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우의 환경이야기] 가로수야 미안해(플라터너스야 미안해)
[염우의 환경이야기] 가로수야 미안해(플라터너스야 미안해)
염 우 (사)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청주새활용시민센터 관장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1.02.19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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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함께지키기 문화행사에서 시민들이 청주 가로수길을 걷고 있다. 사진=풀꿈환경재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인류가 직면한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는 이제 전문가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지혜를 모아 실천하고 이겨내야 할 문제다. 이에 굿모닝충청은 충북 환경운동의 역사로 불리는 풀꿈환경재단 염우 상임이사로부터 환경의 중요성과 더불어 우리지역에서 진행돼온 환경운동의 현실과 앞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 등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염우 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설렘을 안고 떠나고 그리움을 품고 돌아오는 길, 즐겁게 머물 수 있는 길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맑은 고을 청주에는 가로수길이 있습니다.’, 청주 플라터너스 가로수길 입구 표지석에 새겨있는 심수영 작가님의 글이다. 그랬다. 청주에 뭐가 있느냐고 물으면 가로수길이 있다고 답했다. 청주를 아느냐고 물으면 가로수길을 안다고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부산에서 생태보전활동을 하고 있는 선배가 청주를 다녀가면서 던진 한 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이 무꼬~? 가로수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이 모양이 되었냐는 질책이다. 상처를 후벼 파다니, 부끄러웠다. 참 아렸다. 지금은 내가 봐도 온전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주 가로수길은 36번 국도 플라터너스(양버즘나무) 길을 말한다. 청주I.C 부근에서 가경동 죽천교까지 이어지는 5km 구간이다. 세 줄로 이어진 거목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여 가로수터널이라고도 불렀다. 맑고 푸른 청정도시 이미지를 부각시켜 준 주인공이다. 시민들의 자랑이 되기에 충분했고, 자연스레 청주의 상징이자 랜드마크가 되었다. 많은 길에 가로수가 있지만 ‘가로수길’은 이 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대표적인 경관 자원이기도 하다. 영화 ‘만추’, 드라마 ‘모래시계’ 그리고 여러 CF의 촬영배경이 된 전국적인 명소다. 이곳을 지날 때 사람들은 시원함과 쾌적함을 느꼈다. 2001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거리숲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선정되었고 2006년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경연대회 도로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외곽과 도심을 잇는 녹지축이기도 하다. 그러니 녹색수도 또는 생명문화도시 비전을 실현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었다.

1952년에 조성되었으니 가로수길의 역사는 70년, 가로수의 나이는 80~90살 쯤 되었다. 기간만큼 나무들도 많은 시련을 겪어내야 했다. 처음 가로수를 심은 분은 당시 강서면장인 홍재봉 선생으로 알려졌다. 심어놓고 보니 우시장에 나오는 소장수들이 꺾어서 회초리로 쓰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면민들 이름을 쓴 명찰을 하나하나 붙여가며 지켜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70년에 청주진입도로 4차선 확장공사를 하면서 없어질 뻔 했는데, 가로수를 모두 이식함으로써 현재까지 살아남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교통사고나 자연재해, 병충해로 인한 피해가 늘어났다. 청주시는 매년 방제조치와 보식작업을 하고 있다. 1993년 무렵 350여 그루에 대한 외과수술을 실시했다. 2002년에는 생육조건 개선을 위해 연구용역을 실시하며 진단과 처방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처음 심겨진 1,600그루의 나무는 2001년 1350그루로 줄었다. 보이는 푸르름과 달리 가로수들은 병들고 다치고 죽어가고 있었다. 연구 결과는 명확했다. 교통사고는 오히려 부수적인 문제다. 지나친 복토와 제설제 사용이 핵심 원인이다. 복토된 흙을 파헤쳤더니 줄기 밑동과 뿌리가 많이 상해있었다. 도로 포장와 자동차 매연 등 열악한 환경도 문제다. 아스팔트 불투수층은 수분과 공기의 공급을 저해한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잎에 흡착되어 물질순환을 가로막는다. 열악한 환경은 가로수의 생육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외형이 건강한 나무조차 뿌리가 더 이상 뻗어갈 데가 없다. 줄기는 썩고, 가지는 말라붙고, 잎은 퇴색하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가로수가 고사하고, 외형수술이나 수간주사에 의존하여 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로수길을 둘러싼 갈등이 치열했던 2007년 청주충북환경연합은 도로확장사업 4.53㎞ 구간에 대한 가로수 생육현황조사를 실시하였다. 2001년 1,088그루로 확인되었던 이 구간의 가로수는 이미 1053그루로 줄어있었다. 수림대의 폭이 300㎝ 미만인 나무가 60%를 차지하였다. 특히 좌우가 아스팔트로 덥혀있는 중앙분리대 가로수의 발육상태가 현저히 떨어졌다. 투수성이 생육의 중요한 변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32.4%인 341그루가 생육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고사된 나무, 줄기나 가지가 절단, 줄기 하단부가 심하게 훼손되거나 부패, 가지 끝부분이 말라붙거나 잎이 누렇게 바래는 등의 양상을 보였다. 우리는 ‘가로수 생육상태 심각, 긴급조치 필요’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둔다면 고사목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200년 넘게 살아야 할 나무들은 수명이 단축되어 20~30년 내에 최악의 생육상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가로수가 청주를 빛내주었지만, 이제는 시민이 가로수를 돌봐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로수 보전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1990년대 중반부터 높아졌다. 하지만 가로수의 생육을 위협하는 개발 행위도 끊이질 않았다. 도로 확장과 가로수 보전을 둘러싼 본격적 갈등은 청주진입도로 8차선 확장공사계획이 수립된 1999년에 시작되었다. 가로수 수백그루를 옮겨 심어야 했다. 이미 생육상태가 심각한 상황인데, 50년 넘게 생장한 나무를 이식한다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었다. 환경단체들은 가로수 보전을 촉구했고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도 높았다. 청주시도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7년 논란을 거친 끝에 도로확장사업과 가로수 생육환경개선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합의안이 도출되었다. 도로로 사용했던 중앙부(4차선)에 녹도(그린웨이)를 조성하고, 바깥쪽에 3차선 씩 6차선 도로를 신설하는 방안이다. 가로수길에 로드파크로 조성한다는 이 멋진 사업은 2006년 말 마침내 착공하였다. 가로수길 공원화사업은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대표사업으로 선정되었고, 청주시는 세계적 명소로 가꾸겠다고 호언하였다.

