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일 시론》 대한민국 대형교회가 '보수' 혹은 '극우'인 이유
《김두일 시론》 대한민국 대형교회가 '보수' 혹은 '극우'인 이유
  • 정문영 기자
  • 승인 2020.08.16 23:06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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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일 시론》 대한민국 대형교회가 '보수' 혹은 '극우'인 이유 (부제: 해방 후 서북에서 내려온 청년들)

- 김두일 차이나랩 대표(한중 IP 전문가, '검찰개혁과 조국대전'의 작가)

김두일 칼럼니스트는 16일,
〈김두일 칼럼니스트는 16일, "광화문 집회에 나온 보수기독교 신도들은 성경 대신 '내 이웃에게 전염병을 주라'는 '빤스 목사'의 말씀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꼬집었다. 사진=JTBC/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1.
광복절을 맞이해서 광화문에서 '방역 테러'를 시도한 일부 보수기독교회와 그 구성원들을 보면서 오늘은 대한민국 대형교회의 근간을 이룬 개신교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해 보고자 한다. 역사와 정치 그리고 종교적인 내용까지 모두 들어가 있다. 신학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해당 교회를 다니는 분들에게는 불편한 내용이 될 수 있고, 나도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개신교 혹은 대형교회를 다니는 신도들을 비하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가 없다. 단지 대한민국 정치가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보수 혹은 극우의 정치적 스탠스가 나오게 된 배경을 알면, 어제 광화문에 나온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쓰는 글이다.

2.
지금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하는 미래통합당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당이 아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 후 7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의 주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키워드로는 친일, 반공, 독재, 재벌, 그리고 보수개신교가 있다.

“과거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1949년 반민특위를 해체하면서 이승만이 했던 말).

“새로운 미래로 가기 위해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2020년 8월 16일 이철우 경북지사가 한 말)

이승만의 친일파와의 결탁은 미래통합당 역사의 시작이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다.

3.
반공주의와 보수개신교가 결합해서 정권을 비호하는 시스템이 형성된 것은 해방 후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가 살아남기 위해 반탁-반공 운동을 시작했는데, 여기에 서북에서 내려온 기독교인 청년들이 대거 합류했기 때문이다. 왜 서북 지역에 유독 기독교인들이 많았고, 그들이 반공주의자가 되었는지의 과정도 대단히 흥미롭지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길어서 생략한다.

이들이 남한으로 내려와서 서북청년단의 주축이 되었는데, 한국 개신교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 중심에 대한민국 개신교의 큰 교세를 가지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이자 한기총의 중심인 영락교회가 있었고, 그 외에 여러 대형교회들도 서북 출신 청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명박의 인맥 배출을 했던 곳으로 유명한 소망교회도 서북 출신 곽선희 목사가 세웠다. 이명박 인사 기준인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을 의미한다.

4.
서북청년단은 대한민국에 실존했던 정치깡패들이자 백색테러를 무수하게 자행했던 극우단체로 폭행, 강도, 강간, 살인, 고문은 물론이고 제주 4.3 사건 당시에는 영아살인까지 하면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의 끝판을 보여준 단체이다.

오죽했으면 해방 직후 3년간 임시로 조선을 통치하던 미 군정청에서는 “마치 나치와 KKK를 합친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였다.

더구나 그들은 민간 조직이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사법권이나 수사권을 부여받은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군경을 쫓아 다니면서 빨갱이 소탕을 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일까?

5.
서북청년단의 그런 과격한 활동의 배후에는 이승만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그들의 활동을 용인하고 지원해 준 것이 가장 컸다. 마치 마오쩌뚱이 홍위병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들을 숙청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활동이 얼마나 극성스러웠는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는 더 이상 숙청할 좌파 정치인이나 지식인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자 그들은 민간인을 공산당으로 몰아 학살했다.

두번째로는 미군정의 암묵적 동의와 지원도 빼 놓을 수 없다. 이 모든 일은 미국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꼬인 것 뿐만 아니라 많은 무고한 피해자가 나온 것에는 미국 탓이 크다.

마지막으로 서북에서 내려온 청년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기독교단의 주류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서북청년회 활동을 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교회에 적을 두고 있었다.

6.
이는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권과 결탁해서 독재자를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군사정권이 붕괴된 후 보수정당의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보수개신교가 중심이 된 대형 집회가 열리고 여기에 성조기가 등장하는 유래가 되었다. 그들이 괜히 성조기를 흔드는 것이 아니다.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북청년단은 너무 잔혹하고 과도하게 치외법권적인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정권을 확실하게 잡은 이승만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1949년 10월 단체 등록을 취소시켜 가면서 그들의 활동을 강제 종료시킨다.

