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우의 환경이야기] 상생의 실험대-원흥이생태공원
    [염우의 환경이야기] 상생의 실험대-원흥이생태공원
    염 우 (사)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청주새활용시민센터 관장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0.09.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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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흥이방죽에 생태탐방을 온 아이들. 사진=원흥이생명평화회의/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원흥이방죽에 생태탐방을 온 아이들. 사진=원흥이생명평화회의/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인류가 직면한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는 이제 전문가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 실천하고 이겨내야 할 문제다. 이에 굿모닝충청은 충북 환경운동의 역사로 불리는 풀꿈환경재단 염우 상임이사로부터 환경의 중요성과 더불어 우리지역에서 진행돼온 환경운동의 현실과 앞으로 실천해야할 과제 등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염우 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며칠 전 ‘두꺼비친구들’ 대표자 세 분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두꺼비친구들은 지난 11년 동안 청주 양서류생태공원을 위탁 운영하며 마을공동체 활동을 펼쳐온 우리 고장의 환경단체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청주시의회에서 생태공원 민간위탁동의안이 부결되었고, 현재는 양서류생태공원을 청주시가 직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2004년에 타결된 두꺼비 생태 보전 운동의 후속 활동과 생태공원의 위탁운영을 위해 창립했다고 볼 수 있는데 중심사업이 중단됐으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개책 마련과 새로운 비전 수립을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중이라 한다. 이제 와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한데 섞여 마음이 아렸다. 왜 원흥이 마을을 상생의 실험대라고 표현했는지 회상해 보고자 한다.
       
    봄기운이 확연히 느껴지는 3월의 어느 날, 수백 마리의 두꺼비들이 방죽에 모여든다. 짝짓기를 위해서다. 산란이 끝나면 수초 사이에 실타래 모양의 두꺼비알이 주렁주렁 열린다. 알에서 부화한 올챙이들은 작지만, 유난히 검다. 올챙이들은 집단으로 유영하며 생활한다. ‘단결만이 살길이다’ 이것이 방죽의 포식자인 가물치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이다.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 5월, 뒷다리와 앞다리를 갖춘 수십만 마리의 새끼두꺼비들이 일제히 방죽 밖으로 나와 삶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성체로 자라난 두꺼비들은 어미들이 그랬듯이 언젠가 방죽으로 돌아와 짝짓기하게 될 것이다. 2003년 원흥이방죽의 모습이다. 자연관찰을 하던 엄마들의 눈에 감지되었고, 방송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도시 한 편에서 펼쳐지고 있는 신비한 생명현상은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토지공사가 이미 이곳에 33만2천 평 규모의 산남3지구 택지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개발이 완료되면 두꺼비 산란지인 원흥이방죽은 인공호수로 개조되고, 주변으로 지방법원과 검찰청사,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 주요 서식지인 구룡산과 단절되어 버린다. 원흥이방죽의 두꺼비를 살려주세요. 생태교육연구소‘터‘와 산남동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생태탐방, 현수막 이어 달기 등 생명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노력의 결과가 반영되어 중앙도시계획위원회가 20m(실제로는 2~3m) 폭의 생태통로를 조성하는 조정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두꺼비서식지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조치였고, 시민대책위원회의 다수는 조정안을 수용할 수 없었다. 

    내가 원흥이방죽으로 전격 소환된 건 2004년 초다. 그때도 여러명의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실행위원장을 맡아 대책위원회를 정비하고 더 큰 싸움을 끌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충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을 맡고 있던 나는 충청권의 여러 기관단체와 함께 대청호보전운동본부를 결성하고 금강 하천감시센터를 구축하느라 분주한 상황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단체는 무분별한 먹는샘물 개발, 문장대용화온천 개발, 무심천 하장구조물 증설, 충청북도 밀레니엄타운 조성 등 굵직한 현안들에 대응해 왔고, 꽤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 오고 있었다. 그랬기에, 바빠도 생명을 지키자는 운동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론은 다소 냉랭한 편이었고, 심지어 왜 끝난 판에 총대를 메냐고 걱정하며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2004년 2월, 대책위원회 실행위원장을 맡고 첫 번째로 한 일은 ‘100인 시민행동단’을 구성한 것이었다. 이미 실시계획도 승인되어 착공이 임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시민행동단이 발족한 다음 날 새벽, 보라는 듯이 벌목공사를 강행하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요란한 기계톱 소리에 위축된 마음을 숨겨가며 잘려 나가는 나무들을 끌어안고 지키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매일 새벽 6시, 힘겨운 현장 활동이 시작되었다. 주력 부대는 아이들의 엄마였다. 30~40명의 엄마들이 나무 한 그루씩 안고 가까스로 버티면 그날의 공사는 중단되는 식이었다. 낮에는 탐방축제, 삼보일배, 단식농성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000명의 시민들이 원흥이방죽을 껴안기도 했고, 청주시민 60만배를 이어가기도 하였다. 더 많은 동력을 모으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원흥이생명평화회의로 확대 개편하였다. 청주시민들의 경험과 역량을 시험하기라도 하듯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싸움을 이어나갔다. 치열했던 대응 과정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타결방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절박했던 고민과 노력해 대해 좀 더 언급해 보겠다.  
     