2006년 청주시의 가로수길 녹도 조감도. 사진=풀꿈환경재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하지만 갈등은 2007년 다시 불거졌다. 민선 4기 청주시장은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가로수길 도로확장사업의 설계를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청주시의회는 가로공원 디자인설계 공모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기존 4차선과 양측에 바깥에 1차선씩 확장하며 전체 6차선을 도로로 활용하고 바깥쪽의 남는 부지를 보행로로 활용하는 변경안’을 제시되었다. 교통사고 위험, 자동차 매연 문제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납득할 수 없는 궁색한 주장이었다. 수년 동안 협의와 양보를 거쳐 도출한 사회적 합의가 단체장의 판단과 고집에 의해 일순간 무산된 것이다. 당시 청주시 A과장은 수십 년을 지켜온 가로수를 살려야 한다며 눈물로 호소를 했고, B과장은 세종~청주 직선광로가 계획되고 있으므로 가로수길은 경관도로로 활용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C과장은 공정률 30% 진행된 상태에서 계획변경은 행정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며, 역으로 우리에게 막아달라는 당부를 하였다.

우리의 입장과 주장은 명료했다. 가로수 생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당초 계획대로 기존 4차로 아스팔트를 뜯어내고 녹도화해야 한다. 도로의 이용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녹도의 양 측에 연결된 3차선 씩을 신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녹도로 복원된 가로수길은 생명의 터전이 되고, 생태와 문화가 어우러진 시민들의 공간으로 만들어야한다. 자동차가 사라진 푸른 숲 길에서 새소리 들으며 산책하거나 자전거 타는 풍경을 그려야 한다. 또한 가로수길 푸른숲을 도심부(상당공원)까지 확장하여 동서로 연결하는 녹지축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시민환경단체들은 기자회견, 정책토론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며 청주시 계획변경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1088인의 가로수돌봄이를 모집하였고, 가로수 생육현황조사도 실시하였다. 시민 발의로 시정정책토론회를 청구하였는데 시장의 불참으로 무산되었다. 충북지역 36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함께 숲이 되어 지키자’ 가로수를 위한 문화행사와 시민퍼포먼스를 개최하였다. 1,000명 가까운 시민들이 참가해 가로수길을 걸으며 나무 사이에 금줄을 치고 각자의 이름과 소망을 적은 쪽물 손수건을 매달았다. 전환적인 국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귀를 닫은 청주시장은 듣지 않았다. 청주시는 변경된 사업을 강행하였고 가로수길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왜 그렇게 밀어붙인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활동의 중심에 있었던 청주충북환경연합은 고심하였다. 현장농성 등 물리적 대응을 해서라도 막아낼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하지만 그 해 3월 단체를 다시 창립하는 수준으로 조직개편을 진행하던 상황이었다. 원흥이마을 생태보전활동 때 만큼 총력을 집중할 수 없었다. 시민사회 내, 환경단체 간에 발생한 이견도 문제였다. 수백그루의 가로수들이 줄기와 가지가 절단된 채 이식되고 말았다. 이후 3순환도로 교차로 조성을 하면서 수십 그루가 추가로 이식되었다. 이제는 온전한 구간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못난 도로와 못난 가로수, 못난 시민과 못난 도시, 못난 환경단체가 되는 과정이었다. 그때 가로수길을 지켰더라면, 최근 가경천의 157그루 살구나무가 무자비하게 자려지는 일과, 제2순환로 중앙분리대 600여 그루의 가로수가 함부로 뽑혀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로수의 소중함과 고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청주시가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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