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좌진과 박영희 만남에는 홍주의병이 있었다"
    "김좌진과 박영희 만남에는 홍주의병이 있었다"
    충남연구원 봉오동·청산리전투 학술대회서 충남대 이성우 박사 주장
    • 김갑수 기자
    • 승인 2020.10.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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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전으로 기록된 청산리대첩(1920년 10월 21일~26)의 현장에는 김좌진 장군 뿐만 여러 명의 충남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홍성 출신 김좌진 장군과 부여 출신 박영희의 만남에는 홍주의병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왼쪽부터 김좌진 장군과 박영희/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전으로 기록된 청산리대첩(1920년 10월 21일~26)의 현장에는 김좌진 장군 뿐만 여러 명의 충남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홍성 출신 김좌진 장군과 부여 출신 박영희의 만남에는 홍주의병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왼쪽부터 김좌진 장군과 박영희/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전으로 기록된 청산리대첩(1920년 10월 21일~26)의 현장에는 김좌진 장군 뿐만 여러 명의 충남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홍성 출신 김좌진 장군과 부여 출신 박영희의 만남에는 홍주의병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말 충남지역 국권회복운동 정신이 청산리대첩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충남대학교 이성우 박사는 지난 16일 서울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열린 충남연구원(원장 윤황) 주최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 기념 ‘재중동포사회의 변천과 현재, 미래 전망’ 학술대회에서 ‘박영희의 독립운동과 청산리대첩’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청산리대첩에서 충남인들은 눈부신 활약을 벌였다. 그 주인공은 홍성 출신 김좌진 장군을 비롯해 김형동(공주), 박영희(부여), 이장녕(천안), 이민화(아산) 등이다.

    이 박사는 이들 중 박영희에 집중했는데, 그는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며 대한군정서와 대한독립군정서, 대한독립군단, 신민부 등 1920년대 만주지역에 설립된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에 참여했다.

    특히 대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 장군의 부관으로 청산리대첩에 참여했고. 그와 함께 1920년대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 박사는 “그의 만주항일투쟁이 주목되는 이유는 한국독립운동사의 연속성과 계승성, 한말 충남지역 국권회복운동과 만주항일무장투쟁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며 “박영희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독립운동의 길로 나서게 한 이는 이세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세영은 1896년과 1906년 김복한·민종식 등 충남 내포지역 유림들이 중심이 돼 봉기한 홍주의병의 의병장이었다. 이세영은 1908년 8월 부여 은산지역 문중들의 도움을 받아 신명의숙(信明義塾)을 설립했다.

    박영희의 아버지 박동익은 신명의숙의 발기인으로 참여해 교사를 역임했다. 박영희는 신명의숙에서 수학했고, 자연스럽게 이세영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박영희는 스승 이세영의 영향으로 망명했고, 이세영이 교장으로 있었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대한군정서군을 이끌고 청산리전투를 승전으로 이끌었다는 게 이 박사의 설명이다.

    이처럼 박영희의 만주항일투쟁의 배경에는 홍주의병이 있었다. 박영희는 한말 홍주의병의 정신을 1920년대 만주항일투쟁으로 계승한 인물인 것이다

    이후 박영희는 사령부 부관을 맡으면서 김좌진과 인연을 맺게 됐는데, 홍주의병과 부여 출신이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김좌진은 홍성군 갈산면 출신으로, 같은 집안인 안동김씨 수북공파 대종손인 김복한이 홍주의병 총수였다,

    이후 박영희는 사령부 부관을 맡으면서 김좌진과 인연을 맺게 됐는데, 홍주의병과 부여 출신이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김좌진은 홍성군 갈산면 출신으로, 안동김씨 수북공파 대종손인 김복한이 홍주의병 총수였다.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청산리대첩 승전 기념사진)
    이후 박영희는 사령부 부관을 맡으면서 김좌진과 인연을 맺게 됐는데, 홍주의병과 부여 출신이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김좌진은 홍성군 갈산면 출신으로, 안동김씨 수북공파 대종손인 김복한이 홍주의병 총수였다.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청산리대첩 승전 기념사진)

    김좌진은 홍주의병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김복한으로부터 민족정신을 배웠고, 결과적으로 박영희와 마찬가지로 홍주의병이라는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 박사는 “청산리대첩은 만주항일무장투쟁의 최대 승전이었으며, 전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전투였다. 김좌진‧홍범도라는 영웅이 탄생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다”며 “박영희도 그런 인물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박영희와 김좌진의 만남에는 홍주의병이 있었던 것”이라며 “박영희는 청산리대첩 후 대한통의부 부관, 대한독립군정서의 행정부장, 신민부의 보안사령관 등을 역임하며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그의 곁에는 김좌진이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계속해서 이 박사는 “박영희는 그러나 1927년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금을 모집하던 중 체포돼 1930년경 순국했다고 한다. 그의 순국시기와 순국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그의 유해는 아직도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한편 정부는 독립군 양성과 무장투쟁에 헌신한 그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박영희를 2020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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