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의 세상읽기] 치매 100세 시대의 그늘, 한 원로배우의 투병
[김선미의 세상읽기] 치매 100세 시대의 그늘, 한 원로배우의 투병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슬픈 병,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어 
윤정희까지 소환한 알츠하이머, 치매환자를 둘러싼 가족 갈등
  • 김선미 편집위원
  • 승인 2021.02.11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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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언론인
김선미 언론인

[굿모닝충청 김선미 편집위원] 방문은 빈틈없이 테이프로 밀봉되어 있었다. 소방관들이 테이프를 뜯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드레스와 꽃으로 둘러싸인 노부인이 침대에 누워 있다. 

은퇴한 음악가 부부인 조르주와 안느. 어느 날 부인 안느가 쓰러지며 평온했던 부부의 일상에 균열이 가고 암울함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조르주는 끝내 자신의 손으로 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떠내 보내고 자신도 스스로 실종된다. 

평온한 일상 덮친 암울함, 노년의 품위있는 죽음 노-노 돌봄을 묻다

영화 <아무르>는 반신불수가 된 채 기억마저 스러지며 서서히 죽어가는 아내와 그녀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며 속절없이 지쳐가는 남편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아무르(amour)’는 프랑스어로 ‘사랑’이라는 뜻이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미카엘 하케네 감독의 <아무르>는 노년의 품위 있는 죽음, 부부의 사랑, 감당하기 어려운 노(老)-노(老) 돌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개봉한 지 1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영화이지만 영화 속 이야기는 오늘도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현실로 소환되고 있다.  

명사를 잊고 동사를 잊고 끝내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슬픈 병, 퇴행성 뇌질환인 치매. 이중 가장 흔한 게 알츠하이머다. 노인성 치매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사를 잊고 동사를 잊고 자신이 누구인지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다 

사진=케티이미지뱅크
사진=케티이미지뱅크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인 원로배우를 둘러싼 논란이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여배우의 깊어진 병세와 가족 간 갈등이 형제자매의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어 이 병의 처연함을 더하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그녀의 영화 인생 중 마지막 출연작이 될 가능성이 높은 2010년에 개봉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공교롭게도 주연 배우 윤정희의 본명 손미자로 등장하는 문화센터에서 생전 처음 시를 배우는 60대 여성은 영화 속에서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는다.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2019년에 윤정희가 실제로 알츠하이머를 10년간 앓아왔다고 밝혔다. <시> 촬영 당시에도 약간의 조짐이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로 그녀는 프랑스 칸 영화제에 초대되어 10분간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국민청원으로 전국민에게 강제 공개된 원로배우의 처연한 투병 

이토록 빛나던 배우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 간 간병과 성인후견을 둘러싼 논란의 한 가운데로 몰아넣고 있는 기억을 갉아먹는 병. 알츠하이머는 이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9’ 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65세 이상 국내 노인인구의 추정치매 유병률은 10.1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10명 가운데 1명꼴로 치매를 앓고 있는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치매 환자 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4년에는 100만명, 2039년에 200만명, 2050년에 3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인인구 10명 중 1명, 관리비용 천문학적, 사회문제된 노-노 간병 

연령별 구성비를 보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유병률도 높아져 85세 이상의 경우 32.6%에 달한다. 3명 중 1명꼴이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지만 현실적으로는 장수할수록 치매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100세 시대의 그늘이다. 

치매관리비용도 폭발적인 증가가 전망된다. 65세 이상 치매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약 2042만원, 국가치매관리비용은 약 15조3000억원으로 GDP의 약 0.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오는 2060년에는 133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기약없는 간병에 지쳐 배우자를 살해하는 등 치매환자의 노-노 간병은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억장 무너지고 애잔하다가도 순간순간 짜증 폭발, 내 부모도 버거워

보호되어야 할 가정사를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사회화한 그 속사정이야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 인지기능의 손상 및 인격의 변화가 발생하는 질환을 감당하기에는 솔직히 내 부모도 버겁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경증 인지장애일 뿐인데도 그렇다.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간혹 이상 행동을 보일 때는 억장이 무너진다. 애잔하고 서글프다가도 심란함이 물 밀듯 밀려오고 순간 순간 짜증이 폭발하기도 한다. 물론 뒤돌아 후회하지만 하루에도 열두번씩 냉탕 온탕, 온갖 감정과 상념이 왔다 갔다 한다. 내 부모인데도 그렇다. 

명절날 가족간 만남조차 가로막고 있는 1년이 넘도록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날아든 여배우의 유쾌하지 않은 투병 관련 소식은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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