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최고나 기자] [쎈언니] 안녕하세요. 중요한 뉴스와 중요한 발언들만 픽!해서 들려드리는 굿모닝픽 뉴스 읽어주는 쎈 언니입니다.
지난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에 다시 한번 등장하게 된 것인데요. 개천절과 비교했을 때, 100여대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차벽은 지난 8.15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 19가 폭발적인 확산됐음에도 불구, 일부 단체에서 집회 강행을 예고하자 경찰이 차벽을 설치해 통행을 차단한 것인데요.
특히 지난 집회에서 법원이 판단을 불허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집회를 강행한 단체들이 있어 이러한 점을 고려해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의 설명에 따르면 한글날 이후 당분간은 차벽 설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차벽을 두고 ‘경찰의 과잉대응’이다, ‘재인 산성’이다라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외신기자 “이런 건 평양서도 못본 장면… 말 그대로 미쳤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한 외신 기자의 말을 인용해 “지금 서울은 완전히 우스꽝스럽다(ridiculous)”고 했다. “미쳤다(insane)”라며 심지어 ‘군사 정권 시절’을 들먹이며 당시 대학가 불심검문이 그대로 재현됐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정권에서 조선일보는 이러한 차벽에 대해 어떠한 보도 태도를 보였을까요?
2017년 10월 20일, 당시 조선일보는 ‘백남기 농민 사건’과 관련해 ‘폭력 시위 진압은 경찰 의무’ 라는 내용의 오피니언을 통해 “사망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폭력 시위가 없었다면 그런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경찰 진압을 두둔한 바 있습니다.
2015년 11월 24일에는 <폭력 시위 한번, 부근 식당 피해 48억!>이라는 기사를 통해 광화문 시위를 통해 서울 도심이 아수라장으로 변했으며 사회, 경제적 손실이 무려 48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조선일보는 광화문 시위에 대해 ‘폭력 시위’, ‘불법 시위’로 일컬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시위를 막으려는 경찰에 대해 비난하고 나서는 것일까요? 이는 시위에 대한 명백한 이중 잣대이자, 일종의 ‘선택적 정의’가 아니냐하는 지적입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선택적 정의는 지난 채널 A기자와 검찰의 검언유착 사건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해당 사건의 발생 초기에도 기자와 검사 사이의 유착 여부 보다는 제보자 지 씨에 대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4월 3일, <"친여 브로커 '윤석열 부숴봅시다'…9일뒤 MBC '검‧언 유착' 보도">
4월 3일, <사기전과 MBC 제보자, 뉴스타파·김어준 방송서도 활약>
5월 5일 <MBC가 보도했던 ‘검·언 유착 의혹’ 제보자 2억 횡령혐의로 출금>
등 제보자와 집중된 기사를 쏟아내면서 제보자를 ‘사기 전과자’, ‘현 정권 골수 지지자’ 등으로 폄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프레임 전쟁을 시작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행태는 추미애 장관 아들 의혹을 제기한 황희 의원에 대해 비난을 가했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조선일보는 당시 의혹을 제기했던 현 씨의 실명을 공개한 황희 의원에게는 <[기자수첩] 秋아들 당직사병 신상털이…공익신고자 보호 어디갔나>,
<[사설] 추미애 지키려고 제보자를 범법자 낙인찍어 겁박하다니> 라며 제보자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검언유착 때와는 전혀 다른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과연 조선일보가 말하는 공익 제보자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선택적 정의는 결코 정의가 아니다. 정의를 자기편에만 유리하게 선택적으로 적용한다면 그건 정의이기는커녕 불의이자 중대 범죄다. 이게 바로 '정의가 강자의 이익'으로 변질되는 상황이다.”
해당 내용은 조선일보가 지난 7월 보도한 사설, <나라 무너뜨리는 ‘선택적 정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조선일보는 자신이 먼저 ‘나라를 무너뜨리는 선택적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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