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0.07.1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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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의 수상록
몽테뉴의 수상록

수상록(隨想錄)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그때 그때의 생각이나 느낌을 적은 것이라고 나온다. 몽테뉴(1533~1592)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문학가이자 사상가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1580년에서 1588년까지 3권으로 출간되여 총 1300여 쪽 가까운 방대한 분량으로 37살에 법관에서 은퇴한 후 4층 짜리 좁은 방에서 고독한 은거 생활을 하면서 약 20년간 집필했다. 

《수상록》으로 번역했지만 원제목은 시도(試圖)라는 뜻의 엣세(essai)이다. 다만 단순히 현재의 에세이라고 보기보다는 역사,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내용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있다.

몽테뉴
몽테뉴

몽테뉴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수상록》에서 신중심인 성서를 인용하지 안 했다고 해서 후에 바티칸 금서목록에 올랐다. 그는 다른 사람이나 세상이 아닌 ‘자신을 잘 이해하는 것’이 곧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요, 세상을 이해하는 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자신이 사색하고 고뇌한 결과물로 땅을 밟고 사는 인간 중심의 내용이다.

이 책의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쓴 것으로 글의 시작을 ‘나는’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직접 관련되어 있으나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은 주제들, 그렇지만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신있고 담담하게 서술한다. 
몽테뉴는 스스로 명성을 얻고자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을 읽으면 우리 살고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 죽음과 삶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겁먹지 않는다. 인간이 제아무리 신중을 기한다 해도 그들을 위협하는 위험에 충분히 대비할 수는 없다. 이집트인들은 연회와 같은 큰 잔치에 망자의 마른 해골(骸骨)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곤 했다.

매일이 그대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라. 모든 곳에서 죽음을 기꺼이 기다린다. 태어난 첫날부터 그대는 삶을 사는 동시에 죽음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신을 신고 채비해야 한다. 

히파니스강에는 단 하루를 사는 작은 벌레가 있다고 한다. 아침 8시에 죽으면 요절한 것이고 저녁 5시에 죽으면 장수한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처럼 짧은 생애를 놓고 행복과 불행을 따진다면 우리 중에 비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삶에 전념하라. 충분히 살았는지는 실제로 몇 해를 살았는가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이고 그것은 그대의 의지에 달려있다. 사람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곧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병들어 앓을 때보다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한 결의를 소화하기가 더 힘겹다는 것을 안다. 삶의 매력을 더 이상 누리지도 취하지도 않게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부쩍 줄어든다.

모든 인간은 성장하는 동시에 쇠태한다. 육체가 시들어가면 정신도 어떠한 일에도 일어서지 못하고 함께 시들어 간다. 빨리 늙기보다는 늙어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다. 내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작은 기쁨의 순간까지도 움켜쥔다.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죽음은 한순간이니 따로 죽음에 대비할 필요는 없다.

삶의 끝이자 극단에 죽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앎은 삶을 이해하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젊을 때는 즐거움을 쫓아도 된다고 하지만 노년에 이를 금하는 것은 부당하다. 젊었을 때 나는 생기 발랄한 열정을 신중함 뒤로 감추었으나, 나이가 들어서는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방탕을 즐긴다.

 

| 지금 이 순간이 최고

미래에 대해 근심하는 영혼은 불행하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긴다. 나는 춤을 출 때 춤만 춘다. 잠을 잘 때는 잠만 잔다. 

평소 자신의 일에만 골몰하는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로스가 인간적이고 육체적인 즐거움도 충분히 향유하는 모습을 볼 때 그것이 영혼을 흐트러뜨리는 일이 아니라 반대로 강하게 하는 일이다. 그들은 결단력을 발휘해 지독한 고민거리와 복잡한 생각을 일상의 습관에 굴복시켜기  때문이다.

미련한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고도 기뻐할 줄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절대 자신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는다..

우리의 욕망은 우유부단하고 변덕스럽다. 우리는 아직 본 적이 없거나 감추어진 미지의 것을 더욱 신뢰하고 경외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것도 제대로 차지하거나 즐기지 못한다.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불행의 부재다. 나는 고통의 완전한 부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불행도 한 인간의 요소다. 그러므로 항상 고통을 쫓아내고 쾌락을 좇기만 해서는 안된다.

