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선생 뜻과 정신, 후세에도 이어지길"
"박영희 선생 뜻과 정신, 후세에도 이어지길"
김좌진 장군 도와 청산리 대첩 승리 이끌어…종손 박병호 씨 독립기념관 방문
  • 김갑수 기자
  • 승인 2020.10.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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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1889~1930)을 도와 항일 무장투쟁 역사에 길이 빛나는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충남 부여 출신 박영희 선생(1896~1930)의 종손자가 28일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다. (독립기념관 제공: 박영희 선생 종손자 박병호 씨/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김좌진 장군(1889~1930)을 도와 항일 무장투쟁 역사에 길이 빛나는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충남 부여 출신 박영희 선생(1896~1930)의 종손자가 28일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다. (독립기념관 제공: 박영희 선생 종손자 박병호 씨/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김좌진 장군(1889~1930)을 도와 항일 무장투쟁 역사에 길이 빛나는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충남 부여 출신 박영희 선생(1896~1930)의 종손자가 28일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다.

부여군 은산면 소재 박영희 선생의 생가를 지키고 있는 종손자 박병호 씨(70)는 지역 독립운동사에 밝은 김삼현 씨의 도움으로 이날 정오 경 독립기념관을 찾아 주요 전시물을 관람했다.

앞서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10월의 독립운동가’로 박영희 선생을 선정,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관련 자료를 전시 중이다.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박영희 선생은 고향에서 신명의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휘문의숙을 다녔다. 신문의숙 은사이자 훗날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역임한 이세영과 함께 1913년 만주로 망명했다.

이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 군사지식을 습득한 뒤 졸업 후에는 교관으로 활동했다. 특히 1020년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 장군의 부관 겸 사관연성소 학도단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전쟁을 이끌 정예군 양성에 매진했다.

박영희 선생의 지도 아래 1920년 9월 사관연성소에서 배출된 약 300여 명의 졸업생들은 교성대(敎成隊)로 편입돼 북로군정서의 주력군으로 청산리전투에서 맹활약했다.

박영희 선생도 부관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전했으며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데 기했다.

이후 1923년 북만주 소수분(小綏芬) 지역에서 학술강습소를 열어 독립군을 양성했으며, 상하이에서 발행한 잡지 ‘배달공론’에 ‘군사학강의’를 연재하며 군사지식 보급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1925년 북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한 신민부가 조직되자 보안사령관을 맡아 군사부 위원장인 김좌진을 보좌했으며, 친일인사 처단과 국내 진입작전을 위한 특수부대 파견에도 가담하는 등 항일 운동에 앞장서 왔다.

박영희 선생은 러시아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이다 1930년 순국했다.

독립기념관 학예연구사의 전시물 안내에 이어 이준식 관장의 환대까지 받았다는 박병호 씨는 “박영희 선생께서 나라를 위해 굳세게 품으셨던 그 뜻과 정신이 후세에도 끝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 제공)
독립기념관 학예연구사의 전시물 안내에 이어 이준식 관장의 환대까지 받았다는 박병호 씨는 “박영희 선생께서 나라를 위해 굳세게 품으셨던 그 뜻과 정신이 후세에도 끝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 제공)

특히 홍성 출신 김좌진 장군과 부여가 고향인 박영희 선생의 만남에는 홍주의병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다는 주장(충남대 이성우 박사)이 최근 제기 돼 또 다른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김좌진 장군의 집안인 안동김씨 수북공파 대종손 김복한이 홍주의병 총수였고, 박영희 선생의 스승인 이세영 역시 1896년과 1906년 김복한·민종식 등 충남 내포지역 유림들이 중심이 돼 봉기한 홍주의병의 의병장이었다는 것이다.

박병호 씨는 이날 오후 <굿모닝충청>과의 통화에서 “조부께서는 3형제 중 장남으로, 박영희 선생은 저의 둘째 작은할아버지”라며 “전시물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독립기념관이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고 이렇게 특별전을 열어 주신 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박영희 선생은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잘하고 목소리가 크며, 요즘으로 말하면 태권도 등 운동을 잘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일찍부터 고향을 떠나 독립운동에 투신하셨고, 1930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군자금을 모으다 암살당하신 만큼 남아 있는 유품이 거의 없다. 심지어 유해조차 못 찾고 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독립기념관 학예연구사의 전시물 안내에 이어 이준식 관장의 환대까지 받았다는 박 씨는 “박영희 선생께서 나라를 위해 굳세게 품으셨던 그 뜻과 정신이 후세에도 끝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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