이 때문에 이승만 정권과 서북 출신의 기독교단은 사이가 소원해 진다. 대신 서북 출신의 기독교인들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 본격적인 유착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그리고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미화되었지만, 사실은 일개 정치 깡패에 불과한) 시라소니 이성순이 모두 서북청년단 출신이다. 이성순은 동대문파 이정재에게 린치를 당한 후 깡패에서 은퇴하고 영락교회 집사로 변신한다.  

7.
한국전쟁은 패망한 일본이 경제적으로 부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서북에서 내려온 기독교인들에게도 대단한 기회가 되었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구호물자와 선교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를 주축으로 한 서북출신 기독교인들이 뛰어난 영어실력과 미국 선교사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이를 독점했고, 새로운 신흥 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과는 더욱 소원해 졌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했던 적이 있어 신사참배를 인정하는 한경직 목사와는 달리, 이를 적극 반대했던 한상동 목사가 주축이 되어 고려신학교를 설립했는데 이를 고신파라고 한다. 고신대가 바로 이 교단에서 설립한 학교이다. 이승만은 당시 신흥세력으로 부상하던 서북 출신 기독교단을 고신파를 이용해서 견제하려고 했다. 실패했다.

8.
한국전쟁 직후 한경직과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은 월드비전과 홀트아동복지회 등을 통해 전쟁고아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취지와는 달리 일종의 정치적 목적의 사업으로 발전하였는데, 특히 미국과의 혈맹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하면서 반공(反共), 반소(反蘇)를 위한 정책을 펼쳐 나가는 선전활동의 근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미국과 단단한 관계를 형성하고 한국내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기반을 확고하게 쌓을 수 있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독실한 크리스찬인 미국인 홀트가 한국의 전쟁고아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반공-반소의 이념적 용도로 사용되었고, 우리에게는 ‘고아 수출국’이라는 부끄러운 천륜적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이 고아 수출은 1980년대까지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9.
4.19 혁명에 의해 이승만은 쫓겨나고, 5.16 쿠데타에 의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당시 전후 선교사업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던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은 박정희 쿠데타와 그 정권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들 구성원들이 5.16 쿠데타 당시 군 장성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1947년 조선경비대(국군)와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에는 서북 출신 청년들이 대거 입교했다. 47년 입교한 육사 5기생은 서북 출신이 무려 2/3나 되었고, 48년 입교한 8기에도 많았다. 그리고 이들 5기와 8기 출신의 장성들이 바로 1961년 박정희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것이다.

10.
또한 미군정 시절 추진했던 국립대학 설립안에 당시 많은 교수, 학생들이 반대운동을 벌이자 서북청년단에서는 그 핵심을 '좌파(공산주의)'라 단정짓고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6,000여명의 회원을 경성대학(현 서울대학)을 비롯한 각 학교에 편입학 시켰다. 이른바 대학내 프락치의 시조도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후 정권의 브레인으로 성장했다.

11.
박정희는 서북청년단 출신의 기독교인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할 수 밖에 없었는데, 자신의 쿠데타에 직접 참여한 부하 장성들이 이곳 출신이기도 하지만, 부당한 방법으로 확보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이 미국에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었기 때문이다.

한경직은 당시 전쟁 고아들로 구성된 어린이 합창단의 미국 순회 공연을 기획했고, 자신과 친분이 있던 미국 내 인사들을 통해 박정희 지지를 호소했다. 당시 어린이 합창단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박정희는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미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박정희와 육영수가 어린이 합창단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했던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12.
또한 미군정 시절과 한국전쟁을 거쳐 미국내 인사들과 친했던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의 승공 담론은 박정희 정권 이후 모든 보수 정권의 중요한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차이점에 대해 자유와 인권에 대한 차이점을 두기보다, 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경제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승공이론이었다. 

이 논리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체제임에도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고, 경제성장이 가장 중요하고, 그를 위해서 독재를 해도 된다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이는 보수 기독교회를 중심으로 목사들이 아직까지 즐겨하는 설교에 해당되고, 현재 보수정치, 보수언론 등이 즐겨 사용하는 레토릭이다. 

문재인 빨갱이를 외치는 목사들이나 그 설교에 ‘아멘’을 외치는 신도들이 모두 이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1960년대의 만들어진 승공담론임에도 말이다.   

