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서울 정문영 기자] ‘누구라도 본인이나 친족이 형사소추 또는 기소를 당할 우려가 있는 증언은 거부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148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3일 부인 정경심 교수의 공판에 출석해 이 〈형사소송법 148조〉를 무려 301번이나 앵무새처럼 되풀이 답변해야만 했다. 공판 전 검사가 질문하는 내용이 본인과 부인의 기소 혐의와 직결된 것들이라 직접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는데도,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을 억지로 증언대에 세웠기 때문이다.
이에 조 전 장관은 “법정의 피고인(정 교수)은 제 배우자이며 제 자식 이름도 공소장에 올라가 있다”며 “이 법정은 아니지만, 저는 배우자의 공범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검찰의 신문에 대해 형소법(형사소송법)이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맞섰다.
특히 “저는 형소법 학자로서 진술거부권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다”며 “그러나 이런 권리행사에 편견이 존재한다. 법정에서는 이런 편견이 작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에 재판부는 “질문을 들어야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걸로 판단하는데, 증언거부권이 있는 증인에게 질문할 수 없다는 규정을 찾을 수 없다. 주석서에도 없다”라고 들이댔다.
오전 공판에서 의미 없는 질문과 답변을 100여 차례나 되풀이 한 뒤, 오후 들어 변호인 측이 재판부의 양해를 구하고 나섰다. 변호인 측은 “검찰에서 주로 심문권이라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그건 일본법이다”라며 “법을 들여올 때 우리는 그걸 뺐다 영미 등…”이라고 말했으나, 재판부는 “우리나라법 아니니깐 거기까지만 말하라”며 말을 끊었다. "검찰이 행사하겠다는 일본법에나 있는 심문권을 그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식으로, 변호인 측 주장을 일축해버린 셈이다.
결국 재판부가 조 전 장관의 진술거부권 주장을 평가절하하며 깔아뭉갬으로써 온종일 한심한 말장난이 벌어지고 말았다. 무려 300번 넘게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하도록, 재판부가 어처구니 없게도 소모적인 짓을 사실상 강요한 셈이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의 오기싸움을 벌이듯, 완장찬 판사와 같은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
특히 조 전 장관으로서는 이날 재판이 배우자의 공판이어서 검찰의 질문에 자칫 잘못 답할 경우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 법정 증언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굳이 무리하게 답변할 필요성이 없었다.
형사소송법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조 전 장관이 검찰이 준비한 ‘무더기 유도질문'이 파놓은 함정에 쉽사리 걸려들지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다.
하지만 이날 공판 모두에서 조 전 장관이 “진술거부권의 행사에 편견이 작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일말의 기대는 재판부의 전근대적이고 반개혁적인 인식의 한계로 일거에 무너지고 말았다. 우려했던 편견이 그대로 작동한 셈이다. 사실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의 증언거부권 행사에 관한 사유서를 '사전검열'하는 권위적인 행태마저 보여 논란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똑같은 대답이 나올 줄 뻔히 알면서 300번씩이나 반복시킨 검찰이나, 이를 사실상 강요한 재판부나 모두 적폐의 대상임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이곳이 일본의 사법부인가, 대한민국의 사법부인가? '얼치기 사법부'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