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75] 생명줄을 놓지 않고 살아 남은 태안 목애당 느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75] 생명줄을 놓지 않고 살아 남은 태안 목애당 느티나무
    • 장찬우 기자
    • 승인 2020.06.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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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장찬우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충남 태안군 태안읍사무소 옆에 있는 목애당(牧愛堂)

    충남유형문화재 138호다.

    조선시대때 지어진것으로 1894년 동학농민운동때 소실된후 1904년 남은 목재와 태안 소근진성의 목재를 사용해 신축됐다.

    목애당앞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수령300년 이상된 느티나무가 있다.

    높이 15m, 둘레 4.1m인 느티나무는 1982년 11월 보호수 359호로 지정됐다.

    안쪽으로 기울 듯 서 있는 느티나무 뒤로 솟을대문 형태의 아문(衙門)이 있는데, 어칸 위에는 근민당(近民堂)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아마도 백성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살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바라볼 때 왼쪽으로 세칸의 고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두칸의 고방이 있다.

    제법 담장이 높아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데, 읍사무소 안쪽으로 들어가면 협문이 있어 안을 관람할 수 있다.

    여지도에는 태안 객사내 동헌, 서헌, 청방, 중대청 등 여러 건물들이 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앞 경이정과 목애당, 아문만 남아있다.

    많았던 관아 건물들이 사라지게 된 건 동학운동 때인 1894년 경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목애당도 불타버렸는데, 이후 1901년 안흥진성(安馫鎭城) 안에 남아있던 건물부재와 소근진성(所斤鎭城)의 부재를 모아 중건했다.

    이후 1914년 일제 강점기 시절에 태안군이 폐쇄되면서 서산에 속한 태안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97년 전면 해체헤 복원했다.

    목애당이라는 이름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뜻을 담았는데, 조선 때 태안현 동헌의 관아 건물로 수령이 행정업무나 재판 등 공무를 볼 때 사용하던 곳이다.

    광무8년인 1904년에 오병선 군수가 서문을 썼다고 한다.

    목애당은 잘 다듬은 커다란 장대석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면 여섯 칸, 측면 세 칸의 팔각지붕 건물을 올렸다.

    오랫동안 태안군청의 민원실로 사용되다가 뒤편에 새로 건물을 지었고 내부를 다시 보수해 지금에 이른다.

    목애당의 구성은 오른쪽 두세 번째 칸은 정청이고 좌우로 온돌방이 있는데, 측면으로는 커다란 굴뚝이 자리해 있다.

    이중 오른쪽은 사분합문으로 여름철에는 접에 올려 개방할 수 있도록 했다.

    비교적 넒은 정원이 있는데, 산책길을 걷다 보면 담장 사이로 역대 관리들의 선정비를 볼 수 있다.

    옛것은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이지 않다.

    300년 넘게 자리를 지키며 온갖 흥망성쇠를 지켜 본 느티나무 역시 그렇다.

    그나마 유일하게 생명줄을 놓지 않고 버텨낸 건 느티나무가 밖에 없는 셈이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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