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84] 한삼천 스승, 논산 벌곡 느티나무를 찾아서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84] 한삼천 스승, 논산 벌곡 느티나무를 찾아서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0.08.28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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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사진 채원상 기자, 글 윤현주 작가] 충남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에는 42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다.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조선 중기 대학자 신독재 김집 선생의 일화가 담긴 나무다.

김집 선생이 고향으로 내려와 한삼천리 고운사(孤雲寺)에 정희당이라는 학교를 세우자 인근 유생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학동들이 글을 읽고 있는데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김집 선생은 먼 길을 오가는 학동들이 걱정돼 일찍 돌려보낸다.

그런데 한삼천을 건너던 한 학동이 갑자기 불어난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게 된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하고 고함을 질렀지만 큰 비가 내리고 있어 밖에 나와 있는 이가 없었다.

거친 물살에 헤쳐 나오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버티다 기진맥진해 있을 때 어디선가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야, 정신 차려라, 정신을 잃으면 죽는다. 얘야, 어서 눈을 뜨거라”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뜬 학동의 옆에는 작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학동은 그 나무를 가까스로 붙들고 물속에서 빠져나왔다.

학동은 스승이 그 나무를 보내 준 거라 생각하고 서당 가는 입구에 그 나무를 심고 스승을 모시듯 정성스럽게 가꿨다.학동이 자라서 청년이 되었을 무렵, 새로 부임해 온 원이 양산리를 처음으로 둘러보기 위해 찾아왔을 때였다.

원의 행렬이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멈췄고, 원이 더위에 지쳐 물을 가져오라 명하였다.

그리고 막 물을 마시려는 순간, 나뭇잎 하나가 원의 물 사발에 떨어졌다.

원은 벌컥 화를 내며 나무를 베어 버리겠다고 칼을 뽑아 나무둥치를 힘껏 내려쳤다.

그런데 웬일인지 나무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고 칼만 두 동강이 나버렸다.

재차 칼을 바꾸어 내려쳤지만,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화가 난 원은 군졸들에게 나무를 베라고 호령했다. 이때 한 군졸이 나서 “이 나무는 신독재 선생의 문하생이 심었으며, 유생들이 끔찍이 보살피고 있는 나무입니다”라고 고하자 원은, “과연 신비스러운 나무”라며 그 길로 김집 선생을 찾아가 인사하고, 김집 선생이 경영하는 정희당을 더 잘 지어 주고 보살펴 주었다.

또한 그 청년은 그날 이후 느티나무를 더욱 열심히 보살폈으며, 김집 선생이 돌아가시자 아예 나무 근처로 이사하여 매월 정월 열나흘이면 스승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한삼천 느티나무는 ‘스승 나무’라는 명칭에 걸맞은 위세를 지녔다.

넉넉한 풍채하며, 넓게 뻗은 단단한 가지가 긴 세월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나뭇가지는 하늘로만 뻗는 줄 알았는데 땅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보니 문득 이 또한 김집 선생의 가르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김집 선생은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이보게들, 때때로 반대로 생각하거나 달리 보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네. 그걸 두려워하지 말게. 방향은 언제고 바꿀 수 있는 거니까”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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