 상황이다.

노먼 록웰의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 시사 주간지 룩 (Look). 1964년 1월 14일자.
노먼 록웰의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 시사 주간지 룩 (Look). 1964년 1월 14일자.

백인과 KKK단의 협박으로 루비의 신변을 장담할 수 없게 됐고, 급기야 연방 보안관들이 투입되어 루비를 경호하는 장면이다. 학교의 담에는 깜둥이(Nigger)라는 섬뜩한 문구의 그래피티와 ‘흑인과 수업을 같이 듣기 싫다’며 던진 토마토의 파편이 물들어 있다.

이런 사건을 겪어서인지 브리지스는 인권운동가로서 삶을 살아간다. ‘루비 브리지스’라는 영화도 1998년 만들어졌다. 그녀가 세간의 주목을 다시 끈 것은 2011년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인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이 그림을 전시하면서 그녀를 초청한 것이다. 당시 이 이벤트를 놓고 “흑인 대통령까지 나왔지만 차별은 여전히 존재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었다.

“차별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들 하지만,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매우 힘들다. 포기해야 할 것도 많고, 그 가치와 기준을 지키기 위한 공감과 희생 · 통합의 과정이 너무도 어렵다. 또 어렵사리 마련한 틀과 상식, 통념을 지켜나가는 데 개인과 집단의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다른 나라 얘기를 할 필요도 없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서당은 남성들만 다녔다. 여성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야 여성이 운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1980년대만 해도 택시운전기사들은 ‘재수 없다’며 첫 손님으로 여성을 태우려 하지 않았다.

지난 해 개봉한 ‘82년생 김지영’은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박지영 대표는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개봉시킨 것이 기쁜 일이다”라는 감회를 밝혔다. 김지영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내 아내요, 딸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많은 고민거리가 생겨난다.

‘장애인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거친 외침을 발한 영화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다. ‘장애인의 사랑도 비장애인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당연한 말을 했지만 당시의 반향은 컸다. 제 59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 신인연기상 국제 비평가상 등을 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영화로 시대의 문제를 짚어낸 원조는 찰리 채플린일 듯싶다. 그는 ‘모던타임즈(1936년)’에서 노동자들의 소외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짚었다. 과거의 노동자들은 생산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작업환경이나 작업시간을 변경할 수 있었으나 자동화된 공장이 생겨나면서 이러한 자율은 없어졌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됐고, 자본가들이 의도한 시간대로 움직여야 했다. 소비는 풍요로워 졌지만 노동자들은 철저히 감시되고 노동력을 착취당했으며 기계의 부속품과 같이 취급되었다.

사람은 모두 품위있게, 또 자기 삶에 결정권을 행사하면서 살아야 할 당위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신장애인, 새터민, 성적소수자, 한부모가족, 다문화 가족, 외국인, 학교부적응학생, 비정규직 노동자, 정보화에 뒤처지는 사람들,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 등 에 관한 영화와 그림, 소설, 시, 연극 등이 더 많이 만들어 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고민하게 해야 한다.

문제는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데 있다. 영화는 문제를 제기할 뿐이고 해결은 우리들의 몫이다. 작품속의 인물과 상황이 ‘남’이 아닌 ‘나’의 상황이라는 공감과 울림이 없다면 해결과 치유는 난망하다. 공감능력을 키우는 일, 정말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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