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문화산책] 역사의 교훈과 전통의 기준
[정진명의 문화산책] 역사의 교훈과 전통의 기준
조선궁술연구회 1929년 ‘조선의 궁술’ 편찬…전통 활쏘기의 기준서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0.08.1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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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영옹의 궁체.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근대 활쏘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성문영옹의 궁체.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이 전통 ‘활쏘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활쏘기를 하는 전국의 2만여 국궁인에게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법과 사풍 등의 활쏘기가 오천년 역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굿모닝충청은 전통활쏘기를 연구하고 계승해 가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온깍지활쏘기학교’ 정진명 교두의 활쏘기의 현실과 문제점, 대안 등을 연재한다. 지난회 ‘활쏘기의 전통과 현실’에 이어 세번째로 ‘역사의 교훈과 전통의 기준’이 이어진다./편집자 주 

[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사람은 한 생 60년을 살도록 공평하게 허락되었지만, 그보다 좀 더 긴 세월을 돌이켜보면 마치 판박이인 양 되풀이되는 상황이 있다. 그렇기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명청 교체기에 두 큰 나라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던 광해군의 모습이,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에 오버랩 되어, 판박이도 이런 판박이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선택은 언제나 그 시대 사람의 몫이다. 광해군은 보수 세력의 쿠데타로 역적이 되어 왕이면서도 왕의 묘호를 얻지 못하고 ‘군’으로 강등되었지만, 이 시대의 대통령들은 훗날 어떤 이름을 얻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판박이처럼 되풀이되는 역사에서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활터의 당사자들만 몰라서 그렇지, 오늘날 맞닥뜨린 ‘전통’의 혼란을 우리는 벌써 한 번 겪은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런 혼란 끝에 제도를 정비하고 우리 활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을 ‘교과서’까지 만들어 후손에게 길이 물려줄 ‘전통’의 모습을 또렷이 확립해놓았다. 1929년의 일이다. 그런 위대한 일을 해놓은 단체는 1928년에 결성된 ‘조선궁술연구회’였다. 

1928년 조선궁술연구회가 활쏘기를 체육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활쏘기는 무기였고, 한량들의 소일거리였으며, 백성들의 단옷날 놀이였다. 이렇게 광범위하고 다양한 형태로 살아 움직이는 활쏘기가 그들 곁에서 사라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백 년이 채 안 되어 이 모든 풍속은 증발해버렸다. 활터를 고급 사교클럽이나 로비로 알고 생활하던 상류층 인사들은 박정희 시대의 마감과 함께 고스란히 골프로 이동했고, 단옷날 성행하던 활쏘기, 그네타기, 씨름은 생활로부터 동떨어져 행사용 민속으로 희미한 자취만을 유지했다. 

역사를 돌이켜보다 보면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마치 ‘먼 미래에 너희들은 이렇게 될 것이고, 그러니 어리석은 너희를 위해 내가 이런 기준을 세워놓겠다.’는 듯이 어떤 일이 이루어질 때가 있다. 국궁계에서는 1928년의 조선궁술연구회가 그랬다. 묘하게도 활쏘기는 우리 겨레의 전유물이다시피 했으면서도 활쏘기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사법에 대해서는 정말로 찾아보기 힘들어서 우리 겨레의 DNA에 활이 새겨졌다고 믿기 힘들 지경이다. 그렇게 자기 기록에 무관심했던 한량들이 처음으로 모여서 우리 활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이 1929년에 나온 『조선의 궁술』이다. 

왜 하필 1929년이었을까? 1929년은 세계 대공황이 일어난 해이고, 뒤이어 전 세계에 걸쳐 파쇼독재정권이 권력을 강화하는 시기의 변곡점이다. 조선의 식민지화를 마무리한 일본제국주의는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켜서 만주를 점령하고, 곧이어 1937년에 노구교 사건을 일으켜 중국 침공을 공식화한다. 이런 숨 가쁜 정국만 언뜻 살펴보아도, 조선 내의 일제강점기를 사는 사람들의 위기의식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활쏘기라고 예외일 수 없다. 아니, 오히려 활쏘기이기 때문에 더 큰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활쏘기는 조선을 떠받친 전통 무예이자 문화였지만, 그것을 떠받친 나라가 망한 뒤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무관심 상태로 전락한 것이고, 이대로 간다면 일본의 강점이 자리 잡는 것과 동시에 일본 궁도에 밀려 서서히 사라져갈 것이 분명한 영역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당시 활터에서 활을 쏘는 사람이었다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 무엇일지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이 상황을 이해하는 가장 적실한 방법일 것이다. 

활쏘기의 일이, 과녁 맞히기가 전부가 아니라면, 당연히 그 ‘전통’이 오랜 세월 이어가도록 기준을 세워주고, 시대를 뛰어넘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조선 시대 무사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의무 아니었을까? 조선궁술연구회 회원들이 모두 이런 고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전국의 활터에서 십시일반으로 사비를 털어서 공동 자금을 마련하고 유력한 한글학자 이중화에게 부탁하여 집필하도록 부탁한 끝에 한국 역사 5천 년 동안 없었던 활쏘기 책을 한문이 아닌 우리 말로 출판했다면 그 일을 추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활터 공동체에 밀려든 위기의식이 아니라면 그 어려운 시기에 이런 책이 나왔을 리 없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측이다.

조선의 궁술 표지.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조선의 궁술 표지. 사진=온깍지활쏘기학교/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따라서 『조선의 궁술』은 1928년에 활터의 위기의식이 만들어낸 산물이고, 그런 만큼 무기술을 체육으로 바꾼 위대한 변화 과정의 결과였다. 선배 한량들의 그런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활쏘기를 국가무형문화재에 등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무형문화재에 등재되어야 할 내용은 물을 것도 없이 『조선의 궁술』이거나 그것의 연장이어야 할 것이다. 『조선의 궁술』에 기록된 내용이 무형문화재에 등재된 ‘전통’의 기준이 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활터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100년이 채 안 된 기간에 일어난 활터의 변화를 보면 가히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활터는 『조선의 궁술』에 없던 악습들로 가득하고, 『조선의 궁술』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적시해놓은 것을 ‘전통’으로 포장하기에 바쁘다. 해방 이후 활쏘기의 전통은 또 한 번 혼란의 늪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이것이 똑같은 일이 판박이처럼 되풀이된다고 앞서 말한 주장의 뜻이다. 활터는 『조선의 궁술』을 잊음으로써 기준을 잃은 100년 전의 무법천지로 되돌아갔다. 이런 혼란을 틈타 국궁계에는 ‘가짜 뉴스’가 넘쳐 사람들을 더더욱 혼란에 빠뜨린다. 이것이 2020년을 맞는 국궁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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