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21세기를 살아갈 우리의 '정신승리법'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21세기를 살아갈 우리의 '정신승리법'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0.06.09 14: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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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굿모닝충청=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루쉰 (굿모닝충청=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 혁명가 마오쩌둥(1893~1976)은 본명이 저우수런(周樹人), 필명이 루쉰(魯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위대한 사상가요, 혁명가요, 중국 문학의 아버지이다." 

젊은 루쉰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도중 일본인에게 처형당하는 중국인의 영상을 우연히 본다. 그런데 다른 중국인들은 처형 장면을 단지 구경거리로 바라보는 데 큰 충격을 받는다. 

루쉰은 자국민이 필요한 것은 몸의 질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병든 정신을 고치는 것이라고 보고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문학의 길에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아큐정전(阿Q正傳)은 1921년에 루쉰이 발표한 유일한 중편 소설로 작가 대화 중심의 1인체 소설이다. 《아Q정전》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아Q에게 정전을 써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한두해 일이 아니다. 내가 무슨 후세에 남길 말을 할 만한 위인이 못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마침내 아Q를 전하여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걸 보면 내가 귀신에 홀린 듯한 느낌 마져든다.”

 

아Q정전 (굿모닝충청=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아Q정전 (굿모닝충청=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아Q의 정체성

아Q에 대해서는 이름과 출신지, 그리고 행적에 관해서도 정확하지 않다. 그는 자오씨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떠돌이 패의 한 사람으로 전형적 노예근성을 지닌 무지몽매한 쿨리(중국 하층민, coolie)의 상징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동물과 비슷하다. 환경에 잘 적응하고, 조건반사 능력이 뛰어나기는 하다. 문제는 주체성을 가지고 스스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자오 나리의 아들이 수재에 급제 했을 때 자신이 자오 나리와 한 집안으로 그 아들보다 세 항렬이 높다고 떠들어 대자 주위 사람들의 보는 눈이 달랐다. 자오 나리는 “네놈이 나와 한 집안이라고 말했다고?” 그를 혼냈고 그는 지역치안에게 사죄조로 술값 200문을 바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그를 아Quei라고 불러서 이를 줄여 아Q라 부른다. Q는 청나라의 상징인 변발 모양이다. 그는 집도 없이 웨이장에 있는 동구 밖 사당에서 기거하고 있다. 그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에게 날품을 팔았다. 

 

아Q의 정신승리법 (굿모닝충청=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아Q의 정신승리법 (굿모닝충청=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아Q의 자존심과 정신승리법

그는 하는 일과는 달리 매우 자존심이 아주 강했다. 그의 신체적인 결함은 머리에 부스럼 자국이 몇 군데 있는데 그는 ‘부스럼’ 뿐 아니라 ‘부스’ 비슷한 발음도 입에 올리는 것을 꺼려 했다. 더 나아가 ‘빛나다’나 ‘환하다’와 같은 글자도 꺼려 하고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 ‘등불’이나 ‘촛불’같은 말도 피했다. 

아Q는 건달에게 당해도 마음속으로 자신을 합리화했다. 모욕을 이겨내는 아Q만의 처세법이다. 아Q는 경멸과 비웃음거리의 대상이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따지고 묻고 반성하지 않고 현실적인 대처를 하지 못한다. 아Q에게는 ‘정신승리법’이 있었다. 

동네에서 자오 나리와 쳬나리는 그들의 아들 때문에 존경받는다. 장래에 수재가 될 수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아Q만은 마음속으로 그다지 떠받들고 싶지  

“내 아들이라면 더 잘 나갔을 거야”라고 말한다. 루쉰은 한때 잘 나갔고, 식견도 높았으며, 게다가 일도 잘했던 세상의 중심축인 중화사상에 찌든 자기만족의 국민성을 겨냥한 것이다. 

건달들에게 훔씬 두들겨 맞아도 “내가 자식놈에게 맞은 걸로 치자” “요즘 세상은 정말 꼴같지 않아.” “버러지를 때리는 거야. 나는 버러지야.” 그리고 나면 마음이 흡족하여 주점으로 들어가 술을 몇 잔 들이켰다. 