    고육지책이란 제 살을 도려내듯 피해를 무릅쓰며 택하는 책략을 말한다. 솔로몬왕 앞에서 제 아이가 아니라고 말해야 했던 진짜 엄마의 간절한 심정과 같은 것이다. 두꺼비는 법적 보호종도 아니었고, 택지개발사업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된 게임, 전부를 잃고 싶지 않다면 부분이라도 얻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싸움 한 복판에서 먼저 대안을 제시하거나 양보하는 모양을 취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차한 애걸보다 거룩한 패배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당시 정책자문단장님이 현실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돌 하나 더 놓는다는 생각을 해야한다’며 실행위원장인 나를 설득했고, 나는 마음속 투쟁을 겪은 뒤 동료 활동가들을 하나하나 설득해야 했다. 사람 간의 타협을 위해 생명을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4년 원흥이생명평화회의가 발족됐다. 사진=원흥이생명평화회의/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2004년 5월 원흥이생명평화회의가 발족됐다. 사진=원흥이생명평화회의/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원흥이생명평화회의 발족과 동시에 ‘상생의 대안’이라고 명명한 대합의 방안을 제시했다. 전체 7~8만 평의 두꺼비서식지 중 1~2만 평 정도를 보존하자는 것이다. 대신 원흥이방죽과 구룡산을 잇는 부채꼴 모양의 녹지를 조성하여 구룡산 일대 40만 평가량의 생태공원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흥이방죽 바로 뒤쪽에 위치한 청주지방법원·검찰청 예정 부지의 위치와 모양을 조정해야 했다. 택지 분양이 일부 진행된 상황에서 토지이용 계획을 변경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긍정적 여론을 형성시켰다. 환경단체뿐 아니라 학계전문가, 종교계와 문화예술계 등 지역사회 많은 인사들이 원흥이생명평화회의에 합류하였다.  

    ‘상생의 대안’이 무산되고 나서 우리는 ‘아름다운 양보’라고 불리는 두 번째 대안을 제시했다. 법원·검찰청 예정 부지와 아파트단지 사이로 우회하여 부채꼴 모양의 녹지공간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법원·검찰청 예정 부지 위치는 그대로 두고 모서리 일부만 녹지공간으로 편입하면 된다. 역시 반영되지 않았지만, 여론은 확실히 시민들의 편으로 돌아섰다. 원흥이생명평화회의는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대안을 제안했다. ‘고뇌의 결단’이라 명명한 이 대안은 원흥이방죽의 서측 아파트 예정 부지에 좁은 부채꼴 모양의 녹지공간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대신 아파트단지 와 다른 위치의 녹지를 통째로 대토하는 방안이었다. 많은 동조와 공감을 일으켰고 여론은 완전히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택지개발사업 승인권자인 충청북도와 환경영향평가 협의권자인 금강유역환경청도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고 나섰다. 

    2004년 11월 마침내, 1만여 평의 두꺼비서식지 보전을 골자로 하는 최종 타결방안이 도출되었다. 11개 항목으로 구성된 상생 합의문에는 두꺼비생태 보전을 위한 후속 활동을 위해 생태문화관을 건립하는 것까지 포함하였다. 토지이용계획도를 바꾼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었지만, 타결 이후 패자는 없었고 모두가 승자였다. 토지공사 충북지사는 개발계획수립 전 단계에서 의견수렴을 거치기로 약속했고, 주택공사 충북지사는 개신성화2지구 택지개발사업 중 자발적으로 맹꽁이서식지 보전대책을 마련하였다. 청주시는 곧바로 생태현황도구축사업을 추진하였다. 2005, 2006년 원흥이 생태공원이 조성되고, 2007년부터 산남동 주민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원흥이생명평화회의는 생태공원 시민기획단으로 전환했고 이후에는 두꺼비친구들로 대체되었다. 두꺼비친구들은 2009년 원흥이생태공원과 두꺼비생태문화관을 위탁 운영하기 시작했고, 이후 두꺼비모니터링, 두꺼비축제, 주민협의체 구성, 마을신문 운영 등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상생의 실험을 이어왔다. 

    비상국면에는 공동으로 맞서지만 후속 활동을 위해서는 전담기구를 꾸릴 수밖에 없다. 두꺼비친구들이 만들어지고 나서 많은 사람과 단체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10개월 만에 제 자리로 돌아온 청주환경운동연합과 충북환경운동연합은 무너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2년 동안 수습과정을 거쳐 2007년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으로 통합하여 다시 창립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원흥이마을에 대한 나름의 돌봄 역할은 계속되었다. 2010년 무렵 생태공원 직영 논란이 불거지자 청주시 공원녹지 정책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며 맞섰다. 맹꽁이생태문화관 위탁운영 권유를 받고는 기꺼이 양서류 분야를 통합 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두꺼비친구들로 공을 넘겼다. 최근 공원일몰제 갈등이 심화되자 거버넌스 구축 방안을 청주시 정책공약사업에 반영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이런 것이 산파의 역할이려니 생각하면서 말이다.  

    상생의 실험대 원흥이마을은 2004년에도 위기의 상황, 2020년에도 위기의 상황이다. 상생의 실험에서는 반대 견해에 대한 비판과 다른 견해에 대한 원망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004년에 가지고 있었으나 2020년에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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