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76] 은행나무 아래서 나라에 큰 일꾼되자 결의...태안향교 은행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76] 은행나무 아래서 나라에 큰 일꾼되자 결의...태안향교 은행나무
  • 장찬우 기자
  • 승인 2020.07.08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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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장찬우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향교는 지방에 있는 교육기관이다.

향(鄕)은 중국 주나라의 지방행정구역의 명칭이고 교(校)는 학교를 의미하는 말로 지방의 학교, 향교라고 했다.

고려 인종 5년인 1127년 때 처음으로 향교를 설치, 운영했고 조선시대에 서울에는 성균관을 두고 지방에는 향교를 설립하면서 전국적으로 퍼지게 됐다.

태안향교는 조선 태종 7년인 1407년에 지금의 샘골 지역인 사양동에 초가로 세우고 덕산에서 생원 최상운을 학사로 초빙해 향내 훈도를 맡게 했다.

그러나 호랑이의 침범이 잦아 태안읍 동문리 지금의 태안중고등학교 터로 이전했다.

화재로 인해 다시 숙종 46년 1720년에 지금의 터로 이전했다는 기록이 태안향교지에 남아있다.

여러 번의 보수와 중수로 현재 모습이 유지되고 있고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홍전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성전에는 39위 선성현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그 중 한국인은 18위이고 중국인이 21위이다.

1975년 2월 5일 문화재 자료 198호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 12월23일 문화재 기념물 139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건물은 성균관으로부터 전국 각 향교 각 서원에 이르기까지 오륜삼강을 상징해 5칸 3칸식으로 건축되었고 그 안의 가장 윗자리에 대성전이 정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성전에서는 5월 11일 공자기일에, 9월 28일 공자 탄신일에 맞추어 두 번 제를 올린다.

앞마당에는 조선시대 유생들이 과거에 급제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 정원수로 심었다는 내력이 전해지는 약 250여년 된 은행나무 세 그루가 있다.

명륜당은 옛날 학생들의 교육장소로 지금의 학교 교실과 같으며 두꺼운 마루바닥으로 되어있어 중앙 3칸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양쪽 1칸씩에는 온돌방을 들였다.

명륜당 뒤편 오른쪽에는 동재, 서쪽에는 서재가 있어 유생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오늘날의 기숙사와 같다.

외삼문은 명륜당으로 들어서는 삼문으로 솟을대문이다.

외삼문 앞쪽에 있는 홍살문 또는 홍전문은 충신,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여 임금 이 그 집이나 마을 앞, 능, 원, 묘, 궁전, 관아 등에 세우도록 한 붉은 문이다.

홍전문 앞에 있는 하마비는 누구든지 말을 타고 그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돌에 새겨 세운 비석이다.

조선왕조시대에 궁가, 종묘, 문묘, 성현의 탄생지나 능원 앞에 세워 지나가는 사람이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도록 한 것이다.

예로부터 신라의 화랑도, 고구려의 태학, 고려 광종 때 과거제 실시 등 교육은 나라의 백년대계였다.

고려 성종 때 최고의 교육기관 국자감이 설립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서당, 향교, 사부학당, 성균관 등에서 어려서부터 체계있는 교육으로 인재를 길러내고 등용했다.

조선시대 교육은 보통 7~8세부터 15~16세에 서당에서 천자문, 소학, 명심보감을 훈장에게 배웠다.

이어 오늘날의 중등교육과 같은 지방의 향교와 한양에 있는 사부학당에 진학하여 과거시험과 지금의 대학과 같은 성균관에 진학할 수 있도록 공부를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양반들이었고 일반 평민들은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보통 공부방법은 암송과 토론, 기록이었다.

곧잘 노래를 부르듯 리듬을 넣어 천자문을 외우거나 옛 성인들의 말을 암송하여 뜻풀이를 하곤 했다.

학자마다 공부방법도 다양했다.

다산 정약용은 뜻을 헤아리며 끝까지 파고들어 정리하는 공부법을 가졌다.

‘책만 보는 바보’라 일컫는 조선시대 유명한 시인 김득신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책을 읽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 율곡이이는 눈으로만 책을 보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읽어 그 지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늘 생각하면서 독서를 했다.

태안향교는 대성전에서 공자의 제만 드려오다가 향교의 역할을 부활하자는 뜻을 모아 해마다 충효교실, 논어, 맹자, 서예교실 등 옛 교육을 되살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먼 옛날 대성전 뜰을 거닐고 동재와 서재에서 들고 났을 태안의 유생들을 떠올린다.

벗과 함께 우정을 다짐하며 은행나무 아래서 과거에 급제해 부모님과 스승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나라에 큰 일꾼이 되기를 두손 모아 빌었던 유생들의 마음을 가슴에 읽어본다.

물오른 가지끝에 까치소리 맑게 울려퍼지니 지나가던 바람한줄기가 반가이 화답한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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