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 1야당, 미래통합당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근래 한국 정치사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으니 그렇다. 위안거리라고는103석의 국회 의석을 확보해 가까스로 개헌 저지선을 지킨 것 뿐이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개표가 시작된 지 5시간 만에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자신이 선거에 떨어지는 게 기정사실화되고, 자당 후보들이 추풍낙엽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미래통합당이 국민들께 믿음을 주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곧 이어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도 기자 회견을 열었다. "자세도 갖추지 못한 정당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송구스럽다"고 했다. 솔직한 고백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 리더들의 당연한 퇴진 수순이지만 소 도둑맞고 외양간 고치려는 어느 촌부의 모습처럼 애처롭다.
미래통합당이 가엾게 느껴지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황교안 대표와 같이 용을 꿈꾸던 오세훈 후보가 낙마했고, 야당 투사로 화려하게 변신하며 야망을 불태우던 나경원 의원마저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했다. 대권을 꿈꾸던 자들이 일시에 구름되어 사라진 것이다. 말하자면 한 집안을 이끌던 가장이 모두 전사하였다
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후레자식 취급받으며 쫓겨났던 사람들은 서둘러 '저 집은 원래 내 집이었다'고 나발불며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홍준표와 김태호,권성동과 윤상현 당선자가 그들이다.
그들이 집에 다시 들어오는 것을 두고 집 식구들끼리 한 바탕 아귀다툼이 예상된다. '와라'
'아니다 오지마라'하고 큰 분란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노선과 이념 추구하는 가치가 출신 지역마다 제 각각인 정당 구성원들의 특성상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오든 말든 미래통합당은 현재로선 앞 길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 내년부터 대선 국면으로 접어 드는데 대권에 도전할 만한 후보나 리더가 없다. 정당은 권력을 잡기 위한 결사체요, 하나의 수단인데 정당을 대표할 상징성있는 인사가 없다.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설령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 해도 망한 집에 가서 '뱀 머리'역할을 자처하기도 쉽지 않은 일일 게다. 지난 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하고 대선에서 패하고 지방선거에서 패한 후 다시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당에서 새로운 미래를 도모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인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과거로 회귀하는 보수가 아니라 앞으로 달려가는 혁신 보수가 되어야 한다. 개발 독재시대의 향수에서 벗어나고, 올드 보이들의 굴레에서 탈출해야 한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천박한 프레임을 도려내야 만 한다
플랫폼, 즉 그릇도 키워야 한다. 보수라는 가치 아래 작은 그릇 하나 준비해 놓고 거기에다 아날로그 시대의 사람들을 담아내는 데 만족해선 안된다. 더 큰 그릇을 준비해서 디지털 세대의 담론을 담아내야 한다. 디지털 세대는 점차 아날로그 세대를 밀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2008년 총선부터 2012, 2016년 총선, 그리고 이번 총선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디지털 세대, 즉 50대 이하 사람들의 영향력은 급격히 커 왔다. 그들은 무한히 크고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 신문지 하나 들고 화장실을 찾는 세대가 아니다.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표심이 이번 총선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났다.투표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은 높은 투표율을 이끌어 냈다. 그들은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한국 정치에 쓰나미를 몰고 왔다.
정치란 사람을 모으는 기술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미래 통합당은 젊은 사람들을 주목하지 않았고 그들을 모으지도 못했고, 정서적 공감대도 형성하지 않았다. 도리어 선거운동 기간 동안 '3, 40대의 무지'를 탓하는 우를 범했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늦게 아는 것은 그 집 식구들'이라는 말이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 살다보면 거기에 함몰돼 변화하는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 미래통합당은 그 동안 우물 속에서 살아 왔다. 바깥 세상의 변화하는 에너지를 읽지 못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로 안주하며 책상퇴물처럼 살아왔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격화소양', 즉 신발 신은 채 발바닥 긁어 문제를 땜방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환골탈태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미래통합당이 정말 불쌍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국민은 바뀌었다. 다만 그들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이 길게 보고 다시 출발할 시점이라는 걸 미래통합당이 알기나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