노름판에서 노름꾼들이 자기가 딴 돈을 자기를 때려서 가져갈 때 조금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즉시 자기 빰을 두 차례 때렸다. 이를 마치 자기가 남을 때렸다고 느껴서 흡족해했다. 

거의 날마다 동물 본능적으로 살아왔기에 외부의 자극을 받아도 마이동풍격이다. 아Q에게 동물처럼 내면적 자아가 없다. 바로 이것이 신해혁명 직후 민족의 위기 속에서도 낡은 중국인들의 의식이다. 루쉰은 이렇게 해서 어떻게 개혁과 근대화를 할 수 있을까 개탄한다. 대원군 시절의 쇄국정책도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근성

아Q가 명성을 얻은 것은 마을의 세도가 자오씨의 아들에게 따귀를 맞고 난 뒤부터다. 사람들은 그에게 얻어맞았더라도 아큐가 자오 나리와 한 집안사람이라고 말했으니 관계가 어느 정도 진실이라고 생각하여 깍듯하게 대했다.  

공자의 사당에 바친 돼지나 양이 축생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성인이 젓가락질을 한 것이니 선비들도 함부로 못하는 것과 같다. 연줄이 중시된 봉건주의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왕 털보와의 이를 잡는 싸움에서 깨지고, 첸네 영감의 큰 아들에게 혐오하는 말을 하여 크게 낭패를 본 아Q는 지나가던 여승을 희롱했다.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분풀이 하는 것이다. 원래 그의 남녀관계는 엄격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Q가 여자를 안 것이다. 

결국 이러한 아Q의 변화는 자오씨의 집에 쌀을 찧어 갔을 때 일어나고 말았다. 그는 자오씨의 집에서 일하는 젊은 과부 우마에게 수작을 걸었고, 우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자오씨는 아Q를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베이징 의정서 (굿모닝충청=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베이징 의정서 (굿모닝충청=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결국 아큐는 그 죗값으로 4백 문을 지불해야 했으나 현금이 없었으므로 털 모자를 저당 잡히고 게다가 여섯 가지 조항의 억지에 가까운 일방적인 서약까지 했다. 이는 배외적 농민 투쟁인 의화단 운동을 8개국 열강 연합군이 진압한 후, 청나라 정부를 압박하여 체결한 불평등 조약인 베이징 의정서를 비유한 것 같다.

그런 우마와의 사건이 있은 후부터 아Q 주위의 눈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을 여자들은 아큐만 보아도 도망갔고, 남자들은 아Q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외상술도 주지 않았다.  

더구나 그를 고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문제는 생계다. 그는 돈이 떨어지고 허기져서 동네 채마 밭에 들어가 무를 훔쳐 달아났고, 여기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무 세 개를 다 먹고 난 후 고향 동네를 떠나 성안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가 다시 웨이장으로 돌아온 것은 중추절 직후였는데, 그는 사람이 달라 보였다. 새로 산 값비싼 옷에다가 모든 거래를 현찰로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신기하고 새로운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자들은 아Q가 가지고 온 값나가는 질좋은 물건들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은근히 만나고 싶어 하기까지 했다. 이때 웨이장 사람 눈에는 아Q가 자오 나리의 지위에 버금간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은 그 물건들은 아Q의 것이 아니었고, 도둑질로 훔친 것이었다. 진짜 그는 성 안으로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그저 성 안의 도둑들이 훔친 물건들을 성 밖으로 던지면 성벽 앞에 서서 물건을 받아주는 역할을 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성벽 앞에서 물건을 받던 중 도둑질이 발각되었고, 아Q는 도둑들에게 받은 물건들을 들고 냅다 웨이장으로 왔다.  

아Q가 도둑의 졸개였다는 소문이 나돌자 아Q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시들해지고 말았다. 명성은 자신이 노력으로 쌓아올리는 땀의 산물이다.

