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83] 못다 이룬 사랑, 논산 양촌면 반암리 느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83] 못다 이룬 사랑, 논산 양촌면 반암리 느티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0.08.2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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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슬픈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느티나무를 찾기 위해 논산시 양촌면 반암리로 향했다.

    땅의 절반이 암반지대로 이뤄져 있어 반암리(半岩里)라 이름 붙여진 이 마을에서 느티나무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 동네 사람들의 쉼터인 정자가 있었고, 그 정자를 보위하듯 느티나무 두 그루가 그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1982년 논산시 보호수로 지정된 300년 수령의 이 느티나무를 보며 문득 류시화 시인의 「옹이」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느티나무 자리에는 원래 인수(仁水)라 불리는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은 너무 맑고 깨끗해 들여다보면 얼굴이 거울처럼 환히 비쳤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죄를 지은 사람은 우물에 비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양반집 도령과 농부의 딸이 우물가를 오가다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신분이 달랐기에 두 사람은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다.

    도령은 부모의 뜻에 따라 혼인을 하게 되고, 이 소문을 들은 농부의 딸은 도령을 원망하며 우물에 몸을 던진다.

    도령의 혼인날, 이 소식이 도령의 집에 전해지고 도령의 아버지는 경사스러운 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며 우물을 흙으로 덮어버린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우물이 있던 자리에 어느 날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한 그루지만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느티나무는 두 그루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도 나무지만 나란히 선 나무에도 시선이 간다.

    유난히 옹이가 많고, 나무 기둥에 어린아이가 드나들 만큼 큰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다.

    불현듯 보호수가 농부의 딸이라면 그 곁에 자라난 또 다른 느티나무 한 그루는 양반집 도령의 혼이 스민 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라도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을까?

    가지를 뻗고, 잎을 틔워 손을 맞잡듯 온기를 느끼며 지낼 수 있다면 그게 나무든, 풀이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무 기둥에 난 구멍도, 깊고 큰 옹이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상처는 분명 저렇게 깊고 클 테니까......

    동네 사람들은 예전에는 이 나무 앞에서 거리제를 지냈다 한다.

    봄철에는 동아줄을 매고 그네도 뛰었다. 지금은 거리제도, 그네를 뛰는 이도 사라졌지만, 느티나무 사이 정자는 여전히 마을의 사랑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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