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문화산책] ‘활쏘기’의 전통과 현실
[정진명의 문화산책] ‘활쏘기’의 전통과 현실
‘온깍지궁사회’·‘온깍지활쏘기학교’의 탄생
  • 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 승인 2020.08.1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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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활쏘기 모습.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전통 활쏘기 모습.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이 전통 ‘활쏘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활쏘기를 하는 전국의 2만여 국궁인에게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법과 사풍 등의 활쏘기가 오천년 역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굿모닝충청은 전통활쏘기를 연구하고 계승해 가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온깍지활쏘기학교’ 정진명 교두로부터 활쏘기의 현실과 문제점, 대안 등을 연재한다. 지난회 ‘국가무형문화재 활쏘기 긴급 점검’에 이어 이번회에는 ‘활쏘기의 전통고 현실’이 이어진다./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2000년 겨울에 작은 단체가 하나 출범했다. 발기인이 14명인 모임. 하지만 이 작은 모임의 위력은 몇 달 지나지 않아 국궁계에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그때까지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던 한 가지 사실에 대해 이들이 질문을 던졌고, 그 물음 앞에 전국의 모든 국궁인이 아무런 답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이른바 ‘온깍지’ 논란이 그것이다. 

이들의 질문은 아주 간단했다. 지금 전국 모든 궁사의 활쏘기 자세(궁체)가 옛날부터 전해져온 우리의 전통 사법인가? 이것이 그 물음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국의 궁사들은 양궁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형태로 활을 쏘았다. 즉 시위 당긴 손을 양궁처럼 그 자리에서 멈춘 채 발시하는 것이다. 이런 동작을 해방 전에 집궁한 분들은 ‘반깍지’라고 불렀다. 이것은 잘못된 궁체를 지적하기 위해서 쓴 말이다. 반깍지의 반대말은 ‘온깍지’이다. 활을 쏜 뒤에 시위를 놓은 깍짓손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동작을 말한다. 한자로는 발여호미(發如虎尾)라고 했다. 범의 꼬리처럼 손이 펴진다는 뜻이다. 당연히 우리네 사법의 전통은 ‘반깍지’가 아니라 ‘온깍지’였다. 

때마침 시작된 인터넷 그물망을 통해 이 소식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전통 사법에 관한 질문을 던진 단체는 7년간 자신들의 활동 전 과정을 실시간에 가깝게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했다. 바로 이 점이 ‘온깍지’를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지게 한 동력이었다. ‘온깍지’란 말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그 동안 아무 생각 없이 구사들이 가르쳐주던 대로 활쏘기를 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동작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제야 자신들이 활터의 선배들로부터 배운 궁체가 전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렷이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활터는 생각처럼 쉽게 변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 30〜40년간 시행된 승단제도를 통해 명성을 쌓아온 이른바 ‘명궁’들이 스스로 ‘전통’이 아니라고 자백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더 분명해진 것은, 침묵하면 할수록 전통은 더욱더 강렬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전통 사법 문제 제기 후 20여 년이 흘렀다. 이제 국궁계는 옛날로 돌아갈 수도, 지금처럼 모른 척하고 나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골짜기에 갇혔다. ‘온깍지’가 전통이라고 인정하자니 자신의 입지가 꼴이 말이 아니고, 그냥 ‘반깍지’로 밀고 가자니 양궁을 닮아 우리의 전통이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과 앞뒤가 안 맞는다. 결국 ‘온깍지’나 ‘반깍지’나 같은 거라는 해괴한 타협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길만이 남은 셈이다. 이것이 ‘활쏘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된 2020년에 활터 현장에서 맞닥뜨린 삼엄한 현실이다.

‘활쏘기’의 핵심인 사법이 변질되었다면, ‘활쏘기’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했을 때 무엇을 보존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면 그것을 제대로 보존해야 할 수단과 방법과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순리이고 순서이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맞닥뜨린 이런 현실을 방치한 채 지정만 해놓고 만다면 너무나 안이한 행정이라는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차라리 씨름처럼 왼씨름만 남고 오른씨름이나 띠씨름, 통씨름 같은 다른 것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라면 ‘전통’을 논할 때 아무런 고민이 생기지 않을 일이다. 왼씨름만 ‘전통’으로 지정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터는 달라서 반깍지 궁사가 99%라고 해도 전통을 지키는 온깍지 궁사가 1%라도 남았다면, 그 ‘전통’의 기준을 99%가 아닌 1%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같은 금이라도 순도가 다르다면 값이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금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값은 순도 99.99% 금괴를 기준으로 매겨지는 것이다. 이런 이치는 ‘전통’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2000년 겨울에 전통의 문제를 제기하며 출범한 단체는 ‘온깍지궁사회’다. 당시 깍짓손을 크게 펼치며 활쏘기하는 사람들을 전국에 걸쳐 조사한 결과 노인들 빼고서는 30여 명 정도였고, 이들 중에서 14명이 충북 청주의 한 활터에서 모여서 발기인 대회를 치렀다. 그리고 7년간 전국을 돌며 해방 전후에 집궁한 구사들로부터 옛날 활쏘기의 모습을 채록했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이후에도 온깍지 궁사는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았고, 대부분 활터 현장에서 반깍지로 입문한 초심자들이 온깍지 동작을 몇 차례 시도해본 뒤에 뜻대로 되지 않자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형국이다. 이러다 보니 현재도 온깍지 궁사의 숫자는 2000년과 비교할 때 크게 더 늘지 않은 상황이다. 전통 사법이 일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상황이 ‘전통’의 가치를 진정으로 보여주는 역설이다. 온깍지 동작은 깍짓손을 그렇게 뻗기 위해 몸 안에서 취해야 할 힘쓰기의 원리와 방법이 있다. 이것을 겉으로 보아서는 눈치챌 수가 없고 누군가 옆에서 꼭 짚어주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이런 원리를 무시하고 깍짓손을 몇 번 크게 뻗는다고 해서 온깍지 동작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온깍지 사법을 제대로 배우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혼자서는 절대로 터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점이 ‘전통’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무나 그렇게 몇 번 해 봐서 다 되는 것이라면 그게 전통일 리가 없다. 전통은 한두 세대에 이룰 수 없는 비결이 숨어있는 법이다. 그러니 한두 번 해보고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몇 대를 이어올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건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런 것에 ‘전통’이라는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천 년을 이어온 전통 사법의 비밀은 어떠한 것이며, 활터 현장에서 배우기 힘들게 된 이 비결은 또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문제는 교육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 이를 고민한 몇몇이 온깍지를 진지하게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길을 터놓았다. 한두 번 해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백 년의 전통을 제대로 배우려는, 진지한 마음을 내는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든 것이다. ‘온깍지활쏘기학교’가 그것이다. 적어도 2000년에 온깍지궁사회가 제기한 문제의 답을 들어볼 수 있는 유일한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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