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79] “나는 아직도 지켜야 할 게 많다오” 보령 청라면 800년 은행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79] “나는 아직도 지켜야 할 게 많다오” 보령 청라면 800년 은행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0.08.12 0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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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채원상 기자]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내게 와서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오.

그런데 그 소원이라는 게 하나같이 꼭 들어주고 싶은 것 투성이였소.

피죽도 못 얻어먹던 이가 고깃국에 쌀밥을 먹게 해 달라 청하는 게 아니었거든.

금쪽같은 새끼들 배만 곯지 않게 해 달라, 열심히 농사를 지었으니 땀 흘린 만큼만 곡식을 얻게 해 달라 빌고 또 비는 게 민초들의 고단한 일상이었소.

그들의 일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면 웃음이 지어지는 게 아니라 코가 시큰거려 혼이 나는 날이 더 많았다오.

그렇게 한해, 두 해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은 나는 더욱 굳게 수호신이라 믿었소.

수호신...... 처음엔 그 이름이 무겁기 그지없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책임감이, 또 언제인가부터는 사명감이 되어 사람들의 삶을 지키게 되었다오.

내가 있는 이곳은 국내 최대의 은행나무 집산지라는 충남 보령시 청라면이오.

700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마을 곳곳에 식재되어 있어 가을이면 마을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다오.

전국에서 생산되는 은행 중 우리 마을에서 100분의 5 정도가 생산 된다 하니 ‘청라 은행마을’이란 이름이 지극히 당연한 게 아닌가 싶소.

이 동네엔 100년 된 은행나무는 수두룩하다오.

100년 묵은 은행나무는 세월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도 조심스러울 것이 외다.

어쩌다 보니 나는 800년이 넘게 이 마을을 지키고 섰지만 얼마나 더 오래 이곳에 서 있을지, 사람들의 기도를 듣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

허나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가까이서 이곳에서 사람들이 비는 소소한 소원들을 듣고 싶다오.

뭐랄까? 그들은 나를 수호신이라 부르지만 사실 나는 그들에게 삶에 대한 예의를 배우고 있소.

아직도 이곳 사람들은 일 년에 두 번씩 은행나무제를 지낸다오.

이들이 빌고 또 비는 것은 800년 전에도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소. 삶의 모습은 달라져도 행복은 달라지지 않았나 보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여전히 이들을 지켜주고 싶소.

이들과 함께 조금 더 오래 이곳의 풍경으로 머물고 싶다오.

보령시 보호수로 지정된 800년 수령의 항천리 은행나무는 높이가 26m, 나무둘레 6.8m로 가을이면 전국에서 사진동호인들이 찾고 있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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