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커지는 도마동의 ‘명물’
마음까지 커지는 도마동의 ‘명물’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⑧ 도마큰시장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5.01.02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김장하는 날은 유난히 코끝이 쨍하도록 바람이 차고 쌀쌀했다. 마당에 두터운 비닐이 깔리고 리어카에 실려 온 배추 포기들이 층층이 쌓여진다. 창고 가득 연탄을 쟁여두고 김장독에 김치를 해 넣는 것이 그 해 겨우살이 준비의 시작과 끝이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엔 특히나 먹을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고 보통 2-3대가 모여 살던 대가족 살이었으니 김장 100포기, 200포기는 결코 많은 양도 아니었다. 배추를 씻고 소금에 절이고 새빨간 고춧가루와 갓과 무채, 생굴과 새우젓을 넣고 버무리면 새빨간 김칫속이 완성된다.

오늘은 앞집, 내일은 뒷집, 품앗이 온 이웃 아주머니들이 어느새 삼삼오오 둘러앉아 배추에 속을 넣는다. 따뜻한 주방이 아닌 마당인지라 추위에 손이 얼고 입에선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왔지만 누가 뭐래도 김장은 집안의 주요 행사, 떠들썩한 잔칫날이다. 평소엔 부엌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던 집안의 남자들도 이 날 만큼은 두 팔 걷어 올리고 일을 돕는다.

장독을 묻을 뒷마당을 손보고 무거운 장독을 씻고 배추도 옮긴다.
잔심부름을 하며 일을 돕던 아이들이 엄마 곁에 와 제비처럼 입을 벌리면 김칫속을 넣어 돌돌 만 겉절이를 넣어 주셨다. 속이 아릴만큼 매웠지만 자꾸 먹게 되던 중독성 깊은 겉절이의 맛! 그러나 김장날의 메인 별미는 두툼하게 썰어낸 돼지 수육, 배춧잎을 넣고 끓인 심심한 된장국이 아닐까. 어느 집이나 비슷비슷한 그날의 풍경이다. 다들 담그는 김장이지만 맛이나 보라며 이웃에서 건너오던 후한 김치 인심도 생각하면 정겹다.

비슷한 재료, 비슷한 레시피 같은데도 이상하게 우리집 김치가 제일 맛있는 건 왜였을까. 소위 ‘손맛’ 이라는 건 어쩌면 ‘익숙한 맛’ 일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만큼 떠들썩하진 않아도 요즘도 김장을 한다. 그래서 김장철은 명절과 함께 재래시장의 큰 대목 중 하나. 김장 대목을 준비하는 도마시장 또한 분주함이 넘친다.  배추 파는 아저씨가 반으로 쩍 가른 배추를 들고 배추 고르는 법을 열강 중이다.

“이렇게 속이 꽉 차고 노란 걸 골라야 해. 겉이파리가 지멋대로 펄럭이는 건 못   써. 이것 봐. 치마폭처럼 얌전하게 모아지는 게 좋은 거야. 몇 포기 담근다고 했지?
열 포기면 갓은 이 정도면 될 것이고 무는 이 봉지로 하나 담으면 딱 맞어. 아이고, 못하긴 뭘 못해. 다 할 수 있어.“

김장이 처음이라며 망설이는 초보 주부를 독려하며 배추와 무, 파, 마늘 등을 척척 커다란 파란 비닐에 담는 배추 아저씨의 손길이 분주하다. 손수 햇빛에 정성껏 말린 듯한 빨간 고추를 장보기용 수레에 가득 싣고 가는 할머니를 따라가 보니 방앗간 앞. 덜덜거리는 기계에서 곱게 갈린 고춧가루가 쏟아지고 있다.

고춧가루를 빻으러 온 사람, 사러 온 사람들로 방앗간도 대목을 맞은 듯 했다. 요즘은 장 본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시장이 많다더니 도마시장 곳곳에도 배달 서비스를 해 준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노약자나 임산부, 장애인 등의 고객이 요청할 때 운반을 도와주는 ‘장보기 도우미’ 서비스도 있단다. 무겁게 배추 들고 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또 시장 곳곳에 넓은 주차장이 네 군데나 된다니 ‘싸고 싱싱한 건 알겠지만 불편해서...’ 라는 건 그저 고정관념일지 모른다.