한 사람은 이름도 빛도 없이 한 사람은 모범적이고 놀라울 만큼 영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전자는 내가 본받을 수 있는 역량과 열망의 수준에 있었지만 후자는 동경만 할 수 있다. 전자는 실천만 한다면 나도 쉬이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중간계층을 좋아하는 것은 내 운명이자 취향이다.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은 쉽고 편안하다. 파리의 최고위 관직보다는 세 번째 정도가 낫다고 생각한다. 이름 모를 부랑자처럼 문지기와 언쟁하는 것이나 경의의 표시로 나에게 인사하는 군중을 헤치고 지나가기는 싫기는 매한가지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운명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하지 못한다. 오직 자의만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다. 부유함과 궁핍함은 개인의 마음에 달려있다. 본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하다. 

젊은이들은 인생을 준비하고 늙은이들은 인생을 만끽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죽는 순간에 대리석을 재단하면서도 무덤에 세울 생각은 않고 집을 건설한다. 나는 최대 1년 이내의 계획만 세우고 언제나 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인생을 남들의 두 배로 즐겼다. 즐거움의 크기는 내가 얼마나 전심전력했는지로 측정할 수 있다. 내 인생이 얼마나 짧은 지를 보는 순간 나는 즐거움에 더 깊이 잠기고 싶다. 인생이 짧을수록 더 깊고 풍성하게 살도록 하여야 한다.

 

| 내가 주인되게 사는 법
 
모든 애정을 내 영혼과 나 자신에게 쏟는다. 다른 이들은 늘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앞으로 가기만 한다. 아무도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스스로를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충실히 누릴 줄 아는 것은 절대적이며 숭고한 일이다. 남아있는 인생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해 산다. 모든 생각과 의도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안위를 지향하게 하자.

나이가 들었을 때는 어떠한 의무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사회에 기여할 것이 없으므로 사회에 벗어날 때가 되었다.

타인과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고 자신에 대한 주도권을 잡아 완벽히 혼자서 마음대로 살도록 하자. 고독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군중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내 안에만 있다고 여기고 친구들이 알고 있는 나의 다른 모습에 대해서는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는 행위의 시금석이 될 내면의 기준으로 세월에 따라 때로는 자신을 칭찬하고 때로는 비난해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 기준으로 나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위하여 나만의 법규와 법원을 두고 그곳에서 나 자진을 제소한다. 

의견을 들을 때는 정중하고 호의적으로 경청하나 나의 견해 외에는 무엇도 신뢰한 적이 없다.

우리 운명에 합당한 즐거움을 취하되 위대한 이의 즐거움을 탐하지  않는다. 이름높은 어떤 사람은 과시하려는 의도 없이 사람들의 이목에서 벗어나서 하는 일들이 훨씬 칭송받을만하다. 
나를 잘 알기에 거짓 찬사를 즐기지 않는다. 모든 일에 명예와 영광을 위한 자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등장한다.

나는 대립할 때 분노가 아니라 나를 깨우치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시대를 막론하고 진실성과 진정성은 어디서나 환영받으며 쉬이 정착한다. 정말 사심 없이 행동하는 사람의 자유로움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이가 적고 오히려 잘 받아들인다. 위선자라는 의혹을 떨칠 수 있었다.

 

| 자신에 대한 극기

나 자신을 늘 경계하고 성찰한다. 플라톤이 구슬치기를 하는 한 소년을 꾸짖었다. 소년이 “별 사소한 일로 혼내시는군요”라고 응수하자, 플라톤은 “습관은 결코 사소하지 않단다”라고 말했다. 

가장 나쁜 버릇이 드는 때는 우리가 가장 미숙한 어린 시절이며 기본 성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는 보모의 손에 달렸다. 나이가 어리다거나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해서 이렇게 고약한 성질을 눈감아 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아이들은 근본적으로 악을 경멸하도록 철저하게 가르쳐야 한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소크라테스에게 “당신은 무엇을 아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안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무지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기와 상대의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포악의 성미다. 고대 철학자는 자기 자신을 돌아본 후 어김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가장 피해를 입는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이상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는 비난이 나에게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수시로 의심하고 나 자신을 경계하면서 탐구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단점에 대해 주의를 주는 일은 정직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후각이 더 예민했더라면 타인의 체취보다 자기 자신의 체취가 더 지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타인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내게도 들이댄다

훨씬 위대하고 중요한 가르침은 우리가 바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다. 나의 우둔함과 왜곡된 이해력을 배울 때 전체를 개선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곧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사색에 온전히 몰두할 줄 아는 사람에게 명상은 완전하고 강력한 수련법이다. 우리는 명상을 통하여 복을 누린다

분노를 제어하기 위하여는 화를 강하게 억눌러야 한다. 내가 감추고 저항하는 데 가장 힘써야 하는 감정이 바로 분노다. 그 동기가 얼마나 사소한가와 관계없이 격분한다. 최대한 격하게 하되 간결하고 은밀하게 표출한다.

