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팡세 2020》 내가 파리 거리에서 만난 거리예술
《파리팡세 2020》 내가 파리 거리에서 만난 거리예술
  • 정문영 기자
  • 승인 2020.09.13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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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2020》 내가 파리 거리에서 만난 거리예술
                       (Street art incontournables à Paris)

작품: Café Des Acteurs(배우들의 카페), 작가: 패트릭 코머시(Patrick Commecy)/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작품: Café Des Acteurs(배우들의 카페), 작가: 패트릭 코머시(Patrick Commecy)/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새가 날아드는 소나무를 그린 천재화가 솔거는 신라시대의 화가였다. 나무를 너무 사실적으로 잘 그려서 새가 나무에 앉으려고 날아가다가 벽에 부딪쳐 죽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진짜 같이 그린 그림을 미술용어로 '트롱프뢰유(Trompe-l’oeil)'라고 하는데 알려진대로, 프랑스어인 이 말은 직역하면 ‘눈을 속인다’는 뜻이다.

20세기 초 입체파의 출현과 동시대에 '쉬르레알리슴(Surrealism)'이라는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다다이즘의 예술 형식 파괴 운동을 수정, 발전시키고 비합리적인 잠재의식과 꿈의 세계를 탐구하여 표현의 혁신을 꾀한 예술운동으로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장 콕토,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루이스 부뉴엘 등이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을 그렸던 화가들이다.

이들은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기이한 초현실적 내용의 그림을 그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오 헨리가 1905년에 써서 유명해진 소설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에서 잎은 사실이 아닌 그림이었다.

젊은 화가 존시가 병에 지친 나머지 창 밖의 담쟁이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으리라는 망상에 사로잡히자, 이웃의 실패한 노(老)화가 베어먼이 그녀를 살리기 위해 밤새 비바람을 맞으며 벽에 그려 놓고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걸작이었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위에 언급한 트롱프뢰유 기법인 '눈속임 그림'이 꽤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마지막 잎새’의 배경인 20세기 초에는 이미 구태의연한 장르로 취급 받고 있었다.

트롱프뢰유 기법은 정밀한 묘사와 명암법 등으로 평면의 그림이 입체의 실물로 보이도록 착시를 일으키는 모든 회화적 테크닉을 말한다.

이 진짜 같은 가짜 그림은 교묘한 구성과 정밀한 묘사를 필요로 하지만, 수준 높은 예술로 평가 받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과거 서구 회화에는 역사·신화·종교적 주제를 다룬 작품이 가장 높은 평을 받았고, 트롱프뢰유 기법의 정물화는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했으며, 트롱프뢰유 기법의 작품들은 경박한 손재주로 여겨졌던 데다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진짜 같은 그림’은 더 진짜 같은 사진에 밀려 존재 가치를 점차 잃게 됐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들어서 트롱프뢰유 그림들은 사진과 다르게 "사물의 속성을 관조하는 예술"로 재평가 받기도 했다.

나는 파리 거리를 거닐면서 고층빌딩 창이 없는 벽에 이같은 트롱프뢰유 기법의 초대형 그래피티를 종종 만난다.

그 중에 '드깅겅(Rue Deguingand)'가(街)에 있는 한 건물 벽면에 'Café des acteurs(배우들의 카페)'라는 초대형 벽화(Graffiti)를 보면 당대를 살다 갔거나 현재 활동 중인 유명 배우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넣어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잡아 맨다.

이 그래피티는 패트릭 코머시(Patrick Commecy, directeur artistique et gérant de A.Fresco)가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린 초대형 그래피티이다.

대형 그래피티 작품들은 삭막한 도심의 빌딩 숲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미소와 해학, 그리고 인간다운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고 있다.

도시 거리의 공공미술은 이처럼 인간의 삶에 활기와 가치를 불어넣어 주고, 살만한 도시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공공재로서의 거리미술이어야만 한다.

영혼이 없는 공공미술 작품들이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작가의 사적 넋두리, 또는 자기 궤변적 이미지를 대형화시켜 거리에 설치한 작품들은 예술작품이라기보다 억지로 거리의 공간을 채워 밀어넣은 "시각 장애물 덩어리(Visual Obstacle Mass)"에 불과한 것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택영 / 프랑스 파리 거주 화가, 전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www.takyoungj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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