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사 바로알기] 중수(重修)를 마친 동춘고택
[대전역사 바로알기] 중수(重修)를 마친 동춘고택
김정곤의 대전역사 바로알기
  • 김정곤
  • 승인 2015.01.07 16: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굿모닝충청 김정곤 전통예절 및 향토사학연구가]  동춘고택(시 유형문화재 3호)이 5개월여의 공사를 마치고 지난 12월 16일 준공검사를 마쳤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0월 하순 대들보에서 217자에 달하는 긴 묵서(墨書)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이 상량문은 대들보 중간에 장방형 홈을 파고 넣어둔 것이었다.

대들보에 목수 ‘김쌀복ʼ 눈길
대들보에는 “乙未八月初九日酉時立柱上樑癸坐丁向偏首本縣居林千福·朴南柱·裵福元·朴源福·金米乙福”이라 썼는데, 목수 ‘김쌀복(金米乙福)’이라는 이름이 눈길을 끈다. 우리는 대체로 고유명사에 국자(國字;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한자)가 쓰이는데, 필자도 처음 보는 글자였다. 상량문의 을미년은 1835년으로 동춘선생의 8대손 송석로(21世/1789~1840)가 이때 옮겨지은 건물이 현재의 동춘고택이다.

동춘당(보물 제209호)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송준길과 그 가족이 기거했던 사랑채나 안채에 대한 것은 그렇지 못하다. 고작 알려진 것이 “조선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1606~1672)선생이 거처하던 고택이 동춘당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一’자형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가 전체적으로 벌어진 ‘ㅁ’자형을 이루면서 배치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별묘와 가묘가 남향하여 배치되어 있다.”는 정도이다.

은진 송 씨가 회덕에 세거하게 된 것은 시조(송대원)의 증손인 송명의(4世)가 회덕현 은골(현, 동구 마산동)에 은거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송명의는 1362년(공민왕 11)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경상도안렴사를 거쳐 사헌부집단이었으나, 고려의 국운이 기우는 것을 보고 처가가 있는 회덕으로 낙향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시기는 전하지 않는다.

송명의의 외아들 송극기(5世/연대미상)가 요절하자, 며느리 고흥 류 씨가 네 살 난 송유(6世/1389~1446)를 업고 개성에서 시댁(은골)으로 온 해가 1392년이니, 입향시기는 그 이전이 될 것이다. 그 후 송유가 배달촌(현, 대덕구 중리동)에 원일당과 쌍청당을 짓고 이사를 한 해가 1432(세종 14)년이다. 이 집이 은진 송 씨의 종가로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마을이름도 송촌(宋村)이 되었다.

쌍청당 송유의 손자 요년(8世; 1429~1499)이 별사를 지어 둘째아들 여즙(9世/연대미상)에게 살림을 내주었다. 여즙의 아들 세영(10世/1491~1532)이 서울 집은 큰아들 응상에게 주고, 자신의 집은 둘째 응서(11세/1530~1608)에게 주었는데, 송응서가 송준길의 조부이다. 처음 지어진 소위 ‘동춘고택’은 8세 요년이 지어서, 9세 여즙에게 주고, 10세 세영이 살다가, 11세 응서에게 주면서 송이창(12世) · 송준길(13世) 등으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렀다.

송여즙의 형 여림은 1461(세조 7)년에 태어났다. 동생 여즙이 혼인하면서 살림을 났으니 고택이 지어진 시기는 대략 1480년 전후가 될 것이다. 100여 년이 지나 임진·정유 양란에 고택이 모두 소실되자, 송이창이 1598년 타다 남은 연목들을 거두어 다시 지었다. 이후로도 새로 짓거나 개보수를 거듭하였을 것이나 전하는 기록이 현재로선 없다. 

530년 풍상 견뎌온 역사 오롯이

다만 동춘당 해체 시 발견된 기록과 혹시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1649년 송준길의 일기와 연보에 의하면 청좌공(부친 송이창)의 옛집이 오래되어 무너지므로 옛터에 다시 지었다.(淸坐公舊居歲久頹圮至是改構于舊基稍北)”는 기록이 있다. 증손자 송요경(16世/1668~1748)이 1716년 옮겨지은 것을, 다시 8대손 송석로(21世/1789~1840)가 1835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한 사실은 이번 중수과정에서 새로 밝혀진 귀중한 자료이다.

상량문(意譯)에 “송촌 쌍청당은 목사공(송요년)선조의 옛집이다. 별사를 지어서 둘째아들 선무랑(송여즙)선조에게 주었다. 승사랑(송세영)선조에 이르러 서울 집은 큰아들(송응상)에게 전해주고, 시골 별사는 둘째아들(송응서)에게 주었다.

6세에 이르러 종고조(송요경)께서 약간 동쪽으로 옮겨지은 것을, 지금 을미(1835)년에 다시 옛터로 옮기었다. 옛적에 동춘당과 옛 대문을 본떠서 정했다고 했는데, 집을 철거하니 병신(1716)년에 상량을 하고 자좌경오로 위치를 정했다고 하였다. 목수이름을 상고하매 옛 방위와 같지 않아서 징험해보니 좌향이 옛것을 따랐음을 알았다. 터를 닦자 마루 앞과 굴뚝이 있던 자리에 그을음이 완연하여 대체로 옛터를 잃지 않았으니 상량문이 미덥다. 종자(宗子) 석로가 역사를 감독하였다. 동춘 선생 7대손 문희는 삼가 쓴다.” 이것이 오늘 530여 년 풍상을 견뎌온 동춘고택의 역사이다.

[懷德宋村雙淸堂 卽我牧使先祖舊第 而又置別舍於玆分與次子宣務郞先祖 至承仕郞先祖以京第傳長男 分鄕舍于次子林川先朝 六世至從高祖同敦寧公 移建稍東丑坐 今乙未八月九日酉時復移於舊基 而向背實用 舊聞又倣同春堂 及古大門而定矣 撤舊舍樑上書丙申七月七日子時立柱寅時上樑子坐庚午分金 木手姓名數十字考之 舊舍子午不合驗諸古基 坐向正符乃知古樑之仍舊也 開基拓土廳事前 及室西有竈突古跡石煤宛然 盖不失舊址而得樑書益信矣爲宗子錫老董是役因記事實焉 同春宋先生 七代孫 郡守文熙謹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