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택영의 파리팡세》 현대 주거공간에 관한 소고
《정택영의 파리팡세》 현대 주거공간에 관한 소고
  • 정문영 기자
  • 승인 2020.08.15 0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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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2020 현대 주거공간에 관한 소고

탁 트인 외부공간의 실내 유입'이라는 컨셉으로 대형화 되어가는 통유리창과 초대형 평각TV의 발달로 주거공간에는 미술작품을 걸 공간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탁 트인 외부공간의 실내 유입'이라는 컨셉으로 대형화 되어가는 통유리창과 초대형 평각TV의 발달로 주거공간에는 미술작품을 걸 공간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현대인들의 소구력에 부응한 편리한 동선과 심플한 미니멀 경향을 추구하는 건축 설계 트렌드는 과거의 주거공간과는 너무 다른 렌더링 컨셉으로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과거에는 겨울철의 추위에 대비하여 난방열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창문의 크기가 작고 그 수도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보일러 회사들의 목숨 건 연구개발 덕택으로 난방시설의 획기적인 진보에 힘입어 난방열 소모를 줄이기 위해 창문을 작게 낼 필요가 사라지고 탁트인 외관을 실내로 유입한다는 슬로건 아래, 각 방뿐만 아니라 공동공간인 거실의 유리창은 통유리로 변신해, 이게 벽면인지 외부와 탁 트인 허공인지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초대형화 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더하여 전자제품 메이커들은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화상을 구현해낸다는 지상명령을 받들어 화면 크기가 점차 비대해지더니,  마침내 초대형 평각 TV를 개발해내기에 이르렀고, 이 슈퍼 평각 TV는 거의 벽면 공간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극대형화 되어 벽면 공간을 침식해 들어갔다.

자! 이쯤 되다 보니 과거에는 크고 작은 미술작품들을 구매해서 여기저기 걸어놓고 집안을 오가며 작품을 감상할 공간적 환경이 주어졌었지만, 통유리와 초대형 TV가 그 자리를 대신해 장악한 이후부터는 미술작품을 걸 공간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미술인들에게는 실로 비통한 일이 되고 말았다.

가뜩이나 소비재가 아닌 미술작품을 식료품이나 야채처럼 매일 사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생긴 가욋돈이나 잉여 차액으로 뜻밖의 자금이 뚝딱 생기게 되었을 때, 또는 어쩌다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친구가 미술작품을 사는데 그냥 나가기에는 뒤통수가 근질근질해 도저히 자존심이 무너져 마지못해 식은 땀을 흘려가며 한 점 들고 오는 경우 외에는, 사실 그림을 산다는 건 일반인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었다.

악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30여년 전 같았으면 생일잔치나 집들이 잔치로 가가호호 초대해서 푸짐한 갈비찜과 잡채 등 기름진 음식으로 후하게 대접을 해, 배를 두드려가며 실컷 먹은 뒤 후식 차례가 되면 으레 거실 소파에 옹기종기 걸터앉혀 놓고, 쥔장이나 안주인님은 벽에 걸린 작품들을 가리키며 '저 작품은 그 유명한 아무개 작품'이라고 한껏 자랑 섞인 작가 설명으로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던 때가 있었지만, 페미니즘인지 뭔지 하는 사회 저변의 각성과 외식문화의 병폐가 드넓게 전염되면서 집에 사람을 부르고 초대할 일이 없어지니, 당연히 집에 소장한 그림 자랑할 기회를 잃게 된 것이다. 그러니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그럼 악재가 여기서 멈추었는가?

아니다. 잉여자금이란 게 뜻밖에 매매 차익에서 스멀스멀 나오는 것인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춤을 추다가 급기야 부동산 소유자들에 대한 뒤로 자빠질 만큼 가공할 세금이 추징된다는 소식에 놀란 주부들이 깊숙이 감춰두었던 전대를 더 세게 쥐어틀고, 절대로 돈을 허투루 쓰지 않게 되었다.

이 또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이러니 무슨 미술작품 거래가 활기를 되찾고 거래가 원활히 이루어지겠는가!

이래저래 화가들만 답답하다. 저 검게 밀려드는 우기의 시커먼 먹구름은 언제나 걷히려나....! 어이상실로 벌어진 입 다물지 못해 목놓아 기다린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는 "예술가의 작품은 그 삶의 꽃"이라고 일갈했건만, 그 꽃을 따러오는 이가 없는 이 처절한 꽃밭을 언제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는 오직 하늘만 아신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가엾은 예술가들이여!

정택영 / 프랑스 파리 거주 화가, 전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www.takyoungj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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