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장찬우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이렇게 큰 아픔을 간직한 나무가 있었던가.
잔혹한 아픔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매일같이 새벽을 절망하는 나무.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에 있는 회화나무.
읍성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회화나무.
150년 전...
조선 후기.
왕조 이념인 성리학 가르침과 상반되는 서학, 이 땅에서 천주교는 말살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1790~1880년까지 90년간, 내포지방 천주교 신자 약 1000여 명은 반역에 준하는 국사범으로 몰려 바로 이곳 감옥에서 참살당했다.
국가에서 무고한 양민을 적절한 절차도 없이 잡아다 잔혹하게 고문을 하고, 또 처참하게 죽였던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나 극악무도하여 차마 기록하기도 꺼려서 자료로 남아있지 않고, 수천 명의 희생자 중에서 겨우 70명만 이름이 확인될 정도로 무자비했다.
당시 이곳에는 2채의 옥사가 있었고, 그 앞에 영문도 모르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바로, 이 나무에서 신념을 생명과 바꾼 역사가 있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음으로 속죄하려 한 초대 교황 베드로같이 이곳 무명의 희생자 1000여 명도 이 나무에서 기꺼이 처절한 순교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참살의 숫자가 많았던 1866년(병인박해)에는 서문 밖에서 생매장을 당했다.
날이 밝으면 또 다른 희생자들의 비명을 들어야 하는 회화나무는 새벽이 오는 것을 몸서리치며 맞이해야 했다.
2014년 이곳을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도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진정으로 보듬고자 했다.
지금의 한국 천주교가 자랑스러운 것은 이곳에서 고귀한 생명을 받친 피의 토대 위에 굳건하게 일어섰기 때문이다.
이제는 회화나무도 과거의 아픈 자책감에서 벗어나 새벽처럼 부활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십자가 나무가 되길 바란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