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셰르파, 전일정 선생님께
인생의 셰르파, 전일정 선생님께
[사제편지] 대전 삼천중학교 윤주성 군이 전일정 선생님께 ①
  • 윤주성 군
  • 승인 2015.01.02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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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정 선생님(맨 왼쪽)과 윤주성 학생(왼쪽 두 번째)
[굿모닝충청 윤주성 대전 삼천중] 스승의 날에 쓴 짤막한 편지 한 장 말고는, 글로 선생님께 제 마음을 전달하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매일 뵙는데다가 쑥스럽게 편지가 웬 말이냐 싶어, 가끔 보내는 문자메시지 몇 통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내치시는 법 없이 흔쾌히 답장해주셔서 항상 기뻤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기대하기엔 욕심이 너무 과한 것 같아서, 기회가 될 때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고 싶어 연필을 잡습니다.

물론 저의 담임선생님은 아니셨습니다. 정년퇴임하신 선생님을 대신해서 온, 그저 그런 선생님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으로부터,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배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지냈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 틈이 날 때마다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됩니다.

권위! 권위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이라고 합니다. 요즘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옵니다. 아니, 교실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선생님의 지도가 귀찮고 짜증난다는 이유로 욕설을 하며 폭행을 저지르는 제자들 앞에서 선생님의 권위가 사라진 것 같아 늘 마음이 아픕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선생님이 서 계시는데도 장난을 치고 욕설을 내뱉는 제자들 앞에서 선생님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잔소리 하는 귀찮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다 복도에서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는데도 인사 없이 휑하니 지나가버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선생님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건, 선생님께서 이토록 스스로 몸을 낮추실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선생님은 권위와는 거리가 먼 분이셨습니다. 저희를 지도하고 다스리는 게 아니라, 함께 길을 가는 동반자라고나 할까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가 아닌, 이거 해볼래? 저건 어때? 라고 조심스럽게 권하시는 친구 같은 선생님. 그러고 보니 1학년 때 국어시간이 기다려지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친구 같은 선생님. 이 말은 딱 선생님을 위한 수식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교단에 서시면서 가졌던 목표는 친근한 선생님이 아니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권위 있는 선생님이 되려고 하셨는지요? 그렇다면 전 그 목표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제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선생님은, 언제나 친근하고 거리감 없는 친구 같은 분이십니다. 누군가 존경하는 선생님을 꼽으라고 한다면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말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선생님을 떠올리면 마치 연관검색어처럼, 메시지로 해주셨던 상담이 생각납니다. 교사는 그 무엇이든 편파적인 관점으로 가르칠 수 없는 입장이기에 더욱 있는 그대로 알려주셨던 시사문제, 어떤 사건에 대한 토론, 없던 꿈도 생기게 해 주신 조언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스스로 얻은 교훈⋯. 선생님께 배운 게 너무 많아서 그 내용들을 모두 옮겨 적으려면 이 종이를 전부 채워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다만 공통된 주제는 긍정적인 일로 위장된 부정적인 일들을 꼬집는 것이었으며, 얻은 교훈은 모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가르침을 주는 건 둘째 치더라도 귀찮은 내색하나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실 수 있는지요? 시도 때도, 밑도 끝도 없이 보내는 제자들의 문자에 일일이 답장하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텐데, 새삼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산생님의 정성 덕분에, 뉴스도 안 보고 신문도 읽지 않던 제가 사회적인 일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깊게 생각할 줄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선생님이 단순한 국어 교과 선생님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보다는 부모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언을 아끼지 않고,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도우려 하는 그런 사람⋯. 산악인들에게 히말라야 등정을 돕는 셰르파가 있다면, 제겐 인생의 셰르파인 전일정 선생님이 계시다고 할까요. 단순히 학업에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나아가 저의 인생에 관해서도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그리며 늘 초조해하던 시기에 선생님을 만난 저야말로 행운아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평소 꿈이 없다고 얘기하던 저에게도 큰 꿈이 생겼다고, 바로 중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라고요. 쑥스러워서 여기까진 얘기하지 않았지만, 꿈을 갖게 된 계기도 선생님을 만나서였습니다. 선생님의 행동 하나 하나가 즐거워 보이고, 행복해 보였거든요.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는 게 제 꿈입니다. 단순히 공부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저같이 방황하던 아이를 인도해 줄줄도 알고 제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 선생님을 만난 후, 큰 꿈이 생겼고, 목표가 생겼습니다. 꿈, 그러니까 저의 장래희망은, 진짜 아이들이 바라는 선생님다운 선생님이 되는 겁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오는 키팅 선생님처럼 제자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어 이 사회를 떠받칠 재목들을 길러내고 싶습니다. 

선생님, 현재 저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는 거고요. 인생의 목표는 지금껏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가르침들을 제자들에게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먼 훗날에도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겠습니다. 제가 목표를 이루었을 때도 지금처럼 변함없는 모습으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다음주엔 전일정 선생님이 윤주성 군에게 쓴 편지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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