13.
현재 대한민국의 주류 기독교 교단의 대형교회들은 일제강점기에서의 해방과 한국전쟁을 통해 이런 성장의 배경이 있고, 그 교회들을 성장시켜온 교단의 목사들은 모두 보수 혹은 극우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신학은 내가 모르겠고 정치적으로는 그렇다. (〈한국전쟁과 기독교〉라는 윤정란이 지은 책에 자세하게 이런 내용들이 실려 있다)

한경직(영락교회), 하용조(온누리교회), 김삼환(명성교회), 곽선희(소망교회), 김진홍(두레교회, 뉴라이트 공동대표), 인명진(갈릴리교회,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김홍도(금란교회), 전광훈(사랑제일교회) 등이 모두 이러한 보수 혹은 극우적 정치 스탠스를 가진 목사들이다.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다.

모든 일에는 이렇듯 인과관계라는 것이 있다.

14.
왜 미래통합당 소속 정치인들은 지금도 일본을 두둔하고, (혹은 일본과의 화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보수기독교단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비토하며, 급기야 어제 전광훈은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에도 광화문에서 시위를 주도하는지, 거기에 따르는 교인들은 왜 그러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이런 배경이 있다.

어제 광화문 극우 집회를 주도한 이들이나 참여한 이들 대부분이 노령층인데, 이들은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청춘과 중장년 시대를 보낸 산업화 세대라는 것도 상기와 같은 인과관계를 통해 그들의 참여 이유도 짐작이 가능하다.

15.
1989년 6월 한 신문기자는 당시에 흥미로운 유행어를 소개했다.
“비행기를 타려면 TK North-West United Airline 타라!”

이 말이 나온 배경은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대구경북(TK) 출신들이고, 여기에 국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그룹 상당수가 서북 출신들(국회의장,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이라는 것을 빗댄 것이다. North-West는 서북청년단을 말한다.

또한 이들이 2020년 현재 반정부 극우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이기도 하다.

16.
대한민국의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이기 때문에 정치 목사나 그 선동에 심취해서 따르는 교인들을 강제할 수는 없다. 다만 법을 어겨가면서 그들의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서는 안된다.

어제 주최측이나 참여자들은 사실상 '바이오 테러'를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주최측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상권 청구를 포함해서 말이다.

성경에는 “내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성경말씀을 행하는 어제 나온 신도들은 성경 대신 “내 이웃에게 전염병을 주라”는 '빤스 목사님'의 말씀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매우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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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3-04-10 13:36:50
좋은 글입니다
서청인이 북한에 있을때야 일반 기독교인들었겠지만 이후 미굼정 표현대로 kkk단 버금가는 활동한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외 보수 집회에 교회인들이 나오나 했는데 이해가 되네요.

2021-01-22 09:19:26
북한에서 밀려난 친일파들이 영락교회 모여 경찰복 군복으로 갈아입고 김일성 목을 따러 북으로 가야지
왜 남한에서 죄없는 양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합니까. 그래야 미군한테. 친일파 경찰한테 잘보여 자기들 호의 호식하려고 잔인 한 짓들 한거죠.
예수팔이 고만하시요 역겹소 소망교회 곽써니써니
천억비자금 짱노자살 사만사안, 청계천 구제품 지농지농 에라이 ㅡ

평화 2020-09-14 01:20:49
교회는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집단 입니다. 위에 역사에서 보는 것 처럼 종교와 정치가 전형 예수의 가르침과 상관 없이 가는게 사실 입니다. 맹목적으로 따르는 교인과 정치적 목사 장로들이 예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죠.. 지금 광화문에 나오는 종교의 탈을 쓴 사람들에서 어쩌한 이수의 모습도 볼수 없다

인간 2020-08-18 23:04:43
저기... 6.25가 있기 바로 전 공산군이 북한 땅 서북에 내려와 기독교를 탄압해서 내려온 서북 출신이 세운 교회들이잖아요. 어떻게 공산당을 좋아할 수 있겠어요. 그 사상이 기독교를 탄압하는데 서북출신분들의 반공은 이분들이 겪었던 상처고 트라우마에요. 친일하고 엮지 마세요. 용서 해준게 친일은 아니죠. 그리고 한경직 목사님이 오산학교 출신이세요. 어떻게 친일을 해요. 한경직 목사님의 스승이 누구셨는지 아세요?

조형선 2020-08-18 20:46:11
도대체 이 내용과 대한민국이 통탄스럽다는 댓글이 어울리나요? 바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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