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사진 채원상 기자, 글 윤현주 작가] 보호수를 찾아가다 보면 간혹 ‘낯선 모습’의 노거수를 마주할 때가 있다.
소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팽나무 등 이미 익숙한 나무들인데 그 모양새가 일반적이지 않다.
청양군 정산면 백곡리 느티나무도 그 중 하나다.
1972년 보호수로 지정된 631년 수령의 이 느티나무는 가지가 하늘을 향해 쭉 뻗은 게 아니라 옆으로 뻗어 있어 물소의 뿔을 떠올리게 만든다.
평생 호미와 낫을 놓지 못했던 할머니의 굽고 굵은 손가락마디 같기도 하다.
사람이 그러하듯 나무 또한 세월을 고스란히 품는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꼼짝달싹할 수 없는 나무의 숙명을 받든 채 생존을 위해서 견디고,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무의 형태는 나무가 가진 본성보다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몹시 심한 지역의 나무들이 위로 올곧게 가지를 뻗지 못하고 굽어 자라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나 나무의 이러한 견딤을 ‘순응’이라 단정 짓는 건 이르다.
나무는 그저 환경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가지가 옆으로 자라고, 상처가 나더라도 살아남아야 본성과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걸 나무는 알고 있는 듯하다.
물론 백곡리 느티나무의 지난 630년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낯설기 그지없는 느티나무의 형태에 나무가 견뎌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을의 수호신이 된 백곡리 느티나무와 백실마을 사람들의 삶은 참 많이 닮았다.
백제 부흥운동, 임진왜란 당시 의병운동 그리고 참혹했던 일제 치하에서의 독립만세운동까지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백실마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느티나무 옆에 세워진 백곡 3·1운동 기적비는 그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며 증거다.
1919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백실마을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이틀 동안 대대적으로 벌어진 정산만세운동은 군내로 확산되어 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저 순응한 채 사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 스스로 그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버텼고, 맞선 것이다.
느티나무가 견딤을 통해 보호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 백실마을 사람들 또한 버팀의 시간 끝에 백곡 3·1운동 기적비를 세웠다.
이 모두 견디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