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야 김좌진 장군, 내포 자연 환경에 영향"
    "백야 김좌진 장군, 내포 자연 환경에 영향"
    충남연구원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 학술대회'…손세제 박사 주장
    • 김갑수 기자
    • 승인 2020.10.18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야(白冶)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홍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이 내포(內浦)의 자연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료사진: 홍성군 홈페이지/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백야(白冶)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홍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이 내포(內浦)의 자연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료사진: 홍성군 홈페이지/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백야(白冶)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홍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이 내포(內浦)의 자연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암김구선생기념사업회 손세제 박사는 지난 16일 서울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열린 충남연구원(원장 윤황) 주최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 기념 ‘재중동포사회의 변천과 현재, 미래 전망’ 학술대회에서 ‘백야 김좌진의 독립사상과 충청인의 혼’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서 박사는 먼저 “일반적으로 충청의 각 지자체는 충청의 정신을 ‘충효정신’, ‘절의정신’, ‘선비정신’, ‘예의정신’, ‘개척정신’이라고 하지만, 충청의 자연·역사·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심리 속으로 들어가 보면, 결코 이와 같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며 “이런 것들은 충청의 정신도 아닐뿐더러 충청인들이 생각해 오던 이상적 자아상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만일 이것이 정말로 충청의 정신이라면 미륵신앙의 보편적 유행과 이지함이나 서기·조익·홍가신 등의 존재, 성호학의 대유행, 서학의 전래와 융성, 천주교 전파, 동학농민전쟁, 사회주의, 아나키즘운동, 노동운동 등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서 박사는 “충청의 정신은 다양한 것들과 공존하고 적극적으로 용인하며, 이들과의 조화를 통해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과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홍주지역에서 나고 자란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여타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결기가 있다”고도 했다.

    서 박사는 또 “백야가 계몽운동·국권회복운동·아나키즘 운동에 종사하면서도 무장투쟁을 고집했던 것도 당시의 시대적 정세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며 “홍주지역은 국토의 간선도로에서 비켜 서 있었기 때문에 자연발생적 사회에서 주로 나타나는 도덕관(天下一家論)이 사회 전체에 보편적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이러한 정서에서 나고 자난 백야가 무장투쟁의 길로 들어선 데는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특수한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서 박사는 “백야의 정신은 사람다움(仁義)을 희구했던 홍주지역의 정서(春秋大義)가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그것의 실현을 방해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항전으로 구현된 것”이라며 “백야의 독립사상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 박사는 특히 “홍주지역에 이런 인물들이 많았던 것은 이른바 ‘내포’라는 자연 환경적 요인이 큰 작용을 했다”며 홍성과 보령, 서산, 태안, 예산, 아산, 당진 등 이른바 내포문화권의 지형적·문화적 특징을 설명했다. (자료사진: 가야산 원효봉에서 바라본 내포지역 전경)
    서 박사는 특히 “홍주지역에 이런 인물들이 많았던 것은 이른바 ‘내포’라는 자연 환경적 요인이 큰 작용을 했다”며 홍성과 보령, 서산, 태안, 예산, 아산, 당진 등 이른바 내포문화권의 지형적·문화적 특징을 설명했다. (자료사진: 가야산 원효봉에서 바라본 내포지역 전경)
    충남연구원 주최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 기념 ‘재중동포사회의 변천과 현재, 미래 전망’ 학술대회가 지난 16일 서울 김희수아트센터에서 개최됐다. (충남연구원 제공)
    충남연구원 주최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 기념 ‘재중동포사회의 변천과 현재, 미래 전망’ 학술대회가 지난 16일 서울 김희수아트센터에서 개최됐다. (충남연구원 제공)

    서 박사는 특히 “홍주지역에 이런 인물들이 많았던 것은 이른바 ‘내포’라는 자연 환경적 요인이 큰 작용을 했다”며 홍성과 보령, 서산, 태안, 예산, 아산, 당진 등 이른바 내포문화권의 지형적·문화적 특징을 설명했다.

    “내포지역은 중국의 산둥반도와 최단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순풍을 타면 며칠 안에 중국을 왕래할 수 있었다”며 “이런 환경은 자연스럽게 중국과의 교역을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불교와 성리학,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 문물이 내포지역을 통해 국내에 전해졌고, 관의 통제와 지도사상의 지배에서도 비교적 빗겨나 있어 “내포의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와 문명의 수용에 소극적이지 않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다양한 것을 유기적으로 조합해 새롭게 해석·창출·활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 서 박사의 설명이다.

    서 박사는 “이것이 이 지역에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조정과 중앙 권세가들은 내포지역 사람들의 심성이 ‘간사하고 사납고 음흉하다’고 했지만, 그것은 지배자들이 볼 때 그런 것이고, 민중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매사에 조심스러운 심사숙고형 인물이 많았으며, 일단 방향이 결정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이루는데 진력한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서 박사는 “홍주에는 매우 다양한 사상이 존재했지만 사람다움, 사람의 도리를 추구하는 정신이 있었다. 다름을 인정하는 인간다움, 인간다운 삶을 중시하는 홍주의 정신적 가치를 더욱 중시해야 한다”며 “백야의 독립정신을 배양한 충청의 정신을 함양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