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故 박원순 서울시장, 그리고 조선희 작가가 간추린 생각
《화제》 故 박원순 서울시장, 그리고 조선희 작가가 간추린 생각
  • 정문영 기자
  • 승인 2020.08.14 2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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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작가는 14일 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묻힌 경남 창녕의 묘소에 다녀온 뒤
〈조선희 작가는 14일 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묻힌 경남 창녕의 묘소에 다녀온 뒤 "모든 팩트들이 다 나오는 최종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을 접고, 이 문제를 정리해보기로 했다"며 자신의 생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SBS/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굿모닝충청=서울 정문영 기자]  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운명을 달리한지 한달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인의 성추행 의혹혐의가 뚜렷이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피해 고소인 측 법률대리인이 일방적으로 주장한 정황만 있을 뿐, 실체적 접근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조선희 작가(전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14일 고인이 묻힌 경남 창녕의 묘소를 다녀왔다. 그리고는 "한달 전 자신의 목을 매달 밧줄을 배낭에 넣고 산으로 올라갔던 한 사람을 생각한다"며, 고인의 죽음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페이스북에 적었다.

그가 글을 올리자 공감하는 이들이 몰려들고, 저마다 공감을 표하는 댓글을 달거나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글을 공유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는 등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대체 어떤 내용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하는지, 화제의 글을 그대로 옮긴다.

한달 전 자신의 목을 매달 밧줄을 배낭에 넣고 산으로 올라갔던 한 사람을 생각한다.

한가지 이유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없다. 그의 경우, 나는 일종의 ‘번아웃’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성취에 자기 인생과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낭떠러지. 너무 커보이는 사람에겐 엉뚱한 지점에서 허방을 짚는 취약함이 있다. 우울 없는 조증은 없으니까. 불가사의한 투지로 장애물을 백번쯤 돌파하던 사람이 누적된 피로감에 한 순간 심신이 무너지는 것.

성추행으로 고발 당했다는 것이 마지막 일격이었을 수 있다.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의지의 소유자, ‘아님 말고’는 사전에 없는 목표지상주의자가 그 플랜에 금이 가게 된 경우. 사실 여부나 정도의 문제를 떠나 앞으로 겪게 될 일은 뻔하고 헤어날 방도는 보이지 않을 때. 실제로 그가 자살한 다음 일어난 일들은 앞서 그의 선택이 불가피했음을 소급해서 입증했다. 따라서 '죄 지었으니 죽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한 것처럼, '고발 당했으니 죽었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살아있다고 수취인불명의 훈수나 두는 게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한 개인으로서 그의 삶은 균형이 깨져 있었다는 것, 공적인 영역이 압도하고 사적인 영역은 멸실돼버렸다는 것, 그것은 그의 많은 업적과 허망한 죽음을 동시에 설명해준다.

상을 두번 받으면 한번만 기부하고 한번은 아내에게 갖다줄 것이지. 30대에 이미 잘 나가는 변호사였고 부자였는데 최소한 집 한칸은 지키면서 기부할 것이지. 1990년대에 남산 자락 필동의 역사문제연구소에 가면 2층 양옥집  앞뜰 잔디밭에서 연구자들이 탁구대 놓고 탁구를 쳤는데, 그들에게 그 근사한 집을 마련해주면서 왜 자기 가족의 행복에는 무심했는지.

업무외 영역, 스몰토크에서는 정서지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호감 표시하자고 건네는 덕담에서 삑사리 내는 캐릭터였던 만큼 어떤 실수들을 했을 거라 짐작해볼 뿐, 어디까지가 팩트인지 또는 확인 가능한 팩트인지 나는 아직 판단을 유보한다.

다만 40년 동안 기자와 작가로 살아온 사람의 감으로,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들 중에서 변호사가 쓴 고소장보다는 여비서 본인이 쓴 인수인계서가 진실에 근접한다고 본다.

고소장은 여러 대목에서 의구심을 갖게 한다. 가령 그는 별거한 적 없고 사망 직전까지도 지인 모임에 아내를 동반했다. ‘나 별거중이야’, 흔히 낯선 여자에게 던지는 작업멘트가 성적 접근의 근거로 쓰긴 유용했을지 몰라도, 자신의 24시간을 꿰고있는 비서에게 했다는 대사로는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후임자에게 써준 인수인계서는 그때까지 보도된 피해사실들과는 상반된 증거였지만, 한 신문 빼고 어느 매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애당초 고소의 계기가 됐던 다른 성폭행 사건의 오리무중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들이 없다. 파악은 하고 있지만 기사를 쓸 수는 없다고 했다. 적어도 〈한겨레〉와 〈경향〉의 경우 ‘2차 가해 금지’라는 보도원칙이 있다 한다. 피해자 관련 디테일은 그가 과연 피해자인지 아닌지까지 포함해서 그 내용이 뭐가 됐든 2차 가해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않다보니 숫제 피해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피해자 대신 변호인이 커밍아웃한 이 특이한 미투에서는 피해자의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2차 가해다.

