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최고나 기자] 8.15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 19의 폭발적인 확산에도 불구하고 일부 단체에서 개천절 및 한글날 집회 강행을 예고하자 광화문 일대에 경찰들이 차벽을 설치해 통행을 차단했다.
해당 차벽은 지난 광복절 집회에서 법원의 판단이 불허하였는데도 수많은 인파가 거리로 쏟아졌던 점을 고려해 설치됐다.
이는 3일(개천절)과 9일(한글날)에만 예외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경찰은 이에 대해 “세종로 일대는 차벽으로 차단했지만 개천절 때와는 달리 광화문 광장까지 이중으로 차벽으로 둘러싸진 않았다”며 “당분간 이러한 상항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차벽을 두고 ‘경찰의 과잉대응’이라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지난 10일 <외신기자 “이런 건 평양서도 못본 장면… 말 그대로 미쳤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차벽을 ‘재인 산성’이라 일컬으며 한 외신 기자의 말을 인용해 “지금 서울은 완전히 우스꽝스럽다(ridiculous)”고 했다. “미쳤다(insane)”라며 해당 조치를 폄하하고 나섰다.
심지어 ‘군사 정권 시절’을 들먹이며 당시 대학가 불심검문이 그대로 재현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난 정권에서 조선일보는 이러한 차벽에 대해 어떠한 보도 태도를 보였을까.
2017년 10월 20일, 당시 조선일보는 ‘백남기 농민 사건’과 관련해 ‘폭력 시위 진압은 경찰 의무’ 라는 내용의 오피니언을 통해 “사망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폭력 시위가 없었다면 그런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경찰 진압을 두둔한 바 있다.
2015년 11월 24일에는 <폭력 시위 한번, 부근 식당 피해 48억!>이라는 기사를 통해 광화문 시위를 통해 서울 도심이 아수라장으로 변했으며 사회, 경제적 손실이 무려 48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조선일보는 광화문 시위에 대해 늘 폭력 시위로 일컬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것이 여러 건의 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시위를 막으려는 경찰에 대해 비난하고 ‘재인 산성’이라는 단어 선택을 통해 정부를 폄하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는 시위에 대한 명백한 이중 잣대이자, 일종의 ‘선택적 정의’인 셈이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선택적 정의는 지난 채널 A기자와 검찰의 검언유착 사건에 대한 보도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 바 있다.
조선일보는 해당 사건의 발생 초기에도 기자와 검사 사이의 유착 여부에 대한 보도보다는 해당 의혹을 제보한 지 씨에 대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4월 3일, <"친여 브로커 '윤석열 부숴봅시다'…9일뒤 MBC '검‧언 유착' 보도">
4월 3일, <사기전과 MBC 제보자, 뉴스타파·김어준 방송서도 활약>
5월 5일 <MBC가 보도했던 ‘검·언 유착 의혹’ 제보자 2억 횡령혐의로 출금>
등 제보자와 집중된 기사를 쏟아내면서 제보자를 ‘사기 전과자’, ‘현 정권 골수 지지자’ 등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 추미애 장관 아들 의혹을 제기한 황희 의원에 대해 비난을 가했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 9월 황희 국회의원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 씨의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당직 사병의 실명을 공개하자 조선일보는 <[기자수첩] 秋아들 당직사병 신상털이…공익신고자 보호 어디갔나>, <[사설] 추미애 지키려고 제보자를 범법자 낙인찍어 겁박하다니> 등의 기사 제목을 통해 제보자 보호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6개월도 채 안된 시기동안 보도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7월, 조선일보는 <나라 무너뜨리는 ‘선택적 정의’> 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은 적이 있다.
해당 내용에는 “선택적 정의는 결코 정의가 아니다. 정의를 자기편에만 유리하게 선택적으로 적용한다면 그건 정의이기는커녕 불의이자 중대 범죄다. 이게 바로 '정의가 강자의 이익'으로 변질되는 상황이다.”라고 서술한 바 있다.
국내 최고의 구독자 수를 보유한 조선일보, 조선일보야 말로 보도 태도에 있어 ‘정의와 강자의 이익’이라는 선택 중, ‘정의’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지, 혹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선택적으로 ‘정의’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