 

신해혁명 (굿모닝충청=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신해혁명 (굿모닝충청=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아Q식 혁명의 허구성

신해혁명(辛亥革命)은 중국이 만주족(滿洲族)정권인 청조(淸朝)를 타도하고 한족(漢族)의 공화정을 수립하자는 혁명운동이다. 동아시아 최초로 공화국인 중화민국을 건립한 1911년 9월 14일에 갑판을 위장한 거인 나리의 배가 자오씨의 선착장에 닿았다. 소문은 혁명당을 피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라 했다. 

아Q는 혁명당을 알고 있었다. 혁명당이 반란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멀리 했으나 마을 사람들이나 유력자들이 벌벌 떨고 허둥되는 것을 보고 ‘운명을 깨자’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신해혁명에 관한 희망과 혁명의 기회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기싫은 사람과 자기를 업신여긴 사람들을 손보고, 갖고 싶은 물건도 강탈하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도 마음대로 고르는 상상의 날개를 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쑨원이 이끄는 혁명 당원이라는 거짓말을 했다. 자오 나리도 아Q를 Q 선생이라고 부를 정도다. 이미 혁명은 하루 사이에 발 빠른 자오 수재와 가짜 양놈이 변신하여 변발 형태를 없애고, 혁명 배지를 달고, 각종 구호를 내걸면서 선수를 쳐나가고, 아Q에게는 혁명 가입을 불허했다. “모르고 있었어? 그 사람들이 벌써 혁명을 해버렸다고!”

아Q가 혁명당에 가입하기 위해 첸가의 아들을 찾아간 날 밤, 자오씨의 집이 습격을 당했다. 아Q는 자신을 내쫓은 자오씨에 대해서 감정이 있었고, 마을사람들도 자오씨의 집이 습격당한 것을 은근히 속으로는 기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두려움도 느꼈다.

자오씨 댁이 털린 나흘 뒤, 아Q를 혁명 당원으로 오인하여 체포하였고, 누가 누명을 씌웠는지 몰라도 일벌백계를 하여 본 때를 보여 줘야겠다는 혁명세력들은 아Q가 자오씨를 습격한 장본인으로 몰아갔다. 아Q는 생전 자기 이름자도 못쓰는지라 서명하는 대신에 네 멋대로 동그라미를 그리라고 했으나 떨려서 제대로 그리지 도 못했다. 

형장으로 가기 전에 거리를 돌아다니며 조리돌림을 당하는 아큐는 군중 속에 서 있는 우마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아큐에게는 관심이 없고 병사들이 메고 있는 총에 정신을 팔렸다. 아Q를 본보기로 삼고자 했던 군부는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총살했다. 여론은 그가 나쁘다고 말했다. 단순 구도로 총살 당했으니 나쁘다는 의미이다. 

이유가 무엇이고 잘못이 어떻고 이런 것은 없었다. 있다면 총살은 목을 자르는 것 만큼 좋지 않았다. 본인이외의 사람들은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다.

근대라는 전환기에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아Q가 기존의 가치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혁명이라는 상황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루쉰은 혁명대중을 억압하는 지배계급에 대항하기 보다는 대중끼리 서로 이전투구하는 속물근성을 조롱한다. 혁명에 참가하는 자는 더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하여 싸우고, 나머지 국민 모두는 구경꾼이고 방관자일 뿐이다. 

혁명의 목표도 방법도 모르고, 그러한 지식을 얻으려 노력 조차도 안하고, 오로지 자기에게 이익이 되냐 아니냐로 혁명을 평가한다. 자존심 강하고 정신승리로 정당화하는 자가 치열한 문제의식없이 혁명에 참가하는 모습이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아Q정전은 루쉰의 구국혼이 가장 깊이 농축된 작품이다. 어리석고 불쌍한 아Q를 통해 근대화 과정에 소용돌이치는 중국 민중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아Q정전은 당시 수많은 중국인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루쉰의 친구들 중에서도 “왜, 내 애기를 썼는냐”며 항의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은 20세기 중국의 이야기는 21세기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세상물정 모르면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에서 사정없이 당한다. 방관자가 아닌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고민하여야 한다.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에서 인간을 말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위한 이기적인 전략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대결에서 서서히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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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2020-06-09 19:52:33
정말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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