도마시장의 정식 명칭은 ‘도마큰시장’
시장의 끝에서 끝까지 돌아다녀보니 다리가 아플 지경, 이름처럼 정말 크다. 유등교에서 도마 네거리에 걸쳐 ㅁ자형으로 형성된 시장은 그 면적이 무려 약 2만여 제곱미터, 6천평이나 되는 규모다. 대전에서는 중앙시장 다음으로 크다.

그래서 도마동 뿐만 아니라 인근에 서구 주민들, 논산, 금산에서도 많이들 찾아온다. 패션거리, 시골 아줌마 장터 거리, 먹자 거리, 전통시장 거리 등 없는 게 없다. 다른 재래시장과의 차이점이라면 대일의류상가를 비롯한 의류 판매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과거 한때는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에 버금가는 규모로 의류 상인들의 자부심도 컸단다.

도마시장이 생긴 지도 이제 40년이 훌쩍 넘어간다. 시장이 들어선 건 1970년대 시장 주변으로 피혁공장, 직물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공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들과 거기에 속한 가내수공업자들이 도마동, 유천동 근처에서 자취, 하숙을 하기 시작했는데 직공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된 것. 계백로가 생기기 전, 논산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했던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으로 상점과 노점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그것이 모여 지금의 시장이 되었다.

대전피혁, 경남방직, 원미섬유 등 공장 월급날엔 생필품을 사고 월급날 기분을 내러 나온 이들로 시장도 덩달아 시끌벅적, 활기에 넘쳤단다.   

대형 마트와의 경쟁으로 점점 쇠락해가는 재래시장을 살리자는 분위기는 이미 특별할 것 없는 얘기다. 도마 시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천정은 아케이드로 되어 있고 가게와 간판들도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다. 현대화 작업을 하면서 도마시장에서 도마큰시장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그래도 시장을 시장답게 하는 것, 시장의 매력은 왠지 남아있는 옛것에서 찾아진다. 시장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울 눈금이 0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다’ 고 항의하는 손님과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는 주인장의 실랑이! 잠시 후, 제2의 손님이 나타나 ‘돌아간 게 맞는 것 같다’ 고 하자 노안 때문에 ‘잘 안 보였다’ 는 주인장의 대답으로 실랑이가 마무리 되었다. 그러고 보니 디지털 저울이 아닌 바늘 저울이 꽤 오랜만이다.

어디선가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한 평이 안 되는 구석에 간이 천막을 치고 할머니가 빈대떡을 부친다. 집에서 커다란 들통에 반죽을 해갖고 나온다는 할머니는 시간에 관계없이 그 들통 하나를 비우고 나면 털고 일어나 집으로 가신단다. 가격은 한 장에 천원. 참 착한 가격이다. 아주머니, 할머니 서너 분이 방금 막 부쳐낸 따끈한 전을 들고 계신다. 특별한 별미도 아니고 부침개 정도야 눈감고도 뚝딱 만들 이력의 어머니들이 돈을 주고 사 드시는 게 좀 의외라고 넌지시 물었다.

“아구, 나이 먹어봐. 밥 해먹기도 구찮어. 지겹고. 남이 해주는 게 좋지. 천원이니    께. 싸잖혀.” 
그렇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것, 생선 대가리가 더 맛나다고 한 것,
그리고 음식 하는 일이 쉬울 거라는 것, 그건 뭘 모르는 소리인 것이다.
“한 장 해 줘? 먹어 볼텨?"

주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손님도 아닌 (간혹 노점엔 이런 분이 꼭 계시다. 예능 프로의 고정 게스트쯤 되는 듯한) 아주머니가 빈대떡을 권하신다. 다짜고짜 여쭤보는 물음에 친절히 답해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빈대떡까지 얻어 먹는 건 염치가 아니다. 아니라고, 괜찮다며 뒤돌아 나오는데 “한 장 줘?” 소리가 또 들린다. 돌아보니 손님 두어명이 천막 아래 자리를 잡고 앉는다. 한 장 해준다는, 먹어 보겠냐는 그 말씀은,  그렇다면, 사서 먹겠냐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제야 몇 장 사드리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냥 주시려 했든, 사먹으라 소리든 상관없이, 그야말로 인터뷰와 사진까지 허락해 주신 감사의 표시로 말이다. 그저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고 다른 볼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내 입장만이 머리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나 여유 없고 각박한 머릿속이라니… 여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좀 더 자주 시장에 와봐야겠다. 그땐 저 빈대떡을 배부르게 사 먹고 할머니께도 사드리리라. 그분들 말씀처럼 천원이니께. 싸잖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