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윤지수 수습기자] 대전 동구 천동 철거촌.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담장과 지붕들이 위태롭다.
허름한 주택들 사이에 한 무리의 개들에 파 묻혀 함박웃음을 짓는 할머니가 있다. 유기견 80여마리를 키우며 철거촌을 떠나지 못하는 조경희 할머니다. 동네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많은 이웃들이 떠났지만 조 할머니는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20년 전 집앞에서 떨고있던 유기견 한 마리가 발길을 붙잡았다.
“원래 개 두 마리를 키웠었는데 누가 훔쳐갔어. 그거 찾으러 두 달을 헤매다가 우울증까지 왔어. 어느날 일을 갔다 오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집 앞에 떨고 있더라구. 밥을 주니까 환장하고 먹어.(웃음) 그날 이후 이 집에서 개 80마리와 살고 있지.”
조 할머니와 유기견들의 기막힌 동거는 우연이 아니다. 동네가 재개발되고,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하면서 개를 버리는 사람들이 늘었다. 할머니 말대로 자고 일어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개들이 집 앞을 서성거렸다.
“개들끼리 내버려 두면 꼭 싸움이 일어나. 동네에 사람이 없으니 말리는 사람도 없고,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죽는 일이 많았어. 버려지는 개가 무작정 늘어나니까 속이 상해서 울기도 하고, 욕도 많이 했지.”
버려진 개들이 불쌍해서 하나씩 거둔게 어느새 80마리까지 늘었다. 자식도 없이 홀로 살면서 누구보다 배고프고, 외로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조 할머니의 수입은 길거리에서 고물을 주워 팔거나 기초수급비로 받는 50만원이 전부다. 유기견들을 모두 보살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개를 잘 돌본다는 입소문은 어둠을 틈타 조 할머니 집 앞에 유기견을 두고 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개를 버린다는 책임을 다소나마 덜겠다는 사람들의 이기심은 그만큼 할머니를 힘들게 했다.
할머니의 살림살이로는 80마리가 넘는 개들 사료 값은 언감생심이다. 어쩔 수 없이 동구청에 도움을 요청했고, 잠시나마 일자리도 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늘어나는 개들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고, 50여 마리가 안락사됐다.
“경기가 어려우니까 요즘은 고물도 안 가져가고, 사료도 살 수 없게 됐을 때 너무 많이 속상했어. 자식처럼 돌본 개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
지성이면 감천이다. 입에서 입으로 퍼진 조 할머니의 이야기가 인터넷상으로 알려지면서 할머니에게 사료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처음 택배가 집 앞에 온 날, 할머니는 쓰레기 박스로 착각했다며 웃었다.
“가족이 없어. 그러니 여지껏 택배를 받아 본 적이 없었지. 집 앞에 상자가 있는데 누가 내다버린 쓰레기인 줄 알았지.(웃음) 뭐를 이렇게 버리고 갔나 하고 열어봤더니 사료와 쌀이 들어 있더라구. 너무 고마워서 한참 울었어.”
최근에는 입양을 문의하는 전화도 심심찮게 들어온다는 할머니의 표정이 어둡다. 요즘 고민거리가 생각난 까닭이다.
할머니의 고민은 이사다. LH공사가 올해 천동3지구 재개발을 시작하면서 집을 비워줘야 한다. 할머니의 사정을 안 LH 측에서 새로운 집을 구할때까지는 편하게 개들과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점점 다가오는 시간에 마음이 편치 않다.
“후원 때문에 돈이 많아지고 풍족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야. 개들만 없으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러고 사느냐는 사람들도 있어. 그런데 이 아이들을 입양 보내고나면 편하지가 않아. 새집으로 이사가려면 이 아이들을 뿔뿔이 입양을 보내야 하잖아. 제대로 입양이 될지, 잘못돼서 안락사 당하는 건 아닌지 속이 바싹 타 들어.”
조 할머니 앞으로 나오는 이주비는 1300만 원이다. 앞으로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개들과 함께 살 집을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동구 산내와 유성구 봉산동에 집을 알아봤지만 마땅한 매물이 없다.
“조만간 LH에 개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볼 생각이야. 나는 바라는 게 없어. 그냥 자식 같은 이 녀석들과 함께 살고 싶을 뿐이야.”
할머니 주소 : 대전시 동구 번동 2길 27.
할머니 계좌 : 새마을금고 3005-09-006386-5 조경희