우리는 분노를 감춤으로써 그것을 더 키운다. 드러나는 결함은 차라리 덜 심각하다. 정말 위험한 결함은 건강한 기색을 하고 숨어 있는 것이다. 나를 희생시켜 가며 내 격정을 숨기기보다는 내 감정들을 느껴 보는 것이 좋다. 

삶은 연약하여 흔들리기 쉽다. 고민들은 나를 짓누르거나 상하게 한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이 평범한 낙수가 나를 갉아먹고 잡아먹는다. 일상의 불행들은 결코 하찮지 않다. 

우리의 욕망은 자주 흔들이며 일관성이 없다. 매일매일 새로운 생각을 하고, 시시각각 기분도 달라진다. 우리는 다른 이의 힘을 빌려 움직이는 꼭두각시와 같다. 물 위에 떠다니는 물체처럼 여기저기 이끌려 다닌다.

머릿속에 명확한 조직과 규범을 확립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원칙과 현실 간의 적절한 질서와 관계를 유지할 줄 알고 언제 어디서나 일관성 있게 처신할 것이다.

‘자신을 알라’라는 신의 가르침을 깨달은 소크라테스만이 현인이다. 깨달음을 통하여 스스로 업신여기기에 이르렀다. 자신에게 속한 수많은 불완전하고 연약한 면들을 인지하고 인간의 허망함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특별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도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다.

 

| 지적 생활의 중요성

왜 공부하냐? 잘 살고 잘 죽기 위해 공부한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진보하고 신중해졌는 지이다. 

다른 사람을 무조건 좇는 자는 아무것도 좇지 않는 자이며 그는 결코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그 무엇도 알아내지 못한다.

누가 더 많이 아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잘 아는지를 따져야 한다. 마치 새들이 새끼를 먹이고자 곡식 낟알을 찾아서 먹어보지도 않고 물어오듯 우리는 머리를 채우기 위해서만 노력하고 이해나 의식은 비워둔다. 

우리는 다른 이의 의견과 학식을 무심코 받아들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고기가 우리의 뼈와 살이 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생이 권위나 신뢰를 전부 배제하고 자기 원칙을 선택하거나 의심하는 것으로 걸러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들이 더 이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들이 아닐 것이다. 그 학생의 것이다. 

플라톤의 가르침을 배울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흡수해야 한다. 플라톤이 처음으로 말했다고 해도 나중에 말한 사람보다 진리와 이성에 대한 소유권을 더 갖지 않는다. 

플라톤과 내가 동일하게 보고 이해했다면 그것은 플라톤의 진리와 이성인 동시에 나의 진리와 이성이기도 하다.

꿀벌들이 꽃밭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결국 온전히 자신만의 꿀을 만들어 내듯이 학생들은 다른 데서 얻은 지식들을 혼합하고 변형시켜 완전한 자신의 작품 즉 자신의 견해를 만들어 내야 한다. 학생이 공부하고 실습하는 것도 결국 이 견해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의 판단력은 세상과 소통하면서 놀랍게 계발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속박되고 짓눌려 있어 바로 코앞의 일 밖에 보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부지불식간에 엄청난 결과와 피해를 가져오는 오류에 빠져있다. 이 큰 세상은 바로 우리를 바르게 알기 위하여 들여다봐야 하는 거울이다.

우리는 큰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더 흥미를 느낀다. 우리가 이미 아는 것들도 만일 지금 처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면 그 무엇보다도 놀랍게 여기리라. 아주 크지 않은 강일지라도 더 큰 강을 본 적이 없는 자에게는 거대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삶의 여정에서 내가 찾은 최고의 필수품은 바로 책이다. 평화로운 시절이든 전쟁 중이든 나는 절대 책 없이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논쟁에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솔직하고 진실한 의도를 견지해야 한다. ᆢ그대의 덕성과 양심에 관한 일이므로 가면을 씌워서는 안 된다. 진리를 말할 때는 단순하고 기교 없이 말해야 한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몽테뉴는 역사상 최고의 작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 《수상록》은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수필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는 글이다. 후에 태어난 영혼이 자유로운 셰익스피어, 니체, 루소와 같은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우리 같은 초보들은 이 방대한 글을 다 읽을 수 없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들어있는 방대한 내용 중에서도 핵심적 내용을 뽐아 엮은 이 책을 소개한다. 원본의 방대한 《수상록》도 시간을 두고 정복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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