이런 보도기준이 만들어진 건 여자들의 오랜 싸움의 성과이고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취재와 보도란 수만가지 다른 케이스들을 다 그 자체의 진실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가치판단의 어떤 절대기준을 두고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건, 위험한 평균주의이거나 비겁한 편의주의일 뿐이다.

몇가지 증언만으로 한달 가까이 지면을 경쟁적으로 소비하던 신문들이 그것에 배치되는 반대증거들에는 셔터를 내리고 다른 이슈로 건너가버리는 현상.

우리는 정치권력의 파시즘을 기억하고 있고, 그래서 공권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가드를 올리고 있지만 미디어들이 앞다퉈 한 방향으로 내달릴 때, 그 미디어 훌리건의 폭력성 앞에서는 아무런 방어기제가 생겨나 있지 않다.

지난 한달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딜레마를 겪었다.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훌리건과 여러 해 함께 일했던 한 공인의 죽음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한국사회에 사회적 약자 개념이, 그 편에 서겠다는 정치적 올바름이 어느 정도 상식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 싫지 않았다. 또한 우리 사회가 성적 착취와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을 어느 만치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제 여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아도 되는 사회가 확실히 되긴 됐구나. 성폭행을 고소한 여성이 판사에게 치마가 짧았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여자들이 2등 시민으로서 열등한 지위와 함께 성적인 착취까지 감수해야 하는 시대, 방금 전까지 열차바퀴처럼 단단했던 그 문화를 펑크낸 것이 미투 운동이다. 연극계에서 처음 이윤택의 ‘권력형 상습적 성폭력’ 사례를 폭로하면서 한국형 미투 캠페인이 시작되고, 선배검사의 성희롱을 문제 삼았다가 8년간 인사불이익과 조직의 냉대를 견뎠던 검사가 ‘미투!’하고 나왔을 때 이 씩씩한 후배 여자들이 고마웠다.

우리 세대에도 권인숙 같은 위인이 있었지만 대체로 그냥 상황을 견뎠는데, 나는 겁 많고 이기적이라 당장의 이해가 위협받지 않는 선에서 저항해보거나 안전지대로 빠져나온 다음 말을 꺼냈었는데. 우리는 확실히 더 나은 사회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투운동도, 어떤 시민운동도 절대선의 포즈를 취하려 할 때가 위험한 순간이다.

오늘 동료 두 사람과 창녕의 묘소에 다녀왔다. 그토록 할 말이 많던 사람이 영원한 침묵에 잠겨있는 그 장소를 등지고 돌아오면서, 모든 팩트들이 다 나오는 최종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을 접고, 이 문제를 정리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남자보스-여비서 구도'가 지긋지긋하다. 현실에서도 그렇고 미투 프레임으로도 그렇다.

미투 캠페인이 그런 성역할 구도를 깨는 비전을 개척하면서 현실적인 성과를 거뒀으면 좋겠다. 미투 에너지가 여자 보스를 혁신적으로 늘리는 이슈 파이팅으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위력’이 모든 미투의 관건인데, 궁극적인 문제는 위력의 윤리가 아니라 위력의 구조일 것이다.

독일 경우 여성 총리가 2005년 이래 장기 집권하고 있고, 독일 국방장관 출신인 EU집행위원장도 여성이다. 하지만 정치와 공공부문에 비해 민간부문의 여성은 취약한데, 2016년 ‘민간 및 공공 부문 고위직 남녀동등 참여에 관한 법(FüPoG)’에 따라 기업 내 여성 고위직 30% 할당제가 시행되면서 기업체 여성 임원도 늘어나는 추세다.

나는 페미니즘 이름으로 뭔가를 한 적 없다. 여성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적도 없다.

다만 기자로서, 작가로서, 공공기관장으로서, 내 서있는 곳에서 페미니스트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자기검열을 해왔다.

지난 40년, 아니 과거 1백년 한국의 여자들이 각기 자기 몫의 고난을 치르면서, 자기 몫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자기 몫의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면서 여성인권의 전선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왔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페미니즘만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여성운동단체라 해서 페미니즘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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